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싸이월드 허풍이 불러온 방구석 임사체험

by보건교사 옥쌤



싸이월드에 45도 각도로 얼굴이 갸름하게 찍힌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는 임팩트 있어 보이게 단 한마디, 심플하게 적어 넣는다.

[볼살을 빼고 싶을 땐 쟁기 자세를.]


빠르게 올라오는 댓글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통통한 볼 아래 입꼬리가 멈출 줄 모르고 자꾸만 올라간다.


'쟁기 자세? 요가야?'

'몇 kg 빠졌어? 요가만 했어?'

'살 많이 빠졌다..'


신이 나서 쟁기 자세가 어쩌고, 언제부터 요가를 했고 저쩌고 답글을 달다가 아차 싶어서 거울을 본다. '분명 몸무게만 두고 보면 평균인데...' 통통한 볼살을 꼬집어 보았다가, 턱 부분에 손을 얹어놓고 쭈욱 살을 양옆으로 밀어 보기도 하고, 귀여운 턱살을 쿡쿡 찔러본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개학하고 뭐라고 말하지... 아주 조금 빠졌는데 엄청 많이 빠진 척을 해버렸네...'


청소년 시기에는 뇌가 덜 발달해서 현재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더라. 내 10대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그렇다. 고2 겨울 방학, 요가를 한지 고작 6개월 차였던 나는 학교 친구들을 못 보는 짧은 기간 동안 요가로 인해 살이 빠졌다는 허풍을 공개적으로 싸이월드에 게시한 것이다.


치밀하지 못한 허세의 대가는 가혹하다. 재빠르게 방바닥에 매트를 깔며 얼른 쟁기자세를 취한다.


'그래. 선생님이 쟁기 자세를 자주 하면 볼살이 빠진댔어. 개학까지 몇 주 남았으니 매일 하다 보면 진짜로 빠질지도 몰라.'



인생 처음으로 매료된 운동은 요가였다. 자의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집 근처 요가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하는 중에는 운동 자체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동작은 '사바사나'였다. 그런데도 몇 개월을 꾸준히 한 이유는 요가 끝나고 나서 요가원에 남아 강사님과 친구와 함께 도란도란 앉아 다도를 하며 수다 떠는 시간이 좋아서였다.


어린 10대 소녀들의 맥락 없는 이야기를 미소와 함께 차분히 경청해 주시고, 수련 중에는 울림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듬어 나가시는 선생님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좋았다.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아마 두세 달 만에 요가를 끊었을 거다. 선생님과의 다도 시간이 좋아서, 그걸 흉내 내고 싶어서 엄마에게 졸라 다도 세트를 사고 찻잎을 골라보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 시절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요가이기도 했다. 순발력, 근력, 민첩성 모든 게 다 떨어지지만 다행히 유연성 하나는 좋았다. 쭉 뻗으라고 하면 뻗고, 숙여보라면 쑥 숙였다. 스스로 요가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다른 건 못해도 이것만은 내가 잘 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근력이 떨어져서일까. 절대 안 되는 동작들이 있었다.


처음엔 선생님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어깨 서기? 어깨로 서라고? 어깨로 어떻게 서지? 무슨 말이지? 바닥에 누워 다리를 수직으로 올려놓고 선생님이 시킨 대로 손으로 허리를 받친 채 다리를 더 들어 올려보았다. 이해를 잘못했나 싶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이 양발을 천장으로 뻗어보려고 끙끙대다가 계속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두 사람 정도가 태연하게 어깨로 서고 있었다! 어깨로 서는 게 가능하구나!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제일 유연하고 요가를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질 수 없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다리를 하늘로 향해 번쩍 올려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바닥으로 팡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엉덩이가 원망스러웠다.


'이 자세는 평생 못하지 않을까.'


한 달이 되어도 잘 되질 않길래 자포자기하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다. 내 두 다리를 붙잡고 천장 쪽으로 쑥 끌어올리셨다. 여리여리해보이는 그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건지, 대단한 손아귀 힘이었다.

"버텨 보세요."

선생님이 손을 놓자 내 다리는 매가리 없이 휙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여태까지 엉뚱한 곳에 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선생님은 또 천장으로 올라가려다가 떨어지려는 내 다리를 붙잡고 또 끌어올렸다.

"버텨 보세요."

선생님이 손을 놓았다. 내 다리는 그대로 버텼다. 아니. 엉덩이, 팔, 등, 어깨 등 내 신체의 온갖 근육들이 유기적으로 뭉쳐서 그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한 군데에만 기대어서 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특히 배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



두 다리가 벌벌 떨렸다. 자세가 힘들기보단 사정없이 떨리는 다리가 창피해서 포기하고 싶었다. 심지어 이마와 눈알로 쏠리는 이 열감 덕분에 머리통은 압력밥솥이 되어 증기를 내뿜는 느낌이었다. 다리는 사정없이 바들바들 떨려 한기가 느껴지는 기괴한 상태라니.


하지만, 성공했다.


그 이후로 어깨 서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이 성취감에 도취되려고 할 때 선생님은 여기서 멈추질 않아 다시 벽에 막히고 말았다.


"자, 거기서 다리를 머리 뒤로 툭 넘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도대체 무슨 자세를 하라는 건지 감도 오질 않았다.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훔쳐보고 싶던 찰나, 선생님이 울림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 서기 자세에서는 절대 고개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이크. 저 지경이 되면 남의 속마음도 듣나. 어쩔 줄 몰라 허공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는 내게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 강력한 손아귀 힘으로 내 발목을 붙잡고는 머리 뒤쪽 바닥으로 천천히 끌고 갔다. 발끝이 바닥에 닿는 순간, 내 허벅지가 얼마나 무거운지 느껴지며 가슴과 목구멍이 압박되어 숨이 턱 막혔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를 타고 뜨거운 불길이 휙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컥. 이런 게 바로 임사체험이란 걸까? 숨길이 막히자 모든 기억이 아득해졌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다시. 어깨 서기로 돌아오세요."


어깨 서기가 이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잘만 따라 하다가 어깨 서기 차례만 오면 도망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어깨 서기 차례로 도망가고 싶었다. 재빠르게 어깨 서기 자세로 돌아온 나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목, 어깨, 등, 허리, 엉덩이, 다리 그리고 발 순서로 천천히 돌아옵니다."


선생님의 나긋한 목소리는 무시한 채 그대로 발을 휙 떨어트려 대자로 누워버렸다.


"사바사나."


살았다! 마음속으로 '사바사나 사랑해'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선생님이 불을 끄자 왠지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면 이런 기분일까?


요가가 끝나고 다도를 하며 투덜거렸다. 그 숨 막히는 임사체험과 같은 쟁기 자세를 꼭 해야 하냐며. 그때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내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렸다.


"쟁기 자세를 많이 하면 볼살도 빠질 거예요."


그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갔던 나는 10대 시절 그렇게 열심히 방구석에서 요가 매트를 깔고 "영차!" 혼자 힘으로 다리를 천장으로 뻗었다가 발끝을 바닥에 닿아 목구멍을 턱 막는 그 기분을 참아냈다.


'빠져라. 볼살. 이미 질러 버렸다. 제발.'


비록 시작은 얄팍한 허풍이었고 과정은 매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서툰 몸짓이었지만, 내 인생 가장 뜨거웠던 첫 취미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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