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밖에는 해줄 게 없어서...

byIris Seok

얼마전 친구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는 기도를 부탁했다. 친구 아이의 나이는 고작 여섯살이었다. 출근길 친구가 지난밤 남긴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심장이 쿵 떨어졌다. 믿기지도 않는 갑작스러운 슬픈 소식에 어찌해야 할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했다.


친구는 지옥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터였다. 병원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을 친구의 모습이 그려졌고, 누워있을 아이를 떠올리니 심장이 지끈거렸다. 대체 뭐라 친구를 위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앞에 무엇이 감히 위로가 될 수 있을까...기도밖에 없었다. 내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건 기도밖에 없어 절망감이 들었다. 평생을 무교로 살아왔지만 마음 속 작은 신앙의 씨앗은 있었기에 친구에게 메시지를 받은 날로부터 매주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고 있다. 처음 교회에 나간 날 기도제목이 친구 사연과 연관돼 있어 소름이 돋았다.


마가복음 6:39-42
예수님은 안으로 들어가 "어째서 소란스럽게 우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다 내보낸 후 소녀의 부모와 데리고 간 제자들과 함께 소녀가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다리다굼!"하셨는데 이 말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열두 살 된 그 소녀는 곧 일어나 걸어다녔다. 이것을 지켜 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부디 이 성경 말씀처럼 기적이 내 친구의 딸아이에게도 일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이후 몇주나 시간이 더 흘렀고, 아직 친구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지옥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을 친구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나의 일상은 잘도 흘렀다. 난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고, 육아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고, 때때로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죄바카라감이 일었다. '친구가 지옥에 있는데, 웃음이 나오니...?'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비난했다.


슬픔은 결국 철저하게 타인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이번에 깊이 느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그 무게를 온전히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각자는 각자의 삶을 살아낼 뿐이라는 사실이 문득 쓸쓸하고 외롭게 다가왔다.


매일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친구와 친구의 아이를 떠올린다. 부디 기적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