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나와 전혀 다른 말을 꺼낼 때,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한번 들여다보자.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반박을 준비하고 있다. 어디가 틀렸는지를 찾고, 어떻게 설득할지를 생각하고, 내 입장을 어떻게 지킬지를 구상한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대부분이 다른 생각을 만나는 방식이다. 듣는 척하지만, 실은 듣지 않는다.
이 솔직한 인정이 불편하다면, 다음 질문을 떠올려보자.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서 배울 것을 찾은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내가 강하게 믿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읽으면서, 그것이 설득력 있다고 느낀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기억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자신의 생각만을 들어왔는지를 이것이 보여준다.
AGI 시대에 이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동의하는 것을 더 많이 보여주고, AI는 우리의 입장을 정교하게 정리해주고, 디지털 공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진다. 다른 생각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만나도 진심으로 듣지 않는 능력이 더 강화되고 있다.
우리는 듣는 것과 처리하는 것을 혼동한다. 상대방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것은 처리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일으키는 것이 듣는 것이다.
철학자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는 진정한 이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평생 탐구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하지만 깊었다. 진정한 이해는 상대방의 말이 나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허용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이라고 불렀다. 나의 이해의 지평과 상대방의 이해의 지평이 만나 서로를 확장시키는 것. 이 융합이 일어나려면, 나의 지평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내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 흔들림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확인되기를 원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기존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는 더 쉽게 받아들이고, 반박하는 정보는 더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다. 이것은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뇌의 기본 작동 방식이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이 기본 작동 방식을 완벽하게 활용한다. 우리가 동의하는 것에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반응한다는 것을 학습하여, 더 많은 동의를 보여준다. 우리의 확증 편향이 디지털 공간에서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진심으로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이 아니다. 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훈련되지 않으면 약해진다.
2022년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줄리아 민슨 연구팀은 10년에 걸친 데이터를 분석하여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인들이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능력이 2012년에 비해 2022년에 유의미하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의견 차이가 커진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들으려는 의지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23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퍼센트가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뉴스 기사는 읽지 않는다고 답했다. 불과 10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43퍼센트였다. 다른 생각을 접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다른 생각을 듣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은 성장하지 않는다. 생각은 마찰과 충돌 속에서 날카로워지고 깊어진다. 동의만을 먹고 자란 생각은 비대해지지만 허약하다. 반박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생각은 처음으로 진지한 도전을 받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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