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론(24).「하학상달」비서사적 나선형구조(3-2)

- 다양한 경험을 아우르기 위한 동일 주제의 변주

by푸른킴


7. 나선형 구조로 글쓰기의 네 가지 단계

이제 나선형 구조를 실제 글쓰기에 적용하는 네 가지 단계를 말해 두려 한다. 그것은 바로 중심 문장, 장면, 변주, 귀환이다. 이 네 단계는 글을 쓰기 전의 설계도이면서, 글을 고칠 때 사용할 수 있는 점검표이기도 하다. 서사적 글이 “무슨 일이 먼저 일어났고, 그다음에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묻는다면, 나선형 글은 “처음의 장면은 어떤 주제를 향해 돌고 있으며, 끝내 어떤 사유에 도착하는가”를 묻는다.


7-1. 중심 문장

중심 문장은 논문의 논지와 같다. 에세이에도 논지가 필요하다. 직선형 구조의 글에서도 논지는 중요하지만, 나선형 구조에서는 그 필요가 더욱 분명해진다. 여러 장면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중심을 향해 돌기 위해서는 글 전체를 붙들어주는 문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중심 문장은 글 전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명제다. 다만 논설문처럼 딱딱한 주장일 필요는 없다. 에세이에서는 질문이나 감각에 가까운 문장이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나는 왜 떠난 뒤에야 어떤 장소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가”, “돌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면서 동시에 피로의 다른 이름이다”, “부끄러움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몸의 어느 구석에 남아 있다” 같은 문장들이 중심 문장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장은 글쓴이가 여러 경험을 고를 때 기준이 되어준다. 이 문장과 닿지 않는 경험은 아무리 흥미로워도 과감히 덜어내야 한다.


7-2. 장면의 이미지 모사

많은 글은 자신도 모르게 설명으로 기울어진다. 나의 경우도 그렇다.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다 보면, 어느새 장면을 보여주기보다 생각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흘러가곤 한다. 다른 이들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나의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곧바로 문장 위에 드러내는 것이다.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는 글이 힘을 잃는 이유는 대개 너무 빨리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다.


직선형 서사에 익숙한 우리는 “나는 외로웠다”라고 쓰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시 그 외로움을 해결 해가는 방식에 쉽게 기대게 된다. 하지만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에서는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설명하기보다 장면으로 표현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밤늦게 불 꺼진 집 앞에서 현관 비밀번호를 천천히 누르는 손, 냉장고 안에 반쯤 남은 반찬통, 아무에게도 보내지 못한 메시지의 입력창을 그림처럼 서술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기술을 에크프라시스(ekphrasis)라고 부르기도 했다. 에크프라시스는 본래 어떤 대상을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수사적 기술이다. 나선형 글쓰기에서 장면은 저 높거나 먼 곳에 머물러 있는 주제를 나의 발아래로, 내 손이 닿는 땅으로, 내 눈이 볼 수 있는 거리로 끌어당기는 장치다. 추상어를 사물과 몸짓, 날씨와 소리, 시간의 결을 통해 마치 몸에 닿는 것처럼 그려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7-3. 변주

앞서 말한 나선형 구조의 원리처럼, 하나의 장면은 같은 주제를 품은 다른 장면들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신이 수집한 관찰들을 펼쳐놓고 선별하는 일도 이 단계에서 필요하다. 만약 첫 장면에서 개인적인 기억을 서술했다면, 다음 장면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로 옮겨갈 수 있다. 그다음에는 슬롯적 풍경이나 오래된 독서 경험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장면의 크기나 배경을 바꾸되, 감정의 심지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일이다. 슬픔은 슬픔의 결 안에서 변주되어야 하고, 기쁨은 기쁨의 결 안에서 심화하거나 확장되어야 한다. 기다림에 대해 쓴다면 버스정류장의 기다림, 병원 복도의 기다림, 답장을 기다리는 휴대전화의 화면, 오래도록 바뀌지 않는 삶을 기다리는 마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면은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울리는 감정의 음색은 서로를 알아보아야 한다.


7-4. 문장 귀환(회귀)

나선형 구조는 바깥으로 흩어지는 글이 아니라 중심으로 되돌아오는 글이다. 여러 경험을 다룬 뒤에는 글의 결말에서 앞선 과정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중심 문장으로 수렴해야 한다. 다만 그 수렴의 문장은 처음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글의 끝에서 중심 문장은 처음보다 달라져야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이어도 좋고, 조금 더 추상화되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안에 글을 통과한 뒤의 인식 변화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랑은 늦게 올 때가 있다’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나는 왜 떠난 뒤에야 사랑을 알게 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여러 관찰과 변주를 거치고, 끝 단락에 이르러 “어쩌면 사랑은 머무는 동안보다 떠난 뒤에 더 또렷해지는 감각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와 같은 자기 인식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첫 단락의 문장이 일반적인 궁금증에 가까웠다면, 마지막 단락의 문장은 그것을 ‘내가 알았다’라는 구체적인 인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것이 나선형 구조에서 글이 처음으로 귀환한다는 의미다. 같은 자리로 돌아온 듯하지만, 사유의 결은 이미 달라져 있다.


