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른다. 부모님이 나를 부를때, 왼쪽에서 불러도 오른쪽으로 돌면서 내가 반응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만 했다. 그 때가 5살 전후라고 했다.
귀는 소리를 듣는 역할도 하지만, 평형기관의 역할도 한다. 청력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5살때부터 걷다가 자주 쓰러졌다. 어지러웠다. 지금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갑자기 세상이 한바퀴 돌았다. 다 돌고 나면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다.
MBC음악캠프나, SBS인기가요에서 가수들이 춤 출때 카메라가 한 바퀴 회전을 할때가 있다.
딱 그런 느낌으로 세상이 돌았다.
한번 그렇게 되면 어지러움이 1시간 넘게 지속됐다. 어지러워서 그냥 누워있었다. 빨리 이 어지러움증이
끝나길 바랬다. 심하게 어지러울때는 토할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잘 먹지도 않았다.
어렸을때 엄청 말랐었다.
신기한건 어지러움이 왔을때 잠을 자면 좋아졌다. 30분만 자고 일어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유명한 내과, 약국, 한의원 다 데리고 다녔다.
전북 정읍의 사슴농장에 데려가서 사슴뿔을 잘라서 다려다 먹였다.
사슴농장의 일이 생각난다. 농장주가 마취총으로 사슴의 엉덩이 부분을 쏘면 사슴이 날뛰다가 몇 분뒤
쓰러졌다. 수건으로 사슴의 눈을 덮고 톱으로 사슴뿔을 잘랐다. 뿔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 피를 바가지에
받아다가 활명수를 타서 먹으라고 했다. 그 광경을 봤는데 어떻게 먹을 수가 있는가 울며 도망쳤다.
사슴뿔만 다려서 먹었다.
역시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구로동에 유명한 약국이 있었다. 개미약국, 약사님께서 내 몸이 허하기 때문에 기력을 보충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개미약국에서 오랫동안 약을 타서 먹었다.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먹을때마다
엄마가 이거 비싼거니까 남김없이 다 먹으라고 했다. 약을 스뎅 수저에 한 움큼 타서 내 목구멍에 넣었다.
역시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번엔 유명한 한의원에 갔다. 역시 비쌌고 역시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때 한약을 많이 먹어서 내가 중학생
때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나보다. 지금은 절반이 흰머리다 그래서 3달에 한번 염색을 한다.
마지막으로 영등포에 유명한 이비인후과에 갔다. 할아버지 의사가 어쩌고 저쩌고 했다.
신기한건 귀에다가 주사를 놨다. 진짜 졸라게 아팠다. 맞고 나면 눈물이 났다.
그 병원 간판만 봐도 겁이 났다.
유명해서 그런지 대기만 2시간 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갔다. 편도 1시간 30분 걸렸던 기억이 난다. 버스정류장에서 안간다고 때를 쓰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많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참 고생이 많았다.
그 병원이 2층에 있었는데 계단까지 기다리는 인파로
넘쳐났다. 기다리는 동안 징징대는 나를 달래느라
고생많이 하셨을것같다.
역시나 차도가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쯤에 부모님도 결국 포기했다. 나도 받아들였다. 참고로 어지러움증은 어렸을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때까지 지속됐다. 커갈수록 그 정도가 약해졌다. 익숙해졌다.
한번은 가양동 6단지 상가앞에서 쓰러졌는데 지나가던 어른들이 놀래서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고마웠다. 인류애가 느껴졌다.
우연히 고등학생때 이대목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아주 가볍게 문진을 하더니
어렸을때 열감기를 심하게 앓아서 귀가 먹은것이라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아마 어렸을때
열이 40도 넘은 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 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에 보청기도 소용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했다. 눈이 멎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위로를 해주려고 하는말인거 같았다. 결과가 먼가 허무했다.
진작에 그냥 대학병원 왔으면, 애꿏은 사슴뿔안먹어도 되고, 약국, 한의원, 이비인후과 안가도 될텐데
내가 그래서 성인이 되서 10년 동안 병원을 안갔다. 다 사기꾼들 같았다.(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고,
짧은 소견이 오니 양해바랍니다)
그래서 군면제를 받았다. 나도 이 정도로 면제를 받을 줄 몰랐다. 병무청 검사갈때 잘하면 공익으로 가려나
생각하며 징집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면제를 받았다. 깜짝 놀랐다. 부모님과 친구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일상 생활에 큰 문제가 없으니 다들 의아해했다. 왜 이정도로 면제를 받는거지? 라고 다들 생각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불편한것을 따지면, 왼쪽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는것, 버스, 지하철, 교실에서 왼쪽에서 친구가 말할때
듣지를 못하는거 그래서 고개를 돌리며 오른쪽 귀에 다시 말해줘 하는거, 술자리에서 항상 오른쪽 귀로 들을
수 있께 좌측 끝에만 앉을려고 하는거 정도.
그리고 가끔 집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서 찾으면
잘 못찾는다. 나는 모든 소리가 오른쪽방향에서 들려온다.
그래서 소리의 방향이 아니라 소리의 크기로 찾는다.
학창시절 에피소드가 있었다. 10m이상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왼쪽에서 부르면 나는 듣지 못하고 지난간다.
하필이면 싸움잘하는 힘쎈친구가 중학교 때 나를 불렀나보다 나는 듣지 못하고 지난갔다. 그 친구가 쫓아와서 왜 남의 말을 씹냐고 한대 맞았던 기억이 있다.
가끔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묻는다.
너한테 선택지가 있어, 왼쪽귀가 들리고 군대를 갈래? 아니면 안들리고 군면제 받을래?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한다. 귀 들리고 군대갈래.
나도 양쪽 귀가 들리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들 구라치지 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