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지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조금 더 벌면, 조금 더 인정받으면, 조금 더 편안해지면. 이 조금 더가 끝나는 지점이 없다는 것을 어느 순간 발견한다.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 잠시 만족하다가, 다시 조금 더가 시작된다.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기준이 함께 이동해 있다.
이것이 삶의 어떤 근본적인 구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인간은 원래 만족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더 원하는 것이 진화적 생존 본능이라고. 이 설명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 설명이 충분함을 포기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진화가 우리에게 준 기본값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값을 의식적으로 재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충분함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단순히 적게 가지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충분함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다.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맺는 관계, 내가 있는 상태와 내가 그 상태를 경험하는 방식의 문제다. 그 관계가 달라질 때, 같은 것을 가지고도 충분함을 경험할 수 있다.
결핍의 언어
우리는 대부분 결핍의 언어로 생각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이 언어가 어디서 오는가. 부분적으로는 소비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온다. 시장은 결핍을 만들어내야 작동한다.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더 사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더 가져야 한다는 감각, 지금 가진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광고가 이 일을 한다. 소셜미디어가 이 일을 한다. 비교가 이 일을 한다.
하지만 결핍의 언어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도 뿌리가 있다. 충분히 좋지 않다는 느낌,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 지금 이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자기 평가. 이것들이 내면의 결핍 언어다. 이 언어가 지배할 때, 외부의 조건이 좋아져도 충분함을 느끼기 어렵다. 충분함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언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TED의 명강사 브레네 브라운이 말한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충분히 자지 못했다, 충분히 생산적이지 않다, 충분히 좋은 부모가 아니다,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 이 충분하지 않음이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다. 이 배경음악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충분함에 도달하지 못한다.
충분함의 역설
충분함에 관한 역설이 있다. 충분함은 더 가짐으로써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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