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전쟁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정지우

by재희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대학 마지막 학기가 시작할 즈음이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때, 이력서를 한참 쓰고 지루할 때면 학교 도서관 한켠 멀티미디어실에서 미국드라마 <24>를 몇 시간씩 보곤 했다. 드라마의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에 반했고 시즌이 끝날 때마다 내 안의 여운을 블로그에 글로 남겼다.


그 후로 드라마와 영화, 바카라과 음악까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한 감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방문자도 댓글도 없었지만, 쓰고 있는 동안만큼은 취준생의 울렁이는 불안함이 잦아들었다. 취업사이트를 드나들다 지칠 때, 드라마나 바카라에 푹 빠졌다가 그 여운을 담아 글쓰기에 몰입하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공허하고 불안한 청춘이 현재를 버티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정지우 작가가 쓴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바카라에는 나의 경험과 맞닿은 이야기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계속하여 글을 쓰게 하는 힘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다. 불안, 답답함, 초조함, 슬픔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글을 쓰게 만든다. 그것들을 해소할 다른 방법들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느껴진다.”


20대의 불안이 글쓰기를 시작하게 했다면, 30대 후반에 찾아온 우울은 글쓰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상사, 동료들 간의 갈등으로 늘 긴장 상태였고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가정에서는 퇴근 후 육아, 주말 육아로 몸도 마음도 쉬지 못했다. 당시 글쓰기는 나의 감정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자, 지친 마음을 돌보며 어루만지는 일이었다. 긴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핸드폰의 작은 자판으로 글을 쓰는 습관도 그때 만들어졌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지하철에서 매일 나의 감정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그것들과 싸워 이기고자 애쓰는 그 모든 과정이 글쓰기다. 나는 거의 매일 싸우고 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내가 써낸 글들은 아마도 그런 전쟁의 상흔, 혹은 기념비 같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글쓰기 전쟁의 결말까지 우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인간관계로 힘들었지만 글을 쓰고자 마음먹으면 아침의 커피 한잔, 좋은 동료와의 수다, 일에서 얻는 보람 같은 작지만 소중한 일상이 생각났다. 고된 육아 속에서도 아이에게 사랑받는 기분, 예쁜 웃음과 쌓여가는 추억들을 떠올린다. 불안이나 우울 같은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글쓰기는 결국 현재에 대한 감사와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백지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는 나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것 같다. 괴롭다고 느끼는 현실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내 삶의 풍경을 다시금 살피게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행복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내 삶을 보다 정답게 느끼게 해주는 글쓰기를 하며 살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나에게도 있다. 불안한 날도, 짜증 나는 날도, 평온한 날도 글을 쓰며 더 좋은 삶을 향해 걷고 싶다.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글쓰기 전쟁을 치르며 내 삶의 영토를 아름답게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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