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형 게임의 부상: 지쳐버린 현대인의 초상

효율과 선택의 축소

by루니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씻기도 전에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날이 늘어갑니다.

외투도 제대로 벗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켜서 낮 동안 묵혀두었던 '방치형 게임'의 앱을 실행하는 것이죠.

화면 중앙에는 버섯이나 슬라임 같은 작고 귀여운 캐릭터가 저 혼자서 열심히 칼을 휘두르며 몬스터를 잡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화면 하단에 붉은색 알림 표시(Red Dot)가 뜬 버튼들을 영혼 없이 톡톡 두드려줍니다.

그러면 제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는 동안, 캐릭터가 알아서 모아둔 엄청난 양의 금화와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이 멍한 과정을 지켜보며, 기획자로서 가끔 헛웃음이 납니다.

만약 제가 15년 전 기획 회의실에서 "유저가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냥하고 알아서 크는 게임을 만듭시다"라고 제안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팀장님에게 미쳤냐는 소리와 함께 기획서를 얼굴에 맞았을 겁니다.

과거의 게임 문법에서 '플레이(Play)'란 곧 나의 직접적인 개입을 의미했습니다.

몬스터의 패턴을 외우고, 타이밍에 맞춰 회피기를 쓰고, 최적의 스킬 트리를 연구하는 것. 유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시스템은 게임이 아니라 그냥 움직이는 화면 보호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시장의 패권은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복잡한 조작을 요구하는 대작 게임들 사이에서, 앱 마켓 매출 상위권을 휩쓰는 것은 놀랍게도 이 작고 단순한 '방치형(Idle) 게임'들입니다.

여기엔 시장 자체가 통째로 옮겨간 사정도 있습니다.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폭이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모바일은 그저 게임을 하는 플랫폼을 바꾼 게 아니라, 사실은 게임을 '하던' 사람에서 게임을 '안 하던' 사람으로 시장 자체를 넓혀버렸습니다. 예전엔 코어 유저만 쓰던 문법을, 이제는 게임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하루 5분씩 들여다보는 시대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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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차 게임 시스템·밸런스 기획자 게임으로 삶을 해석하고, 시스템으로 사람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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