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한톨에 담긴 가을

#갈색

by소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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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을이면 산길을 걷다 마주치는 밤나무 아래에서 밤송이를 발견하는 일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가시투성이 밤송이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 갈색 알밤을 보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뻤다.


그 기억 때문이었을까.

어느 가을날, 아들에게도 그 작은 설렘을 안겨주고 싶어 밤을 찾아 길을 나섰다.


알밤으로 이름난 공주의 산자락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가족이 와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들의 다정한 목소리가 산길 곳곳에 번져 있었다. 우리도 장갑이며 작은 도구들을 챙겨 야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야산에는 밤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누군가가 다 주워 간 듯, 밤나무 아래에는 빈 밤송이와 낙엽만 수북했다. 아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폈지만 좀처럼 밤 한 톨을 찾지 못했다.

조금 더 산속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풍경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곳에는 밤나무마다 탐스러운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풍성한 가을이 그곳에 가득했다.


아빠가 나무를 살짝 흔들었다.

우두둑.

밤송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잘 익은 알밤들이 낙엽 위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 순간 아들의 눈이 반짝였다. 방금 전까지 지쳐 있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쪼르르 달려가 밤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엄마, 밤 따기 체험이 아니라 밤 줍기 체험이네요.”

그러더니 잠시 후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밤 찾기가 더 어려워요.”


정말 그랬다.

갈색 흙과 낙엽 사이에 숨어 있는 알밤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눈앞에서 굴러갔는데도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헤집다 보면 어느새 작은 알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밤 한 톨을 찾았을 뿐인데 마치 커다란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알 한 알 밤을 주웠다. 많이 담으려는 욕심보다는 서로 먼저 찾겠다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 바구니에는 생각보다 많은 밤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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