7-5. 네 단계의 종합

이 네 단계를 문단 구성으로 옮기면 그 관계가 더욱 분명해진다. 첫 문단에서는 중심 문장을 암시하거나 제시한다. 둘째 문단에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장면 하나를 펼친다. 셋째 문단에서는 그 장면과 닮았지만, 다른 경험을 배치한다. 넷째 문단에서는 두 장면 사이의 공통된 정서를 짚으며 주제를 한 번 끌어올린다. 다섯째 문단에서는 더 넓은 경험이나 사유로 변주한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되, 그 질문을 조금 더 깊어진 문장으로 바꾼다. 이렇게 하면 글은 굳이 시간순이나 기계적 기승전결로 움직이지 않아도 자기 사유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결국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는 경험의 양을 과시하듯 늘여 쓰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들 사이에 숨어 있는 공명음을 경청하고, 그것을 그림을 보듯 서술해 내는, 이른바 듣는 기술이다. 수집한 여러 기억을 바카라상 위에 펼쳐놓고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억들은 왜 함께 놓여야 하는가.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 왜 같은 감정을 울리는가.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 때, 글은 일화의 묶음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가 된다.


나선형 글쓰기란 흩어진 삶의 조각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오래전부터 같은 중심을 돌고 있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글쓴이는 그 중심을 새로 만드는 사람이기보다, 이미 자신의 경험 속에서 조용히 돌고 있던 중심을 뒤늦게 알아보는 사람에 가깝다. 그러므로 나선형 구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삶이 이미 품고 있던 숨은 질서를 발견하는 일이다.


8. 나선형 비서사적 구조의 문제점

나선형 구조는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실패한다. 서사적 구조에서는 사건의 순서가 글쓴이를 어느 정도 붙들어준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고, 인물의 변화나 사건의 해결이 글의 뼈대가 되어준다. 나선형 구조에서는 그런 외부의 뼈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글을 지탱하는 것은 오직 중심 주제와 문단 사이의 공명이다. 그래서 중심이 조금만 흐려져도 글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방향을 잃는다.


따라서 이 서술 방식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분명하다. 자칫하면 글이 산문적 몽상이나 단상 모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쓸데없이 길어지는 글이 될 수도 있다. 짧고 간명한 밈 같은 글을 선호하는 시대에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유의 자극을 얻고, 하나의 사실에 대한 선입견에 갇히지 않으려면 긴 글은 결코 가볍게 무시될 수 없다. 오히려 긴 글일수록 그 안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구조적 주의가 더 절실하다.


요컨대, 나선형 구조가 실패하는 현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단상을 질서 없이 나열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주제에서 이탈하는 관찰이며, 셋째는 장면을 압도하는 과잉 해석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 중심과 장면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생겨난다.


8-1. 단상의 나열

첫 번째 실패는 단상의 나열이다. 단상 나열은 서로 다른 생각과 장면들이 한 글 안에 놓여 있지만, 그것들이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글쓴이는 각각의 문장이 마음에 들고, 각각의 기억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글을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들이 하나의 중심을 향해 돌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느 문단에서는 어린 시절을 말하다가, 다음 문단에서는 여행지의 풍경을 말하고, 다시 다음 문단에서는 최근에 읽은 바카라의 문장을 말한다. 이 경우, 각각의 장면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를 비추지 못하면 글은 나선이 아니라 흩어진 조각이 된다. 나선형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장면의 다양성이 아니라, 장면들 사이에 흐르는 공명이다.


단상 나열을 피하려면 문단마다 보이지 않는 경첩, 곧 회전축 구절(pivot phrase)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문단과 문단을 연결해주는 구절이다. 반드시 노골적인 접속사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좋은 연결은 감정의 방향, 이미지의 반복, 질문의 연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예를 들어 첫 문단에 ‘닫힌 문’이 등장했다면, 다음 문단에는 실제 문이 아니더라도 거절당한 경험, 들어가지 못한 장소, 말하지 못한 마음이 이어질 수 있다. 읽은 이는 같은 사물이 반복되어서가 아니라, 같은 감각이 변주되고 있음을 느낀다. 단상은 그 자체로는 작은 섬이다. 주제의 해류가 유연하게 그 사이를 흐르면, 그것들은 하나의 군도가 된다.


8-2. 주제 이탈

두 번째 실패는 주제 이탈이다. 나선형 구조는 중심을 향해 도는 구조이지, 아무 방향으로나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구조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장면이 뜻밖에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한 문장을 쓰다가 오래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친구를 쓰다 보니 학창 시절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어느새 글은 처음의 주제와 멀어진 곳에 서 있게 된다.


