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론(24).「하학상달」
비서사적 나선형구조(3-1

- 다양한 경험을 아우르기 위한 동일 주제의 변주

by푸른킴

0. 정의와 개요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는 하나의 주장을 단선적으로 밀고 나가는 독백적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물과 사건과 텍스트들이 하나의 중심 주제 주위를 돌며, 서로를 비추고 응답하는 대화적 구조다. 이때 글은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되돌아오고, 맴돌고, 다시 같은 자리를 통과한다. 그 반복은 단순한 제자리걸음이 아니다.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 듯 보이지만, 앞선 장면들을 지나온 뒤의 귀환은 언제나 조금 다른 의미를 품는다.


이 나선형 글쓰기는 해석학적 순환과 닮아있다. 각 장면은 중심 주제를 향해 기울고, 중심 주제는 다시 관련된 장면들의 의미를 새롭게 비춘다. 부분은 전체를 향해 열리고, 전체는 다시 부분을 해석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구조에서 반복은 정체가 아니라 재해석의 운동이다. 한 번 말한 것을 다시 말하는 일이 아니라, 한 번 본 것을 다른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1. 글은 구조를 통해 비로소 선다

글은 스스로 구조를 갖지 않는다. 글의 구조란 전적으로 쓰는 사람의 의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만약 ‘만드는 인간’, 곧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말이 글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글의 구조와 구성에도 관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글은 만들어져야 한다. 문장이 쌓였다고 해서 곧바로 한 편의 글이 되기 어렵다. 글이 문학의 관점에서 글답게 서기 위해서는 일정한 구조가 필요하다. 문장과 문장, 장면과 장면, 기억과 사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놓여야 한다. 그 질서가 지나치게 느슨하면 글은 흩어지고, 지나치게 단단하면 글은 숨을 잃는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이 구성과 구조의 문제를 신경 쓰려한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단지 ‘쓰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진 글의 기준 가운데 하나로 명확한 서사적 전진이 언급된다. 간단하고 선명한 구조, 바로 이해되는 구성, 군더더기 없이 이어지는 기승전결은 좋은 글의 조건처럼 여겨진다. 특히 하나의 사건이 글의 동기가 되고, 그 사건이 고조와 확장을 거쳐 결말에서 해소되는 구조는 충분히 안정감을 준다. 소설이라면 이러한 서사적 전진은 더더욱 중요하다. 사건은 인물을 움직이고, 인물은 갈등을 통과하며, 갈등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세이를 쓸 때라면 반드시 하나의 사건을 따라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좋은 에세이도 때로 명확한 출발점과 도착점을 가진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에세이는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하나의 감각에 오래 머무르는 글이다. 한 줄의 명제를 앞세워 빠르게 설득하려 하기보다, 여러 장면과 사실과 기억을 불러와 하나의 주제를 천천히 넓혀 가려는 것이다. 빠르게 결론에 이르려하지 않는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가능한 한 그 글에 내재한 질문, 곧 다양한 물음을 통해 주제의 폭넓은 외연을 변주하듯 맴돌며 중심으로 수렴하려 한다.


이런 글쓰기는 한 장면에서 시작된 생각이 다른 장면으로 옮겨가고, 조각처럼 펼쳐지다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되돌아오는 구조를 유지한다. 되돌아온 자리는 처음과 같지 않다. 앞선 장면들을 통과한 뒤의 귀환은 언제나 다른 색조를 띠기 마련이다. 나는 이처럼 하나의 중심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며 의미를 조금씩 깊게 하는 구조를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라고 부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나선형 구조는 방사형이기도 하다. 하나의 중심을 기점으로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한 주제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중심 주제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그 주제를 여러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변주하게 만든다. 사소한 기억, 우연히 마주친 사물, 읽었던 문장, 타인의 말, 오래된 사건, 현재의 감각은 모두 하나의 중심을 향해 느슨하게 감긴다. 각각의 장면은 독립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글이 진행될수록 서로의 의미를 조금씩 밝혀준다.


