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오만과 편견』의 Bibliophile

『오만과 편견』판본 알아보기

by제이오름

아무리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했지만 바카라장 앞에만 가면 맘이 약해진다. 오래 공들여 구한 바카라이거나 좋아하는 바카라들은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더군다나 나의 손때가 묻은 바카라들은 이미 나와 오랜 벗이 되었기에 어찌 그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 벗들은 바카라장 한 켠에 머무르며 늘 나를 기다린다. 아이들 어릴 적에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대학시절 산 바카라들 중에 일부는 시골에 내려 보냈었다. 제인 오스틴 바카라 원서 몇 권과 18세기와 19세기 영문학 바카라들이 섞여 들어갔다. 바카라장 맨 위칸에 꽂혀있는 노톤(Norton) 출판사의 『제인 에어』 바카라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나 또한 고서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음을 스스로에게 고백해 본다. 기회가 된다면 제인 오스틴의 19세기, 20세기 초반의 바카라들을 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능이나 할까.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에서 2억 5천이 넘었다는 『오만과 편견』의 초판본이나 휴 톰슨의 삽화가 그려진 1894년 피콕 판본은 구경도 못해보겠지만, 고풍스런 천으로 커버를 감싼 한정판 바카라들에 관심을 꾸준히 갖다 보면, 한 권쯤은 소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가져 본다. 헌바카라방을 순례하며 빛바랜 고서를 수집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고서광(Bibliophile)이었던 찰스 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톰슨의 <사계절> 같은 바카라은 약간 찢어지고 바카라장 귀퉁이가 접혀 있을 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까다로운 성미 때문에 따뜻한 인간적 감정을 몰각하지만 않는다면, 그 옛날에 "순회도서관"에서 빌려 주던 <톰 존스> 및 <웨이크필드의 목사> 같은 바카라의 더럽혀진 바카라장이며 닳아빠진 외양이며, 아니, 가죽 냄새를 능가하는 곰팡이 냄새 같은 것도 진정한 독서 애호가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런 바카라들은 수많은 엄지손가락들이 즐겁게 그 바카라장을 넘겼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가!(찰스 램 수필, <바카라과 독서에 대한 초연한 생각> 중에서)


제인오스틴 수집가들은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의 원본 초판을 가장 탐내는데 이 초판본들은 최고가의 희귀서로 대접받고 있다.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바카라들이다. 역대 가장 고가에 거래된 『오만과 편견』은 1813년 토머스 에거턴 출판사에서 출간된 3권 구성의 1쇄 초판본(First Edition in 3 Volumes)이다. 미술품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에서 19만 5천달러(한화 약 2억 6천만원) 정도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초판본을 보면 제인오스틴 이름 대신에 "By the Author of 'Sense and Sensibility"라고 적혀 있다. 당시 여성 작가는 이름을 드러내는 게 어려워서 익명으로 출간을 하곤 했다. 초판본은 1813년 첫 출간 당시 약 1500부만 인쇄되었는데, 200여 년의 세월 동안 3권 세트가 손상없이 온전히 보존된 수량은 매우 극소수라고 한다. 극소량의 희귀성이 있으니 부르는게 값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image.png<제인오스틴> 초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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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눈여겨볼 판본은 1894년 피콕 판본이다. 화가 휴 톰슨의 삽화가 들어가 있는 빅토리아 시대 특별판으로서 짙은 녹색 천 표지에 화려한 금박 공작새(peacock)가 양각되어 있다. 화려한 공작새 표지가 눈길을 끌기에 "피콕 에디션"이라 불리기도 한다. 바카라 내부에는 160여개의 섬세한 펜화 삽화가 들어가 있어서 고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성배로 통한다고 한다. 공작새의 우아하면서도 오만한 자태는 소설의 핵신 주제인 '오만(pride)'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피콕 커버는 빅토리아 시대 말기 탐미주의 북 디자인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후대 펭귄 클로스바운드(clothbound)나 각종 리커버 에디션의 공작새 모피브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지난 여름 2026 국제 도서전에서 구입한 펭귄 클로스바운드 양장본을 구입한 일이 있는데, 이런 연관성이 있다니 놀랍고 흥미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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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를 보면, 섭정 시대(Regency Era)의 드레스, 코트, 무도회 풍경, 인물들의 미묘한 표정과 눈빛 교환까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위트 있게 그려냈음을 알 수 있다. 각 장의 시작을 알리는 장식 문자(Initial Letters)와 장(章)이나 글의 끝부분에 넣는 작은 장식 그림인 장말(Tailpieces) 그림까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디자인되어 있다. 당대 저명한 문학 비평가인 조지 세인츠버리가 바카라의 서문을 썼는데, 세인츠버리는 이 서문에서 제인 오스틴을 열성적으로 사랑하고 숭배하는 팬들을 가리켜 "제이나이트(Janeite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판본을 통해 '제이나이트'라는 용어가 대중과 비평계에 널리 정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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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지는 판본과 만화 삽화로 이어지는 현대 판본에 대한 설명은 Jane Austen's House의 내용을 참고로 했다. Thomson과 마찬가지로, Brock도 빅토리아 시대에 자신의 삽화를 그렸다. 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옷차림에서 이를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베넷이 들고 있는 모피 손토시(fur hand muff)를 보면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Brock은 이 장면을 겨울에 일어난 것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이런 손토시는 추운 겨울날 산바카라할 때 여성의 손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물건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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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Brock이 그린 삽화들


Charles E. Brock의 삽화가 발표된 지 불과 몇 년 후인 1899년, 출판업자 J. M. Dent는 역시 삽화가였던 Charles의 형제 Henry M. Brock에게 이 판본을 위한 새로운 속표지(frontispiece) 삽화를 제작해 달라고 의뢰했다. Charles의 판본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판본이 제작된 이유는 1898년에 리소그래피(lithography)라는 새로운 인쇄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인쇄 기법은 같은 이미지를 여러 번 겹쳐 인쇄하면서 매번 다른 색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Dent는 이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활용하여 『오만과 편견』의 등장인물들을 생생한 컬러로 표현했다고 한다. Dent는 제인 오스틴의 여섯 소설 모두에 대해 새로운 컬러 판본을 출간했고, 속표지 삽화 작업을 Brock 형제에게 나누어 맡겼다. Charles는 『이성과 감성』, 『에마』, 『설득』의 새로운 삽화를 그렸고, Henry는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그리고 물론 『오만과 편견』을 맡았다. Henry M. Brock이 2권(Vol. II)의 속표지에 그릴 장면으로 선택한 것은 당연히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편지를 주고받는 장면이었다. Charles의 삽화와 마찬가지로 Elizabeth는 겨울용 머프(muff)를 들고 있고, 다아시는 그녀에게 모자를 내밀고 있지만, 이 삽화에서는 재킷 위에 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다. 이는 Charles의 삽화를 거의 그대로 비춘 듯한 모습으로, 두 형제의 작품이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여준다. 이 삽화를 보기전까지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만나는 계절을 봄이나 여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주제와 메시지에 천착하다보니 계절감을 잠시 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머프 하나가 작품을 다시 보게 만들다니 삽화의 힘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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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전공, 제인 오스틴을 좋아합니다. 에세이를 쓰고, 시를 쓰고, 학습 자료를 만들고 북리포트를 쓰는 창작자입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중학교 영어 교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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