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펨벌리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을까?

환대의 측면에서 읽는 『오만과 편견』

by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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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 아치형 대문이 있는 집이 있었다. 정원은 장미로 가득했고, 특히 아치형 대문에도 장미꽃으로 덮혀 있서 그 집이 참 좋았다. 6월이면 장미 향이 돌담 너머로 은은하게 퍼지곤 했다. 장미꽃으로 둘러진 아치형의 대문은 나를 환대(hospitality)하는 느낌을 주었다. 꼭 그 집 마당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나를 맞이하는 느낌의 환대 말이다. 어떤 날은 집 주인이 아치형 대문 안에 들어와 꽃들을 구경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시기도 했다. 그러면 살며시 정원에 들어가 장미 꽃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도 했다. <들장미 소녀 캔디> 만화의 장미 꽃밭이 현실에도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벅차했는지.


환대는 타인에게 공간,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 슬롯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환대는 무엇보다 공간을 내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어린 시절 아치형 장미 정원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름답게 정성들여 가꾼 꽃들을 볼 수 있도록 정원 안의 공간을 허락해 주신 것, 그것이 나에게는 매우 큰 기쁨의 환대였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여러 공간 중에서 눈여겨 볼 인상적인 공간으로 우선 『오만과 편견』의 펨벌리 저택을 고르고 싶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펨벌리 저택이 엘리자베스를 맞이하고 환대해 주는 모습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독자인 나까지도 환대해 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나는 펨벌리 영지 안에 들어와 정원을 산바카라하고 있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전통있는 물건들과 역사 깊은 초상화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공간이 엘리자베스를 환대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그 영지는 다아시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는 오만한 공간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와의 치열한 논쟁 후에 오만함을 내려놓고, 자신의 편견과 잘못을 진심으로 돌아보면서 그녀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깊은 존중과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공간도 품격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엘리자베스는 펨벌리의 저택, 음식, 하녀장과 하인들이 손님을 대하는 방식, 잘 가꾸어진 정원과 산바카라로가 잘 구비된 전망좋은 목초지 등에서 다아시의 진정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펨벌리 저택은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자연 지형을 살려서 지어져 있어 자연과 품격있게 조화를 이룬다. 저택 내부는 오랜 하녀장인 레이놀즈 부인의 섬세한 손길로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레이놀즈 부인은 자신의 일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다아시를 칭송할 때 다아시가 아랫사람을 얼마나 너그럽고 유연하게 대해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품격있는 공간을 한발자국 한발자국 내딛으며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해 품었던 오해를 거두게 된다.


길은 그 계곡 쪽으로 다소 급하게 굽어 있었다. 저택은 크고 위풍 있는 석조 건물로, 오르막에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고, 뒤로는 숲이 울창한 구릉이 받쳐주고 있었다. 또 저택 앞으로는 원래 있는 개울을 더 넓혀놓았는데, 인공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둑들은 형식적으로 가는 것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괜스럽게 꾸며놓지도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기뻤다. 자연의 묘미가 이토록 손대지 않고, 혹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서툰 취향 탓에 훼손되지 않고 이토록 살아 있는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일행은 모두 열렬히 찬탄하여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느꼈다. 펨벌리의 안주인이 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언덕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 문을 향해 마차를 몰아갔는데, 저택을 더 가까이서 살펴보면서 그녀는 혹시 소유자를 마주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다시 일었다. 객실 하녀가 잘못 안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일행이 집 구경을 부탁하자, 현관 안으로 안내를 했는데. 함께 하녀장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여유가 있던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해졌다. 하녀장이 왔는데, 점잖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자였고 상상했던 것보다 덜 세련됐지만 더 친절했다. 일행은 그녀를 따라 식당 겸 거실로 들어갔다. 갖출 것은 다 갖춘 넓고 배치가 잘 된 방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훅 훑어보고 나서, 창가로 가 경치를 즐겼다. 그들이 방금 내려온 언덕은 위로는 숲이 덮고 있고, 멀리서 보니 더 가팔라 보이는 게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땅의 모양새도 모두 훌륭했다. 그녀는 강이라든가, 둑 위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 구불구불한 계곡 등 눈길이 미치는 모든 전경을 기쁨에 차서 바라보았다. 일행이 다른 방으로 들어서면 이런 경치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어느 창문에서나 저마다 아름다운 볼거리가 있었다. 방들은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가구는 소유주의 재력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나, 번지르르하지도 쓸데없이 세련되지도 않아 엘리자베스는 그의 미적 안목에 감탄하였다. 로징스의 가구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오만과 편견> 중에서, 34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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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전공, 제인 오스틴을 좋아합니다. 에세이를 쓰고, 시를 쓰고, 학습 자료를 만들고 북리포트를 쓰는 창작자입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중학교 영어 교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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