당연히 글의 통일성은 사건들이 직선적으로 선명하게 이어질 때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다양한 사건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처음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는 과정에서도 글의 통일성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 이 나선형 구조에서 글은 하나의 줄을 따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심을 향해 여러 차례 돌아 들어간다.


다만 나선형 구조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글이 산만해지는 것이다. 아무 장면이나 맥락 없이 늘어놓는 것은 나선형 글쓰기가 아니라 단순한 나열이다. 그러므로 글쓴이는 논지를 놓치지 않고 모든 장면이 서로 엮이도록 구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글 안에는 반드시 중심 개념이 세워져야 한다. 그 개념은 명시적인 주장일 수도 있고, 쉽게 말해지지 않는 정서일 수도 있으며, 끝내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장면이 그 중심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도록 배열하는 일이다.


나선형 구조를 따르는 나의 에세이(특히, 한중담閑中談)는 글의 중심에서 시작하여 바깥으로 퍼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바깥에 배열된 여러 관찰이 중심을 향해 계속 돌아오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리하여 느리고 모호한 글쓰기처럼 보일 수 있다. 때때로 나의 글이 어디로 가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사건은 명확하게 고조되지 않고, 결론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개의 느림과 모호함은 결함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한 경험을 하나의 주제 아래 아우르기 위한 불가피한 형식일 수 있다.


이런 구조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단번에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나서야 의미를 찾고, 어떤 사건은 다른 사건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나선형 구조는 바로 이러한 불확정적인 삶의 전개를 글에 담으려는 구조다. 직선적 구조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고 그것에 명료하게 답하는 글이라면, 나선형 구조는 “그 일은 내 안에서, 그리고 내 밖의 삶에서 어떻게 반복적으로 되돌아오는가”를 묻는 글이다. 전자가 사건의 변화를 중심으로 글을 이끌어간다면, 후자는 사건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기대어 글을 움직인다. 따라서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는 사건의 기승전결이나 발단과 해결이라는 극적 전개보다, 장면들이 변주되며 만들어내는 의미의 두께를 추구한다.


2. 나선형 구조와 문학 이론의 접점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가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설득력 있는 문학 이론들과도 접점을 가진다. 우선 이 구조는 미하일 바흐친이 말한 대화성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다음에 분석할(II단락) 나의 글 〈하학상달〉에서 인용한 신문 읽기, 사진, 영화, 스포츠, 종교, 문학, 자연 등의 사례는 단순한 자료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 목소리들은 하나의 결론 아래 기계적으로 정렬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유한 목소리를 지닌 채 다른 예들과 대화하듯 배치된다. 이처럼 나선형 구조의 글은 독백적 설득보다 대화적 공명을 지향한다.


또한 이 구조는 해석학적 순환과도 맞닿아 있다. 각 장면은 중심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중심 주제는 다시 앞선 장면들의 의미를 비춘다. 나의 에세이에서 처음에는 신문 편집이나 사진의 프레임처럼 보였던 문제가 글의 후반에 이르면 시선의 윤리, 존재 가치, 언어의 방식, 생명과 숨 쉼의 문제로 다시 읽히도록 배열된다. 이때 글의 반복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재해석의 운동이 된다. 나선형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아니다. 돌아온 자리에서 처음의 장면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는 일이다.


아울러 나선형 구조는 동일하거나 익숙한 사건에 다양한 관점을 투사해 보려는 지루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는 빅토르 쉬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 개념을 원용한 것이다. 나의 글 〈하학상달〉에서 신문, 야구, 숲길, 나비, 꽃 같은 일상적 사물들은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쳐지는 것들이다. 그러나 낮은 것을 통해 더 진중한 사유에 도달하려 할 때, 바로 그런 사소한 대상들이 적절한 출발점이 된다. 그것들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비출 때, 익숙한 사물은 낯선 깊이를 제공한다.


