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민자'일까?

byIris Seok

미국에서 산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유학시절까지 합하면 15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15년 넘게 외국에서 산 사람. 누가 봐도 나는 이민자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난 지금까지 나 자신을 단 한 번도 이민자로 정의내려 본 적이 없다.


왜 내가 스스로의 '이민자'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생각해봤는데,

언제나 '한국에 돌아가서 살 것을 전제'로 미국에 살고있기 때문이었다.


최초로 미국에 오게 된 것은 '유학생 신분'이었으니 당연히 끝이 정해진 시작이었다. 미국에서 취업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졸업하자 마자 한국에 돌아갔다. 운명의 장난처럼 남편과 결혼 후 미국에 다시 오게 됐지만, 이때도 끝은 있다고 믿었다. 남편이 딱 5년만 미국에서 사업을 자리잡게 한 뒤 한국에 돌아가자고 했으니.


어찌보면 참 순수했다. 미국에서 사업을 자리잡는데 5년이면 될 거라는 생각, 그리고 자리잡은 사업체를 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거란 생각. 그런 생각들은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참 터무니없다. 그런데 10년 전의 나는 그 말을 감쪽같이 믿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다시 미국에 되돌아온지 올해로 만 10년. 남편이 약속했던 5년의 두 배 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두 아들은 미국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둘째 아들의 한국어 실력은 너무나 미흡하다.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가 모국어였던 두 아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영어로만 대화하기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영어로 일했는데, 집에 와서도 두 아이의 영어를 듣고 있으면 어느날엔 마음 깊은 곳에서 화가 올라온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토로하기 시작한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너희는 한국인인데 어서 한국어를 쓰라고. 어차피 너희의 DNA는 한국인이다. 너흰 그저 미국에서 태어났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그럴까?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에서 아이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굳이 고집하며 살아야할까? 아이들은 나와 다른 제 3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난 엄마로서 그걸 인정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어른으로 키워내고 싶다. 여기서 평생을 살았다해도, 얼굴이 한국인인 두 아이가, 한국인 부모를 둔 아이가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서로 한국어를 쓰며 100% 의사소통을 나누고 싶다. 난 한국어, 아이들은 영어를 쓰는 그런 반쪽자리 의사소통만 평생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아쉽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말마다 꾸준히 한글학교에 두 아이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 살 날이 올 것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미국 회사에 출근해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는 별개로 미국에서의 삶도 사실 편하고 좋긴 하다. 두 아이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가족이 똘똘 뭉쳐 살아가는 미국 슬롯 문화도 좋고. 나의 그리움은 단지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고향이기 때문에 늘 품고 살 수 밖에 없는 향수로부터 비롯됐다.


미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지낼 수 있는게 사실 가장 좋지 않을까나. 시간과 체력, 경제력이 허락한다면 말이다.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지난 수십년의 세월이 알려준 것은 그 사실 하나다. 그 어떤 것도 인간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집착하지 말자. 단, 희망도 잃지 말자. 원하는 걸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