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드는' 사람인가, '소비하는' 사람인가?

by파사리즘

하루가 끝날 때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 없이 지쳐있다. 분명히 바빴다. 메시지에 답했고, 콘텐츠를 봤고, 뉴스를 읽었고, 영상을 스크롤했다. 그런데 막상 오늘 내가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를 열심히 처리했지만, 무언가를 만들지는 않은 하루. 이 느낌이 낯설지 않다면, 이 질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다.

만드는 것과 소비하는 것의 차이는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어떤 방향으로 흘려보내느냐의 문제다. 소비는 흘러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만드는 것은 흘러나가는 것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두 방향은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자세를 만들어낸다.


AGI 시대에 이 질문은 새로운 긴장을 갖는다. AI가 콘텐츠를 무한히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이 만드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흔들린다. 동시에 AI가 소비할 거리를 무한히 공급할 수 있는 시대에, 소비하는 삶으로 흘러가기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이 두 가지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질문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4_3 비율의 추상적인 아트 스타일. 망치의 형태를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과 선으로 해체하여 표현하고, 달러 기호를 추상적인 곡선과 형태로 재해석. 생동감 있는 색상, 유기적인 형태, 기하학적 패턴을 활용한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추상 표현.jpg


소비의 구조

우리가 소비에 끌리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현대의 콘텐츠 환경은 소비를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알림, 추천 알고리즘. 이것들은 우리가 콘텐츠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설계가 작동하는 원리는 단순하다. 소비는 쉽고,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소비는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즉시 웃음이 나온다. 흥미로운 기사를 읽으면 즉시 정보가 들어온다. 이 즉각성이 소비를 습관으로 만든다. 반면 만드는 것은 보상이 늦게 온다.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결과가 불확실하다.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소비는 도파민을 빠르게 소량으로 반복 공급하는 방식이다. 만드는 것은 더 큰 보상을 위해 더 긴 시간의 투자를 요구한다. 우리의 뇌는 즉각적인 작은 보상에 끌리도록 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의식적인 저항 없이는 소비의 흐름에 쉽게 실려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소비가 주는 만족감은 빠르게 가라앉는다. 영상 하나를 보고 나면 또 다른 영상을 찾게 된다. 이 끝없는 소비에서 포만감이 오지 않는다. 반면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의 만족감은 다르게 남는다. 그것이 작은 것이라 해도, 내가 만든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주는 충만함은 소비가 줄 수 없는 것이다.


만든다는 것의 의미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넓게 이해해야 한다. 만드는 것은 예술가나 작가나 발명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리를 하는 것, 정원을 가꾸는 것,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친구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쓰는 것, 회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 낡은 것을 수리하는 것,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 이것들이 모두 만드는 것이다. 없었던 무언가를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만드는 것의 본질이다.

인류학자 팀 인골드는 만드는 것을 세상과의 대화라고 불렀다. 재료에 손을 댈 때, 재료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나무를 깎을 때 나무의 결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반죽을 치댈 때 반죽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손이 느낀다. 이 대화가 만드는 과정의 핵심이다. 만드는 것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세상과의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변한다. 무언가를 만들기 전의 나와 만든 후의 나는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것을 발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만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소비는 우리를 잘 바꾸지 않는다. 만드는 것이 우리를 바꾼다.


AI가 만들어주는 것과 내가 만드는 것

AGI 시대에 만드는 것의 의미가 흔들린다고 했다. 이것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AI는 이제 텍스트를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고, 코드를 짠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쓸 글을 AI는 몇 초 만에 쓴다. 내가 며칠을 고민할 디자인을 AI는 수십 개의 버전으로 즉시 생성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이 질문의 전제를 다시 살펴보자. 만드는 것의 가치가 결과물에만 있는가.

만드는 과정이 결과만큼, 아니 어떤 면에서는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AI가 더 좋은 글을 써준다고 해서, 내가 글을 쓰는 행위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발견하고, 내 안의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는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이 글쓰기의 본질이지, 완성된 글이 본질이 아니다.

동시에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도 있다. AI를 도구로 사용하면서 만드는 것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AI가 기술적인 부분을 도와줌으로써, 나는 더 본질적인 것, 즉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만드는가,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 경우 AI는 만드는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이다.

구분이 필요하다. AI가 내 생각을 실현하는 것을 돕는 것과, AI가 내 생각을 대신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만드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4_3 비율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소비자를 표현. 기하학적 형태, 유기적인 선과 곡선, 색상의 흐름을 사용하여 소비, 구매, 선택, 욕구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시각화. 구체적인 사람 형태가 아닌 추상적 형태와 패턴으로 소비자의 본질을 표현.jpg


소비자와 창조자 사이

이 질문이 이분법적으로 들릴 수 있다. 만드는 사람이 좋고 소비하는 사람이 나쁘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소비는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소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영감을 받고, 회복한다. 좋은 바카라을 읽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 뛰어난 영화를 보는 것. 이것들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 소비가 없으면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창조는 반드시 깊은 소비 위에서 일어난다.

문제는 소비와 만드는 것 사이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다. 더 정확히는, 만드는 것을 위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소비로 도피할 때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다가 불안해서 영상을 켜는 것. 내 생각을 쓰려다가 막막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시간에 소비로 그 공간을 채우는 것.

이 도피의 패턴이 반복될 때, 우리는 점점 소비자로 굳어진다. 소비하는 능력은 강해지고, 만드는 능력은 사용되지 않아 약해진다. 그리고 만드는 능력이 약해질수록 만드는 것이 더 두려워지고, 더 두려워질수록 소비로 더 자주 도피하게 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발견한 것이 여기서 다시 의미를 갖는다. 플로우, 즉 완전한 몰입의 경험은 거의 언제나 만드는 행위에서 온다는 것이다. 소비에서도 몰입이 일어날 수 있지만, 만드는 것에서 오는 몰입과는 질이 다르다. 만드는 것에서 오는 몰입은 우리를 더 깊이 살아있게 한다.


작은 것부터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거창한 것을 만들 필요가 없다.

매일 세 문장의 일기를 쓰는 것도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는 것도 만드는 것이다. 회의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은 관점을 꺼내는 것도 만드는 것이다. 오래된 물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수리하는 것도 만드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도 만드는 것이다.

이 작은 만들기들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들이 만드는 근육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약해지듯, 만드는 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매일 조금씩 만드는 것이, 가끔 크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작가 어슐러 르 귄은 이렇게 말했다. 창조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신비로운 능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아이들을 보면 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만든다. 모래성을 쌓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그림을 그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만드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아이들이 보여준다. 우리는 그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인가, 소비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세상에 내보낸 것이 무엇인가. 내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무언가를 오늘 만들었는가. 그 무언가가 크든 작든,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준다.

AGI가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만드는 것의 의미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해진다. AI가 만드는 것은 패턴의 재조합이다. 인간이 만드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고, 관계에서 태어난 것이고, 실패를 통과한 것이다. 그 차이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왜 만드느냐에 있다. 그리고 왜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인간뿐이다.

누군가는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미뤄온 무언가가 떠올랐을 것이다. 쓰고 싶었던 글, 만들고 싶었던 것, 시작하고 싶었던 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작아도 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된다. 만들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소비자에서 창조자로 돌아서는 첫 번째 순간이다. 그 순간이 오늘일 수 있다.



이 글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가》에 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무우인간 : 바카라에 담지 못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