한편 신문은 단순한 정보 매체가 아니라 시선의 도덕성을 묻는 장면이 된다. 야구는 기록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가치의 문제로 바뀐다. 숲길의 작은 생명은 하학상달의 실천적 현장이 된다. 이런 점에서 내가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를 선호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사물을 새롭게 꾸미는 방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사물 안에 잠들어 있던 의미를 다시 톺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낮은 장면들이 서로 말을 걸며 하나의 중심을 향해 돌아 들어가고, 끝내 처음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게 하는 구조이다.


3. 직선형 서사와 나선형 사유의 차이

앞서 말한 대로,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는 모든 글이 반드시 하나의 사건을 따라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삶의 어떤 경험들은 애초에 하나의 사건이나 하나의 사유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다. 어떤 경험은 시간이 지나며 그 의미가 희미해져 사건 자체의 본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사건과 사실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흩어져 있다. 문제는 그 감정들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가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슬픔이라는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어느 날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슷한 장면 속에서 조금씩 다른 얼굴로 변주된다. 따라서 감정에 대한 묘사는 하나의 단어로 획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예 미미한 느낌을 반영하는 서술어의 변주로 미세한 차이를 유지한 채 표현될 수밖에 없다. 사랑, 불안, 그리움, 수치심, 계절의 감각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단 하나의 명사나 동사나 형용사로 고정되지 않는다. 의미는 나선형을 그리듯 전진과 퇴보를 반복한다.


또한, 나선형 구조는 글이 전개되다 마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듯 보이지만, 완전히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나의 주제를 반복할 때마다 다른 사례와 장면, 다른 감각과 사유를 통해 그 주제를 조금씩 확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선형 구조에서 독자는 동일한 물음 주위를 맴도는 듯하면서도, 글이 끝날 즈음에는 처음보다 더 깊은 곳에 도착해 있음을 발견한다.


가령 ‘상실’에 대해 쓴다고 해보자. 서사적 구조라면 글은 하나의 이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다. 만남이 있었고, 균열이 생겼고, 결국 헤어졌으며, 시간이 지나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실제로 이런 서술은 깔끔하다. 내용도 분명하고 독자를 설득하는 힘도 있다. 독자 역시 어수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며 감정의 변화를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상실이라는 감각은 언제나 단일한 감정 상태나 원인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전 잃어버린 사람, 떠나보낸 장소, 사라진 습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겹쳐진다. 이렇게 상실은 한 가지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부재로, 장소의 부재로, 시간의 부재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느낌으로 찾아온다. 만약 이런 주제의 에세이를 쓴다면, 글은 한 사건을 밀고 나가기보다 상실이라는 주제 주변을 여러 번 맴돌아야만 겨우 하나의 가능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결국 나선형 구조는 여러 회전 단락을 갖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나선형 구조의 첫 번째 회전에서는 어떤 사람의 부재를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회전에서는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난 일을 말할 수 있다. 세 번째 회전에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웃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세 번의 회전은 서로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무언가가 내 삶에서 빠져나간 뒤에도 나는 계속 살아간다’라는 동일 주제를 향해 천천히 이동한다. 여기서 각각의 장면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서로를 비춘다. 사람의 부재는 장소의 부재를 설명하고, 장소의 부재는 다시 자기 자신의 존재 부재를 드러낸다. 결국 이런 에세이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어떤 사유의 궤도를 따라 돌면서 점점 안쪽으로 수렴한다.


이처럼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변주의 차이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글의 밀도를 떨어뜨리고 독자를 지치게 한다. 그러나 같은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비추는 일은 글에 유의미한 협곡을 만들어낸다. 음악에서 하나의 선율이 악기를 바꾸고 속도를 바꾸고 음역을 달리하며 되돌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변주로 받아들인다. 글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고립’을 말하고 싶을 때, 그것을 여러 번 설명하는 대신 새벽의 편의점, 읽지 않은 메시지, 혼자 식어가는 국, 약속이 취소된 토요일 오후 같은 장면들을 차례로 놓을 수 있다. 그때 고립은 개념이 아니라 풍경이 되고, 독자는 설명보다 더 깊은 감각으로 그 의미에 닿게 된다.


