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선
우리 형은 중고교때 전교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형과는 4살 터울이다.
지금은 국립대학교 정교수로 재직중이다.
반대로 나는 공부에 별 흥미가 없었다. 나의 중고교 시절은 농구와 스타크래프트로 요약할 수 있다.
매일 체육복을 챙겨가서 친구들과 농구했고, 당시 중3때부터 열풍이 불었던, PC방을 자주갔다.
당연하게도 부모님께 거의 맨날 꾸지람을 들었다.
형은 거대한 벽과 같았다. 중1때 진짜 나도 부모님께 인정받고자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때 반에서 4등
이 내 학창시절 최고 등수였다. 그 이후로 등수는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고, 나는 공부를 놓았다.
농구를 많이 해서 그런지 키는 형보다 크다. 183cm이다. 스타크래프트를 많이 해서 그런지 타자치는 속도와 마우스놀림이 정확하다.
수능날 긴장성 장염으로 시험도중에 화장실을 2번 들락날락 하다 시험을 망쳤다. 서울에 있는 D전문대에 진학했다.
그렇게까지 낙담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흡사 그 모습은 나라잃은 이순신장군님의 모습이랄까...
등허리가 활처럼 휜 상태로 홀로 소주를 드시던 모습을
몇번 본 기억이 난다.
덕분에 1학기를 죄인처럼 지냈다.
전문대라 학기가 길다 18주 수업이었다. 7월1일부터 여름방학이었다.
바로 반수를 시작했다. 목동에 있는 대학학원 단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유는 A,B친구가 그곳을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3월부터 재수를 시작했다.
수능날까지 대략 4개월, 나름 열심히 했다. 수능을 다시 봤고, 결과가 나왔다.
나때는 가나다 군 3개 대학에 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가군에는 I교대, 나군에는 S대, 다군에 H대를 지원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바랬다.
2월에 결과가 나왔는데 전부 낙방...인줄... 다행이 H대 예비번호가 비벼볼만 했다.
속이 타들어갔다. 매일 교무처에 전화했다. 기다리라는 답변만 들었다.
2월말쯤 기적적으로 H대 합격전화를 받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쫄깃하고 강렬한 기억중 하나다.
그렇게 다시 대학생이 되었고, 2호선을 타고 당당히 재수 신입생이 되었다.
나는 우리학교가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운 좋게도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지금도 대학교 친구들 단톡방에서 내가 제일 많이 말한다. 다들 별 반응이 없다.
1학년은 술로 보냈다. 나는 술이 약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술을 잘 마셨다.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1학년 학점이 1.97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학사경고는 면했다.
그때는 몰랐다. 30대 중반까지 그렇게 학교앞에 갈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