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잡스

byPaul


용수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첫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대략 10번이상 이직을 했다.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를 출력하면 2장이 나온다.


용수와 선홍이는 첫온라인 게임을 지금까지 한결같이 다니고 있다.

용수는 공무원이라 그렇다쳐도, 선홍이는 대단하다. 몇해전에 15년 근속기념으로 순금 거북이를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정말 대단하다.


둘이서 나를 엄청 놀려댄다. 본인들보다 곱게 자라서 끈기가 없다고 하고, 군대를 면제받아서

나약하다고 놀린다.(나의 군면제 이야기는 추후 쓸 예정)

절반은 인정한다. (대학교 친구들을 비롯해 모든 친구들이 놀린다)

나름 위안을 해보자면, 지금 현재의 온라인 게임은 만 6년 넘게 다니고 있다. 매일매일이 신기록이다.

그 전에 가장 오래다닌 온라인 게임은 4년이었다.


첫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게 된 이야기를 해보겠다.

전 편에서도 서술했듯이 특정 지명과 회사명 이름 등은 모두 가명으로 하겠다.


첫 온라인 게임은 한국증권이었다. 본사에서 8주간 연수 후에 가양동 지점에 배치 받았다.

지점의 첫인상은 좋았다. 막내는 오전 6시까지 출근해서 지점셔터를 올리고, 냉난방장치와 전등을 켜고

전체 직원의 PC를 켰다. 그리고 이후 선배들이 출근할때마다 서서 인사를 한다.

사실 저런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가지가 가장 힘들었다.

우리는 회식을 자주했다. 주식시장이 3시에 장마감을 해서 4시부터는 퇴근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건 차장급이상이나 가능했고, 최소 주 2회는 법인카드로 회식을 했다.


막내의 가장 핵심역할은 장소 섭외, 2차 섭외, 선배들 귀가 택시 섭외 그리고 마지막 까지 자리 지키기였다.

나는 노래를 잘 못했는데 노래방에서 제일 먼저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도 해야했다.

본래 술이 약했는데, 주는 술을 넙죽 받아마시다 보니 2차에서 졸았던 적도 많다. 그때마다 불이 번쩍했다.

사수가 불러다가 화장실 앞에서 조인트를 깠다. 그때는 그게 문화였다.

사수도 그렇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사수가 숙취해소제를 사주고 토닥이면서 힘들어도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남몰래 변기에 토하면서 울었던 적도 있었지만, 다 그렇게 온라인 게임 생활한다고 생각했다.


월에 2번 정도 주말에는 지점장 수발을 들어야했다. 아침에 지점장 집으로 가서 골프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골프장에 모시고 가서 대기하다가 귀가를 시키거나, 등산, 낚시 등 지점장의 접대 모임에 운전기사 역할을

해야했다. 황금같은 주말에 쉬지를 못해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객의 자산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증권사는 은행과는 다르게 고객이 제발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지역 자산가들을 영입하거나, 기존 고객들에게 추가적으로 투자를 권유해야 한다.

골프연습장, 주유소, 의사, 사업체, 요식업, 건물주 등 지역내 고액 자산들과 만나 영업을 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소위 간 쓸개는 집에 놔두고 영업해야 했다.


배가 불렀던 것인지, 절박하지 않았던 것인지 나는 유치실적이 저조했다. 이 맘때쯤에 동기인 육과

자주 만나서 신세한탄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점점 지점에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가 무시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나를 잘 챙겨줬던 사수도

어느 순간 멀어져갔다.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직할 온라인 게임은 구하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느꼈던지, 차장님 한분이 나를 불러서 지점 옥상에서 면담을 했다.

요즘 유통업이 전망이 있으니, 이직 준비를 해보는 것이 어떠겠냐고 제안했다.

지점에서 눈칫밥을 먹던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때는 그런 따뜻한 말을 해주는 차장님이 고마웠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날 여느때처럼 실적저조로 인해 지점장실에 불려가서 30분동안 혼나는 날

왜인지 몰랐지만 그날은 참지 않았다. 지점장에게 대들고, 언성을 높이며 퇴사하겠다고 선언하고

지점을 나왔다.


십잡스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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