4. 동일 주제를 변주하는 방법

나선형 구조를 사용하려면 먼저 하나의 중심 주제를 정해야 한다. ‘인생’처럼 큰 주제도 가능하고, ‘지난 화요일 오후 세 시에 생긴 일’처럼 좁은 주제도 가능하다. ‘기다림’, ‘수치심’, ‘떠남’, ‘돌봄’, ‘낡아감’, ‘믿음의 변화’처럼 여러 경험을 끌어안을 수 있으면서도 감정의 방향이 비교적 분명한 주제도 좋다. 어느 경우이든 쓰려는 주제는 글의 방향을 제시하며 여러 장면을 묶어내는 보이지 않는 실에 가깝다.


그다음에는 그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자신의 경험을 모아야 한다. 경험에는 직접 겪은 사건뿐 아니라 관찰의 결과도 포함된다. 다만 이 경험을 반드시 시간순으로 배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감정의 농도나 의미의 확장에 따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가장 사소하고 구체적인 장면에서 시작해 점점 넓은 사유로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추상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아주 작은 기억으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재로 활용되는 각각의 경험이 따로 놀지 않고 같은 중심을 향해 기울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독자가 글을 읽으며 “왜 이 이야기가 여기에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장면들은 전략적으로 배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선은 풀려버리고, 글은 단순한 일화의 나열이 된다.


끝으로 이 경험들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배열되어야 한다. 문 뒤로 열리는 풍경은 서로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글의 서술에서 보자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올 때, 앞뒤의 이야기는 같은 빛을 품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문단의 경험은 장면을 보여주고, 두 번째 문단은 그 장면과 닮은 다른 기억을 불러오며, 세 번째 문단은 두 기억 사이의 공통된 감정을 짚어줄 수 있다. 네 번째 문단에서는 다시 새로운 장면으로 이동할 여지를 열어 준다. 이때 독자는 “이야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보다 “이 주제가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가”를 따라가게 된다.


나선형 구조가 보여주는 결말의 기능도 직선적 서사 구조와는 다르다. 직선을 따르는 서사적 글의 결말은 사건이 해소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나선형 글의 결말은 사건의 해결보다 인식의 변화를 향한다. 처음의 문제가 글 안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도 된다. 상실은 여전히 남아 있고,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으며, 기다림은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글쓴이가 처음의 자리와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그 주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면, 글은 충분히 자기 목적에 도달한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선은 출발점 근처로 돌아오는 것 같아도 같은 높이에 있지 않다. 바로 그 미세한 상승이 사유의 질적 차이를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사유의 깊이를 추구하려 한다면 나선형 구조를 선택하는 것이 유익하다. 다양한 사유를 하나의 글에 담아냄으로써 삶의 여러 조각이 모두 같은 질문을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글은 충분히 하나의 몸을 얻는다. 이런 사유적 에세이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이 여러 일들이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로 남기는 일이다. 결국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는 그 질문 주위를 천천히 돌며, 흩어진 경험들이 하나의 의미로 익어가는 과정 자체를 향유하는 글의 구조다.


5. 나선형 구조에서 문단을 배열하는 세 가지 방식

나선형 구조에서 문단을 배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대상에 대한 감정의 농도에 따라 배열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관찰한 대상과 나와의 거리가 확장되는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다시 생겨난 질문이 점차 심화하는 방식에 따라 배열하는 것이다.


