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하게 좀, 이 녀석아 (2026)

by김민주

"좀 대범하게 생각해라. 왜 이렇게 겁이 많냐, 넌."


전화를 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런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러게, 알겠어."라고 하곤 했다. 그럼 아버지는 다 별 게 아니라면서, 다 별 게 아니더라면서. 매번 천안에 있는 시험장에 나를 데려다주던 날의 이야기를 했다. 재료를 빠짐없이 챙겨 넣은 화구박스를 하나 들고, 가군 시험 땐 수험증을 두고 가서 한 차례 소동이 일었던 경험이 있으니 잊지 않고 챙겼다. 뒷좌석에 화구박스를 덜렁 실어놓고 조수석에 앉았다. 청주에서 천안까지 그것 참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휴게소에 들렀다. 우동을 먹었던가, 돈가스를 먹었던가. 새우튀김이 든 우동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10년도 넘은 기억이라 그게 맞나 싶다. 아버지는 곧 죽어도 끼니를 꼭 챙기는 사람이었으므로,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음식을 맛있게도 자셨다. 나는 깨작거리면서도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 그릇을 겨우 배워냈다. 잘못해서 체라도 하면 낭패니 깨작깨작, 천천히, 잘 씹어 넘기려고 노력하면서. 성질 급한 아버지가 진작에 그릇 바닥을 보고도 내 그릇이 빌 때까지 가만 앉아 기다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사이에, 그리고 그 후 시험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둘 다 말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으면 내내 아버지를 향해 재잘거렸던 어린 시절이 습관이 되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무슨 말을 하든 멀미가 날 것 같아 참았다. 시험장에 도착해서 뒷좌석에 실어놓았던 화구박스를 질질 끌어내리고, 다시 조수석 문을 열었다. 5시간의 시험 시간을 내리 이곳에서 기다릴 아버지에게 뭐라도 탐탁한 한마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갔다 올게!" 그러나 입을 여니 탐탁지 못한 소리만 나왔다. 아버지는 짐짓 언 표정으로 "그래,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해, 하던 대로."같은 말을 했다. 사실 무언가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잘 기억 안 난다. 아버지라면 그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시험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짧은 사이에, 등 뒤로 아버지 차가 점점 멀어져 갈 때에, 화구박스가 무겁고 커서 다리를 자꾸 쳤다. 우동인지 뭔지를 한 그릇이나 든든히 먹었는데도, 다리는 씩씩하지 못해 화구박스에 치일 때마다 휘청였다. 한껏 흔들거리면서 건물 입구에 들어설 때, 뒤통수가 내내 시리고 따가우니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 번 뒤돌아, 이번에야말로 탐탁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갈까 싶었지만, 이번이라고 탐탐하겠나 싶어 그대로 휘청거리며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몇 년이나 지나서부터 아버지는 전화만 했다 하면 대범해지라는 말을 하며 그날을 얘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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