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을 묻는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by재희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다. 재미보다 내가 원하는 지식과 인사이트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바카라을 고른다. 나이가 들수록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 더 생기는 것 같다. 그래도 바카라을 골고루 읽어야지 싶은 마음이 있다. 문학을 읽는 것이 교양이라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들은 한 번쯤 읽어보려 한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안녕이라그랬어>도 그래서 골랐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이야기일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작가의 이름,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에 기대었다. 바카라은 재미있었고 동시에 아팠다. 소설이었지만 내게는 현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부동산 폭등, 전세 사기, 부모 돌봄 등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늘 ‘가진 것‘으로 비교하고 평가하며 경쟁하는 우리 모습이 안쓰러웠다. 우리는 정말 ’안녕‘하게 살고 있는 걸까.



‘좋은 이웃‘이라는 단편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문장이었다. 나도 여전히 사람을 지키는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재산은 내 마음을 들었다놨다, 쥐었다폈다 하는 요물같은 존재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도 이웃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아파트와 자동차, 주식과 코인처럼 돈으로 환산되는 모든 것들로 타인과 비교한다.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다. 비교하는 마음은 남보다 우월하고 싶다기 보다,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 생기는 것 같다.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컸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성실히 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삶만 멀찍이 뒤쳐져 있다고 느껴진다. 그러니 억울하고, 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단편 ‘홈 파티’에서 성민이 한 말이 또한 우리 내면의 소리가 아닐까.


“겉으로는 노동과 근면을 미덕인 양 가르쳐온 슬롯가 갑자기 저더러 문맹이라니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간 저나 제 부모님이 살아온 방식을…… 응, 실존을 부정당한 것 같아서.”


나와 아내는 이 불행 경쟁에서 조금 비껴 서 있으려 노력한다. 서울에 있는 11평 빌라 전세로 시작해, 경기도 신도시의 임대아파트를 거쳐, 지금은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쯤으로 훌쩍 넘어갔다. 내가 사는 곳을 말하면 “거기가 어디에요?”라고 묻는 사람이 절반이다. 주식 투자도 해 본 적 있지만, 마음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지금은 ETF 상품만 조금씩 산다. 삼전닉스 이야기가 한창일 때도, 여윳돈이 없기도 했지만 그 흐름에 뛰어들 생각도 전혀 없었다. 내 삶과는 조금 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가득하다. 일하기 싫을 때도 많고 주식, 코인 대박으로 경제적 자유를 가지면 좋겠다는 상상도 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런 삶은 내게 찾아오지도 않았거니와,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주식 시세와 정보에 마음을 뺏긴 삶 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며 사는 삶이 내게 더 잘 맞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곁에 있는 사람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여전히 노동과 근면, 그리고 사랑이 삶의 중요한 미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 ‘빗방울처럼‘의 지수는 전세 사기로 인해 상상하기 힘든 아픔을 겪는다. 사기를 치거나 이를 묵인한 이웃, 당한 사람에게도 바카라임이 있다고 말하는 이웃, 안타깝다며 소문을 퍼뜨리는 이웃 사이에서 지수는 완전히 고립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도배하러 온 이주노동자가 집의 상태를 보고 지수에게 조용히 안부를 묻는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말에 지수는 처음으로 소통과 위로를 경험한다.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 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돈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이지만, 돈만으로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한다. 사다리 위에 높이 올라가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세상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때로는 서로의 안녕을 물어주는 이웃, 친구, 가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삶은 물질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관계로 충만해진다.


그러고보면 소설의 역할도 비슷한 것 같다. 효율성과 생산성만 쫓으며 달려가는 삶에서 잠시 멈추게 한다. 그리고 나와 내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정말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고 있냐고, 네 삶은 여전히 안녕하냐고 질문한다. 나는 앞으로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나이가 들수록 문학을 조금은 더 가까이 두고 싶어졌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씩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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