이 세 방식은 서로 완전히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 글쓰기에서는 서로 겹치고 섞인다. 그러나 글을 처음 설계할 때에는 세 방식 중 하나를 중심 원리로 미리 정해두는 편이 좋다. 그래야 여러 경험을 가져오더라도 문단들이 흩어지지 않고, 독자는 글이 어느 방향으로 깊어지고 있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5-1. 감정의 농도순 배열

이는 감정이 사소하거나 옅은 상태에서 짙은 장면으로 이동하거나, 반대로 가장 강한 장면에서 시작해 점점 잔잔한 장면으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수치심’에 대해 쓴다면, 처음부터 생애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사건을 꺼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소한 민망함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잘못 보낸 문자, 이름을 착각한 순간, 어색하게 빗나간 농담 같은 작은 장면에서 시작해 점차 오래 남은 부끄러움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배열하면 독자는 글쓴이의 감정에 서서히 젖어든다. 갑자기 깊은 물속으로 밀려드는 것이 아니라, 발목과 무릎과 허리를 지나 어느새 목까지 차오르는 물을 느끼게 된다. 감정의 농도순 배열에서 중요한 것은 강약의 조절이다. 모든 문단이 같은 세기로 울면 글은 오히려 둔해진다. 높은음만 계속되는 노래가 쉽게 피로해지듯, 강한 고백만 이어지는 글도 독자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그러므로 짙은 문단 앞에는 옅은 문단이 필요하고, 무거운 기억 뒤에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실을 쓴다면 장례식장의 풍경만 계속 놓는 것보다, 그 사람이 쓰던 컵을 씻지 못한 날, 연락처를 지우지 못한 밤, 계절이 바뀐 뒤에도 문득 같은 길을 돌아간 오후를 함께 배치하는 편이 좋다. 감정은 직접 외칠 때보다 주변을 맴돌 때 더 오래 남는다.


5-2. 거리의 확장순 배열

둘째는 관찰한 대상과 나와의 거리가 확장되는 순서에 따른 배열이다. 이는 눈앞에 보이는 것의 관찰로부터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가장 가까운 경험에서 시작해 점점 먼 경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거리란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관계의 거리, 시간의 거리, 슬롯적 거리까지 포함한다.


처음에는 ‘나’의 몸과 감각에서 출발할 수 있다. 다음에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 같은 가까운 관계로 확장된다. 그다음에는 세대나 슬롯, 시대의 문제로 넓어질 수 있다. 이 방식은 개인적인 에세이가 사적인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넓은 공감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 준다.


예를 들어 ‘돌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해보자. 첫 문단에서는 내가 아플 때 내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경험을 쓸 수 있다. 다음 문단에서는 늙어가는 부모를 돌보는 장면으로 옮겨갈 수 있다. 그다음에는 병원, 요양, 노동, 가족 안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희생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다. 이렇게 문단이 배열되면 글은 “나는 힘들었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개인의 피로가 가족의 구조와 슬롯의 제도,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문제와 이어진다. 나선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넓어지며, 작은 고백은 더 큰 질문의 문을 연다.


거리의 확장 순서가 반영된 배열을 사용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은 너무 빨리 큰 이야기로 건너뛰지 않는 것이다. 개인적 장면이 충분히 살아나기 전에 슬롯적 언어로 넘어가면 글은 갑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슬롯적 문제를 끝까지 자기감정 안에서만 처리하면 글은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를 천천히 이동하는 일이다.


그래서 연결 문장, 다리 문장이 필요하다. 손등에 남은 주삿바늘 자국에서 병원 복도의 형광등으로, 병원 복도에서 보호자 의자의 불편함으로, 그 의자에서 돌봄을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두는 슬롯의 구조로 조금씩 걸어가야 한다.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독자는 글쓴이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 걷게 된다. 그리고 사적인 경험이 자신의 삶과도 연결될 수 있음을 큰 간극 없이 발견하게 된다.


