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시간이 한 달이라면

<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by재희

나에게 살아갈 날이 딱 한 달만 남았다고 한다면, 난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낼까? 죽음을 맞이할 시간을 두려워하며 우울함에 빠져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남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역설적으로 삶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먼저 사랑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 회사 동료들까지. 내 삶을 지켜주고 돌보아주었던, 나를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그들에게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덕분에 내가 부족한 것 없이, 외롭지 않게, 의미 있게 살아올 수 있었다고 식사 한 끼를 대접하거나, 작은 선물과 함께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렇게 작별 인사가 끝나면, 사랑하는 아내, 아들과 함께 여행을 가려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멋진 곳이 아니어도 된다.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사랑했던 시간을 퍼즐처럼 맞춰보고 싶다. 나는 몹쓸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행히 아내는 아주 오래전 일들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초능력이 있다. 서로의 기억에 의지해 우리가 함께 한 추억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감정들을 불러오고 싶다. 내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들이니까.


이렇게 마지막의 순간을 상상하고 보니, 내가 원하는 삶은 결국 ’사랑하며 사는 삶’이 아닐까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무척 흔하지만 동시에 참 낯설다. 우리의 삶은 사랑과 거리가 멀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땐 학교에서 시험 성적으로 경쟁하고, 커서는 취업 시장에서 스펙으로 치열하게 경쟁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성과와 인사평가, 그리고 연봉으로 늘 경쟁하며 살아간다. 사랑보다는 질투와 열등감, 미움과 분노, 때로는 권모술수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지난 수십년간 이 경쟁 체제에 순종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는 인정도 받았고 보상도 누렸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위안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삶은 내게 늘 힘들고 진 빠지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나서도 마음이 오랫동안 편안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또 다른 불안이 나를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야겠다고, 그것도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 덕분이었다. 입시 경쟁 속에서도 나를 다그치기보다 믿고 지지해주셨던 부모님, 힘들고 방황할 때마다 함께 술잔을 기울여준 친구들,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함께 고민하고 도움을 주었던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누구보다 가치있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아내와 아들의 사랑 덕분이다.


내가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인생수업>이란 바카라을 읽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녀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삶에서 꼭 배워야하는 지혜를 정리한 바카라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학교이고 삶에 대해 배워야할 것들 투성이지만, 정작 살아가는 동안에는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삶의 진실들이 있다. 그래서 나도 죽음을 상상해본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서 큰 상실감에 빠졌을 때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하고, 간직하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그 대신 이미 갖고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와 진정한 부를 발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만 죽음 앞에서 사랑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아플 때 돌보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며,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그런 삶. 조금 더 나아간다면 상대방에게 있는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이끌어내는 삶, 그래서 자기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삶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약해보일까봐 내색하지 못할 뿐,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


언제 내 삶이 끝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뒤돌아볼 틈 없는 바쁜 일상, 성과 압박과 경쟁, 대출과 생활비의 부담 속에서도, 곁에 있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떨리는 마음을 못본 체 하지 않기를 다짐한다. 나도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다. 자주 실패하고 종종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살아내고 싶은 삶이다.


삶이라고 하는 길고 때로는 낯선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발견합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삶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그리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우리는 진실한 사랑과 관계가 무엇인지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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