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지수는 한숨 돌리며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이 먹은 아침을 치우고 커피를 내린다.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분주한 아침의 소리가 들린다. 냉동고에 얼음을 꺼내어 내려놓은 커피에 가득 넣는다. 유튜브에 적당히 리듬감이 있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튼다. 차가워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소설바카라을 폈다. 한 페이지를 다 읽어가던 찰나 카톡이 울린다. 지수의 베프 민경이다.
"나 삼성전자 주식이 없어서 너무 슬프다 ㅠㅠ"
민경은 아침부터 지수에게 주식타령이다. 그녀는 주식은 안 하지만 부동산은 기똥차게 해서 벌써 노른자 땅에 신축 아파트도 매수했다. 그런 그녀도 매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코스피 시장에서 여기저기 돈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우울한 것이다.
"나도 삼성전자 주식 2개밖에 없어서 너무 슬프다 ㅠㅠ"
지수도 슬프다. 몇 년 만에 오는 이 상승장에서 왜 삼전 주식이 2개밖에 없는 건지. 그리고 그녀의 남편 허 부장은 왜 삼전 주식은 없고 비실비실한 미국 주식만 갖고 있는 건지. 외벌이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생활비와 월세 때문에 허 부장은 생계형 주식을 한다. 사실 그의 주식 투자 경험은 꽤 오래됐다. 슬롯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했으니 20여 년은 됐을까. 전문 투자자는 아니지만 꼬박꼬박 국내외 경제 뉴스를 챙겨보고 나름의 투자 관점이 있다. 하지만 여윳돈으로 주식을 했을 때와 생계형으로 하는 주식은 확연히 다르다. 외벌이가 된 후 허 부장은 주식 롤러코스터를 탄다. 주식이 오르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감이 솟구친다. 그러나 주식이 하락하면 그날부터 신경이 바늘 끝처럼 예민해진다. 그의 기분에 따라 지수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큰일이네. 주식이 계속 하락이네. 일단 팔아야 하나..."
"조금 내버려두어봐. 오르겠지"
"어떻게 내버려두어. 당장 이번 달 월세 내야 되는데"
라고 허 부장은 지수에게 쏘아붙인다. 지수는 그녀가 이 집안의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바카라감과 미안함에 주눅이 든다. 그럴 필요가 없어도 그녀는 위축이 된다. 신나게 바깥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 것일까. 맞벌이를 할 때 지수는 생활비로 허 부장의 카드를 쓰는 것에 당당했다. 니 돈 내 돈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고 목돈이 들어갈 때는 그녀가 벌어 저축해 돈 돈을 쓰니 생활비는 허 부장의 카드를 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수의 경제 활동이 끊기자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 소심해졌다. '혹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지? 그러면 보험비도 오르고 수리비도 발생할 텐데'와 같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부터 걱정을 한다. 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수를 공포 속에 가둔다. 아직 가난하진 않지만, 곧 가난해질 수도 있다는 공포. 자본주의 슬롯에서는 이렇듯 돈을 벌고 못 벌고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지수는 종종 이런 공포에 휩싸이는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무능함에 치가 떨린다. 미칠 것 같다.
그날 허 부장이 가지고 있는 주식 종목이 큰 폭으로 하락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허 부장은 소파에서 티브이를 틀어놓고 빨래를 개는 지수가 한심해 보인다.
"와이프, 짐 쌀 준비해. 우리 이 집 월세 못 낼 수 있어"
지수는 티브이를 끄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눕는다. 눈물이 난다.
'아,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