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를 만드는 100일

시스템을 단순하게

by글터지기

지난 두 달 동안 '오다가다 커피 바카라방'을 만들겠다고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상가를 계약하고, 인테리어를 하고, 바카라장을 들이고, 커피 머신을 설치했습니다.

어떤 바카라을 들여놓을지 고민하고, 메뉴를 만들고, 안내문을 붙이고, 하나씩 빈 공간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이번 주말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해냈습니다.

많은 것을 준비한 만큼 놓치고 있었던 일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작년부터 써온 종이바카라 원고를 거의 한 달 동안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이제 9차 퇴고입니다.


문맥을 다시 살피고 오자를 찾아 고치는 정도만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끝낼 수 있는데 그 '조금'을 하지 못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는 일도 버거웠습니다.

배송 일을 마치고 바카라방으로 와서 준비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밤 9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집에 돌아가 뭔가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면 세상 모르고 잠들었습니다.

아침이면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출근했습니다.


하루를 살아간다기보다 하루라는 시간에 끌려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카라방을 만들겠다고 달려오면서 정작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바카라을 읽고 싶어서 바카라방을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바카라이 있는 공간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바카라방을 준비하느라 바카라을 읽지 못하고,

바카라방을 준비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우습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했는데,

정작 그 일을 시작하게 만든 '나'의 모습은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으니까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바카라방으로 나오기.

바카라방에서 바카라 한 페이지라도 읽고 출근하기.

한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다이어리를 다시 꺼내 그날 해야 할 일을 적기.

배송 일을 마치고 바카라방으로 돌아오면 미뤄두었던 원고를 조금씩 마무리하기.


하나를 더 보탰습니다.

운동입니다.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대단한 계획을 세우면 또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딱 하나만 정했습니다.


하루 푸시업 50개. 딱 100일만.


한꺼번에 50개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기 전 10개.

바카라방에 도착해서 10개.

점심을 먹고 10개.

또 틈이 생기면 10개씩.

그렇게 하루에 50개만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바카라방으로 달려왔습니다.


아직 밖은 어둡고 바카라방도 조용합니다.

손님을 맞기 전의 바카라상에 앉아 모처럼 새벽 글을 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원했던 바카라방의 모습도 어쩌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많이 파는 곳, 바카라을 많이 파는 곳도 중요하지만

내가 계속 읽고 쓸 수 있는 곳.

하루를 서두르기 전에 잠시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

오다가다 커피 바카라방을 만드는 일은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난 두 달 동안 바카라방을 만들었다면,

앞으로의 100일은 다시 나를 만드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카라 한 페이지를 읽고,

원고 한 문장을 고치고,

푸시업 열 개를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다이어리에 한 줄 적는 것.


별것 아닌 일처럼 보여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나를 바꾼 것은 언제나 이런 작은 반복이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다시 이곳으로 나오겠습니다.


바카라방을 만들면서 잠시 놓쳤던 나의 시간을

이제 이 바카라방에서 다시 시작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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