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도 그랬다.
우리집은 외벌이였다.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이었다. 구청에서 정년퇴직했다.
지금이야 공무원이 각광 받지만, 아버지 시대에는 비인기직종에 박봉 그 잡채였다.
부모님의 근검절약은 인정하고 존경스러울 정도다. 약간 과장하자면 전원주를 보는 느낌이었다.
형은 우리집을 바꿔놓았다.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만 내주고, 졸업때까지 본인이 과외를 해서
학비 전액과 생활비 전부를 스스로 벌어서 졸업했다. 참고로 형은 박사 과정까지 전부 스스로 충당했다.
형은 국립대를 다녀서 학비도 적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가족 다 같이 조촐한 삼겹살 파티를 했는데, 그 때 아버지가 말했다.
용돈은 없다. 스스로 벌어라. 너 등록금외에 용돈을 줄 형편이 안된다. 니 형도 그랬다. 니 형의 반의 반만 벌어도 충분하다. 나는 느꼈다. 저말씀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100% 지킬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형이 대학교 1학년부터 우리집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느날 티비가 바뀌었고, 에어컨이 설치되었고,
부모님과 나의 새옷이 생겼고 등등 형은 착했다. 본인이 번돈의 일부를 부모님과 내게 썼다.
당시에는 가족이니까 당연한거아냐? 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나도 과외를 시작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내가 감히 누굴 가르쳐도 되나? 돈을 받아도 되나?
반강제적으로 과외 구인을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구해졌다. 대상을 중학생으로 한정했다.
고등학생은 부담스러웠다. 나는 박리다매 전략을 썼다. 2시간이 아니라 2시간 30분을 가르쳤고,
시세보다 5만원 싸게 받았다. 졸업때까지 월평균 50만원을 벌었다. 지금은 큰돈이 아니지만,
당시 20대 초반의 나에겐 큰 돈이었다.
그때 저돈을 1/3이라도 저축했어야 했는데, 생활비와 술값으로 전부 썼다.
대학생 4년 동안 용돈을 받은적은 없다.
그러나 등록금은 4년동안 지원해주셨다.
장학금을 받아본적도 없었다.
대학생활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았다.
가족에게는 항상 아픈손가락이자 천덕꾸러기 막내아들이었지만, 대학교에서는 달랐다.
내 이야기에 경청해주고, 맞장구쳐주고, 내 개그를 재밌어 해주고,
무엇보다 같이 즐겁게 놀아주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주고, 불러주고 너무 좋았다.
나도 저들에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멋진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