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매년 대학생 봉사단 지원서를 보면서 놀랄 때가 많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대학에서는 학업은 물론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 개인 프로젝트까지 해내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요즘 청년들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난 1, 2학년 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3 때까지 그렇게 고생했으니 이제는 마음껏 놀자.’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 대학생들과 비교하면 참 철부지였다.
회사에는 대학 졸업을 앞둔 인턴 직원이 있다. 어느 날 대화 중에 그 친구가 툭 던진 말이 있었다.
“삶은 고통이잖아요.”
심각한 분위기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다 나온 한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 친구가 실제로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열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의미있는 성취도 경험하고 있는데도, 마음 한편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압박이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년들의 열심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더 알고 싶었다. 박권일 작가의 <한국의 능력주의>를 읽은 이유다. 박 작가는 20년 전 출간된 <88만 원 세대>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성세대가 승자독식 구조 속에서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당시 내가 썼던 바카라 리뷰를 다시 읽어 보니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한국의 능력주의>는 그때와 지금의 중요한 차이를 짚어 준다. 이제 우리 슬롯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승자독식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패와 낙오의 바카라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사람을 능력과 노력에 따라 평가하고 보상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믿는 사고방식이다. 바카라에서 인용한 「한국슬롯 공정성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한국인은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등 분배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경기처럼 등수에 따라 금, 은, 동을 나누어 주는 게 옳다는 것이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능력이나 재능, 노력에 따라 보상도 달라야 동기부여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격차의 수준이다.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는 한국인이 다른 나라보다 소득 불평등을 훨씬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세계에서 승자독식 구조에 가장 관대한 국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2배 수준이며, 주요 상장사의 임원과 직원 보수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채같은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는 이유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은 불평등에는 비교적 관대한 반면, 절차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공개경쟁시험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 제도를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슬롯를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슬롯”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말 공정한 경쟁은 가능할까. 어떤 이는 매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고 취업준비를 하며, 또 어떤 이는 부모의 부와 인맥을 바탕으로 슬롯 경험과 진출의 기회를 잡기도 한다. 불평등에 관대한 슬롯 속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것인지 의아하다.
이렇게 출발선이 다른 현실은 접어두더라도, 단 한 번의 시험 결과가 평생의 특권이 되는 슬롯도 건강한 슬롯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료 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시험에 통과했으니 공정하다고 봐야할까.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무기계약직으로 급여 격차를 두는 것은 또 어떤 공정일까. 현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저런 의문들이 생긴다.
바카라을 읽으며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이런 문장들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이라는 슬롯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꾸어 버린다. 더 나아가 사람들이 불평등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1%도 되지는 않는 ‘개천의 용’을 향한 질주 때문에 99%의 삶이 피폐해지는 슬롯는 정당하지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다. 용이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슬롯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답이나 해결바카라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청년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증명해야 하고, 뒤처지면 모든 바카라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압박도 느낀다. 그 고통의 밑바탕에는 승자독식의 능력주의가 깊게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쟁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88만 원 세대>를 읽던 때의 나는 청년이었다. 그때는 분명 이 구조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이 불평등한 구조를 유지하는 쪽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바카라감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용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용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슬롯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없다. 그래도 청년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를 하나라도 더 만들고, 조금 덜 불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살면서 받은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는 방법인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