젊은 시절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8살이나 어렸을 때 나를 낳았다. 20대 중반 어여쁜 나이에 갓난아기로 세상에 나온 나를 안고 엄마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기를 달래고 먹이고 재우는 일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앞 길이 아득하게 느껴져 겁이 덜컥 났더랬다. 더구나 엄마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이따금 흘러가듯 나에게 했던 말로 미루어 보아 친정 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지 못했으리라고 나는 혼자 짐작했다. 엄마의 엄마가 어린 엄마의 옆에 다감하게 있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나는 매번 마음이 시렸다.
엄마의 젊은 날이 궁금해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 무렵으로 짐작되는 사진을 몇 장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자그마한 체구에 품이 넓은 하얀색의 미니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나무에 기대 서 있었다. 그 시절 엄마의 독사진은 대부분 아빠가 찍어준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소녀처럼 수줍은 표정을 짓기도, 씩씩한 남학생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카메라를 응시하기도 했다. 아빠보다 족히 30cm는 작은 엄마는 분수대 둘레에 올라가 아빠에게 어깨에 손을 올리고 웃어 보였다. 아빠는 검은색 면바지에 붉은색의 카라티셔츠를 입은 채 멋쩍은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시절의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서로를 애정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젊은 날의 엄마 아빠의 사진은 앨범 한 권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많았다. 스마트폰 같은 신식 기기는 찾아보기 어려운 때였지만 엄마와 아빠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선 부지런하게도 자신들의 모습을 남겼다. 내 부모의 연애사진을 보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낯설면서도 기분 좋은 이질감을 남겼다. 지금껏 나는 연애를 할 때도 쑥스럽다는 핑계로 함께 나온 사진을 자주 찍지 않았었는데 어쩌면 엄마 아빠는 적어도 나보다 더 로맨틱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아빠와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낳았고 2년 터울로 남동생을 낳았다. 가만 생각하니 젊은 날의 엄마는 가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단란한 가족을 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서른 중반에 다다른 나에게 지금도 종종 엄마는 말한다. "너희들 어렸을 때가 참 좋았다." 그러면 나는 "왜 그때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었고 엄마는 "니랑 00가 너무 예뻤지."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언뜻 엄마의 얼굴에 스친 그리움을 발견한다. 짐작컨대 품 안에 있던 자식들이 어느덧 커버려 훌훌 떠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기쁘기도 했겠으나 모종의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동생이 어엿한 슬롯인이 되고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아낌없는 애정과 헌신 덕분이었다.
이에 대한 일화는 참으로 많다. 아마 내가 초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나와 동생은 집에서 15분 거리의 학교에 다녔다. 학교 일과를 마치고 오후 3시쯤 하굣길에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면 우리 집이 어디쯤 있는지 눈으로 가늠해보곤 했다. 세 번째 라인, 꼭대기층을 더듬더듬 눈으로 따라가면 항상 엄마의 머리가 보였다. 내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엄마는 나를 보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항상 엄마는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거의 모든 날이 예외 없이 그랬다. 어린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보이니 좋았고 그게 당연한 건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항상 왜 우리를 마중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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