5-3. 질문의 심화순 배열

셋째는 질문의 심화에 따른 배열이다. 이는 문단의 말미에 놓인 질문을 다음 문단에서 조금 더 깊게 변주하며 글의 주제까지 밀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때 가능하다면 각 문단의 질문은 앞 문단을 디딤돌 삼아 더 확장된 사유를 자극해야 한다. 물론 모든 문단에 질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질문을 중심으로 글을 배열할 경우,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해 점차 그 의문 속에 숨어 있던 모순과 두려움, 자기기만과 욕망을 드러낼 수 있다. 이 방식은 사유의 밀도가 높은 에세이에 잘 어울린다.


가령 ‘여행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쓰면서 나선형 구조를 활용하려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단락은 “나는 왜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이사를 미루는 일이나 퇴사를 망설이는 일처럼 비교적 구체적인 장면을 다룰 수 있다. 다음 단락에서는 그 망설임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익숙한 불행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물을 수 있다. 그다음에는 여행이라는 직접적인 사건으로 천천히 넘어와, 여행이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아닌지 스스로 묻는 단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떠남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붙잡아주는 경험이 아니었는지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질문은 점점 깊어지고, 글쓴이는 처음보다 덜 안전한 자리로 내려간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사유의 깊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형식이다. 질문의 심화순 배열에서 결말은 완전한 해답보다 만족할 만한 인식의 변화에 이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좋은 에세이는 질문으로 질문을 남기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이를 위해 결말로 갈수록 질문의 모양을 다양하게 바꾸어, 끝내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왜 나는 떠나지 못하는가”라고 물었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나는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난 뒤의 나를 아직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물을 수 있다. 답이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질문이 정교해졌다면, 독자는 글이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내려갔음을 알아챌 수 있다.



6. 배열은 장식이 아니라 방향타다

이 세 가지 배열 방식은 단정적인 규칙이 아니다. 글 안에서 새롭게 조합될 수도 있고, 축소되거나 변형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의도적 배열이 각각 다른 리듬을 만든다는 점이다. 감정의 농도 순은 독자를 서서히 감정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거리의 확장 순은 사적인 경험을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한다. 질문의 심화순은 생각의 층위를, 계단을 오르내리듯 한 칸씩 전진시킨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핵심은 문단의 순서에 이유 있는 의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선형 구조라고 해서 마음 가는 대로 장면을 늘어놓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나선은 자유로운 곡선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중심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움직인다.


특히 퇴고할 때는 이러한 의도적 배열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글을 고칠 때 각 문단 옆에 그 문단의 역할을 적어 보면 좋다. 이 문단은 감정을 짙게 하는가. 거리를 넓히는가. 질문을 깊게 하는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문단은 아름다운 문장을 품고 있더라도 글의 구조 안에서는 떠다니는 조각이 된다. 이때는 그 단락이 앞뒤 단락과 연결되도록 다리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투박한 문단이라도 중심을 향해 정확히 기울어져 있다면,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어 살릴 수 있다.


문단 배열은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주제라는 항구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타다. 어느 문단을 앞에 놓고 어느 문단을 뒤에 놓느냐에 따라, 같은 경험도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결국 나선형 구조의 문단 배열은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넘어 “독자를 어떤 사유의 깊이로 안내할 것인가”의 문제다. 공감하는 감정, 세계와의 거리감, 사유를 심화하는 질문을 통해 독자가 조금씩 다른 자리로 옮겨가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배열이 언제나 독자를 조금씩 다른 자리에 세운다고 생각한다. 첫 문단을 읽을 때의 독자와 마지막 문단을 읽은 뒤의 독자가 같은 자리에 서 있지 않다면, 그 글의 나선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상승한 것이다.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의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흩어진 경험들을 억지로 하나의 결론 아래 묶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하나의 질문을 향해 천천히 기울도록 만드는 일. 그리하여 처음에는 따로 놓여 있던 기억과 사물과 문장들이 마침내 하나의 의미로 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며, 그것이 나선형 글쓰기의 힘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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