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은가?

by파사리즘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이상한 변화를 경험한다. 관계의 수는 늘어나지만 깊이는 얕아진다. 명함이 쌓이고, 연락처가 늘어나고, SNS의 팔로워가 많아진다. 하지만 새벽 두 시에 전화할 수 있는 사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내가 최악의 상태일 때도 함께 있어줄 사람이 몇 명인지를 헤아려보면, 그 수는 놀랍도록 적다. 그렇지 아니한가?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절친한 친구가 된다. 함께 모래를 파고,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단순함이 어른이 되면서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 관계에 조건이 붙기 시작한다. 도움이 되는지, 위험하지 않은지, 내 시간을 들일 만한지. 이 계산이 관계를 얕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깊이 연결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들과 그런 연결을 원하는지. 이것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바쁘게 살다 보면 이런 것들을 생각할 틈이 없다. 하지만 바쁨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이 관계라는 것을, 모든 것이 정리된 자리에서 진짜 중요했던 것이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너무 늦게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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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의 조건들

깊은 연결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것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심리학자 아서 아론은 낯선 두 사람을 깊이 연결시키는 실험을 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에게 점점 더 개인적인 질문들을 주고받게 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것들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삶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것,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같은 것들까지. 45분 후 두 사람 사이에는 실제로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일부는 실험 후에 실제 친구가 되거나 연인이 되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이 있다. 깊은 연결의 조건이 오랜 시간이나 많은 경험의 공유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관심,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 그리고 그 드러냄을 받아주는 안전함. 이 세 가지가 만나면 짧은 시간 안에도 깊은 연결이 일어날 수 있다.

반대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어도 깊지 않은 관계들이 있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드러낸 것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진정한 관심보다 역할의 수행이 있었다면,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 깊이는 시간의 함수가 아니라 진정성의 함수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끌리는가

어떤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은지를 알기 위해, 우리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 끌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실제로 끌리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 끌린다고 생각한다. 자신감 있고, 성공적이고, 언제나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 하지만 실제로 깊은 연결이 일어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대부분 상대방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여줬을 때다. 자신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실패를 인정했을 때, 혼란스럽다고 고백했을 때. 그 취약한 순간이 연결의 문을 열었다.

수십 년에 걸친 심리학 연구들이 이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왔다. 취약성이 연결의 탄생지라는 것. 우리가 완벽해 보이려 할 때 연결의 기회를 스스로 닫는다는 것. 갑옷을 입은 사람과 갑옷을 입은 사람이 만나면 갑옷끼리 부딪힐 뿐이다. 실제 만남은 갑옷을 내려놓을 때 일어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가를 물을 때,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 앞에서 갑옷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 앞에서 불완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가. 그 사람들이 깊은 연결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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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공명

깊은 연결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는 연결, 감정적으로 지지하는 연결,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연결. 이 층위들이 모두 있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풍요로운 관계지만, 현실에서는 한두 층위만 깊은 관계들이 더 일반적이다.

가장 깊은 층위의 연결은 가치관의 공명에서 온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지,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쓸 것인지에 대해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이것이 모든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생각을 진심으로 들을 수 있는 관계가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가치관이 너무 다를 때, 표면적인 연결은 가능하지만 깊은 연결은 어렵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세 종류로 나눴다. 유용함에 기반한 우정, 즐거움에 기반한 우정, 그리고 덕에 기반한 우정. 처음 두 가지는 유용함이 사라지거나 즐거움이 없어지면 함께 약해진다. 세 번째만이 상황이 변해도 지속된다. 덕에 기반한 우정은 서로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장 깊은 우정이다.

AGI 시대에 이 구분이 더 날카로워진다. AI는 유용한 관계와 즐거운 관계를 흉내 낼 수 있다. 언제나 도움이 되고, 언제나 흥미롭다. 하지만 덕에 기반한 관계,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관계는 AI와 맺기 어렵다. AI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전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

어떤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려면, 관계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종종 관계에서 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원하는 것이 다르다. 진정성 있는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피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 깊은 연결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깊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불일치가 어디서 오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상처에서 온다. 진심을 보였다가 거절당한 경험, 가까워졌다가 배신당한 경험, 취약함을 보였더니 그것이 무기로 사용된 경험. 이 경험들이 깊은 연결을 원하면서도 그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한 질문들이 있다. 어떤 대화를 나눈 후에 진짜로 에너지가 생기는가. 어떤 사람 옆에 있을 때 가장 나답게 느껴지는가. 어떤 관계에서 나온 후에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이 질문들의 답들이 내가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관계의 폭과 깊이

우리에게는 모든 관계를 깊게 만들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관계에도 선택이 필요하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수에 인지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바 '던바의 수'다. 진정으로 긴밀한 관계는 다섯 명 내외, 실질적인 우정 관계는 열다섯 명 내외, 의미 있는 지인 관계는 백오십 명 내외. 소셜미디어가 수천 명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 인지적 한계는 바뀌지 않았다. 연결의 수가 늘어나도,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는 그대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 관계를 넓히는 것과 깊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를 깊게 하려 하면 어떤 것도 깊어지지 않는다. 어떤 관계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멀리하는 것이 그 사람을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같은 깊이로 대하려는 것이 오히려 모든 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 몇몇 관계를 선택하여 깊게 가는 것이, 많은 관계를 얕게 유지하는 것보다 자신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더 좋은 것일 수 있다.


AGI 시대의 관계 선택

AGI 시대에 관계를 선택하는 맥락이 달라진다. AI가 많은 관계적 필요들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환경에서, 인간과의 관계에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투자할 것인가.

한 가지 방향이 있다. AI가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AI에게 맡기고, 인간과의 관계는 AI가 줄 수 없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정보 교환, 효율적인 조율, 즉각적인 응답. 이것들은 AI가 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성장하는 것, 서로의 불완전함을 보면서도 선택하는 것, 진짜 존재로서 마주하는 것. 이것들은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AGI 시대에 인간과의 관계는 더 순수해질 수 있다. 유용함이나 편리함 때문에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사람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관계. AI가 많은 실용적 필요를 충족시켜줄수록, 인간 관계는 실용성을 넘어선 이유로 맺어질 수 있다.


관계를 시작하는 용기

어떤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은지를 아는 것과, 실제로 그 연결을 만들어가는 것 사이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먼저 다가가는 용기다.

깊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내야 한다. 먼저 취약해져야 한다. 먼저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이것이 거절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거절당하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깊은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깊은 관계의 시작이다.

마르틴 부버가 말한 진정한 만남, 즉 나-너의 만남은 계획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는 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 상대방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는 것, 판단 없이 듣는 것. 이 조건들이 만들어질 때, 진정한 만남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나는 어떤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두 가지를 물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안을 향한 질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향을 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두 번째는 밖을 향한 질문이다. 지금 내 삶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있다면 그 관계를 충분히 가꾸고 있는가. 없다면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외로움이 연결의 욕구를 알려준다고 했다. 나는 이 질문들 그 욕구에 방향을 준다고 믿는다. 어떤 연결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소홀히 해온 누군가가 떠올랐을 것이다. 바빠서, 멀어서, 어색해져서 연락을 못 한 사람. 혹은 깊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표면에 머물고 있는 관계. 그 사람에게 오늘 연락하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답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에 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무우인간 : 바카라에 담지 못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