이런 이탈은 쓰는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글쓴이는 자신이 깊어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옆길로 새고 있을 수 있다. 특히 문장이 잘 풀릴 때 이 위험은 더 커진다. 문장이 매끄러울수록 글쓴이는 그 문단을 버리기 어려워지고, 그 문단이 글 전체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주제 이탈을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정리하면서 각 문단에 질문을 붙여보는 것이다. 퇴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문단은 중심 주제의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문단은 아무리 문장이 좋아도 의심해야 한다. 물론 곧바로 버릴 필요는 없다. 때로 그 문단은 다른 글의 씨앗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글 안에서의 역할이다.


나선형 구조에서 문단은 독립된 감상이 아니라 중심을 향해 기울어진 궤도여야 한다. 궤도를 벗어난 문단은 별처럼 빛날 수는 있어도, 글 전체의 중력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구조를 선택할 경우, 글쓴이는 아름다운 문장을 지키는 일보다, 그 문장이 지금 이 글의 중심을 향해 돌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주제 이탈은 특히 거대 담론이나 넓은 주제를 다룰 때 자주 발생한다. 사랑, 삶, 시간, 관계, 성장 같은 단어들은 너무 많은 경험이 들어올 여지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든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정확히 연결되지 않을 위험이 크다. 나선형 글의 중심 주제가 적당히 좁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보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자꾸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낫다. ‘시간’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뒤늦게 아름답게 느끼는 감각’이 낫다. ‘관계’보다 ‘가까워질수록 더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 낫다. 중심이 선명할수록 문단은 멀리 나아가도 길을 잃지 않는다. 나선이 멀리 돌 수 있는 것은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8-3. 과잉 해석

세 번째 실패는 과잉 해석이다. 나선형 구조는 여러 장면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야 하므로 자기 경험에 대한 해석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하나의 장면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면, 다른 장면들이 모두 그 해석 속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어떤 글은 컵 하나, 골목 하나, 비 오는 저녁 하나에 너무 큰 의미를 담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장면이 충분히 묘사되기도 전에 글쓴이가 먼저 해석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것은 결국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을 보여준다”와 같은 문장은 그럴듯해 보인다. 사실 장면이 충분히 살아 있지 않다면, 이런 문장은 사유를 깊게 하기보다 오히려 독자를 멀어지게 만든다. 해석이 너무 빨리 오면 독자는 장면 안에 머물 시간이 없다. 장면이 말하기도 전에 글쓴이가 결론을 내려버리기 때문이다.

과잉 해석을 줄이려면 관찰한 장면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장면은 그 자체로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내가 디카시를 통해 배운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글은 사진을 뒷받침하되, 사진 스스로 말하는 바를 지켜주어야 한다. 말이 이미지를 대신해서는 안 되고, 해석이 장면을 지워서도 안 된다.

오래된 신발의 닳은 뒤축, 식탁 위에 놓인 두 벌의 젓가락, 마지막으로 저장된 통화 기록, 비어 있는 병실의 의자 같은 것들은 많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 있는 감정을 불러낸다. 의미 부여와 해석의 일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글 쓰는 이의 역할은 그 감정에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그 장면을 보고 자기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감정에 머물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남겨주는 일이다.


해석은 장면 뒤에 와야 하고, 장면보다 커져서는 안 된다. 물론 해석이 아예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의 글에서는 해석이 불가피하다. 다만 그 해석은 장면에 대한 판정이나 결론적 확정이 아니라, 낮은 목소리의 독백에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란 본래 고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선형 구조에 더 어울린다. 앞의 문장이 결론을 닫는다면, 뒤의 문장은 새로운 장면을 열어준다. 좋은 해석은 독자에게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기억을 꺼낼 수 있는 여백을 준다.


8-4. 중심과 장면 사이의 균형

이처럼 단상 나열, 주제 이탈, 과잉 해석은 서로 다른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진다. 한마디로 중심과 장면 사이의 긴밀한 연결이 무너진 것이다. 단상 나열은 중심과의 연결이 약해져 장면들이 흩어지는 경우다. 주제 이탈은 장면이 중심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는 경우다. 과잉 해석은 반대로 중심이 장면을 지나치

게 눌러버리는 경우다.


내가 보기에 좋은 나선형 구조의 글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지켜내는 글이다. 장면은 충분히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중심 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 중심은 갈수록 선명해져야 하지만 장면의 생기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장면이 없으면 중심은 관념으로 굳고, 중심이 없으면 장면은 흩어진 감상으로 남는다. 좋은 나선형 글은 이 둘 사이에서 계속 움직인다.


결국 나선형 구조가 실패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글쓰기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 글의 주제와 장면을 마음껏 쓸 수 있다고 해서 어디로든 뻗어가도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다. 나선은 언제나 중심을 가진 곡선이다. 중심이 없으면 흩어지고, 중심만 있으면 굳어버린다. 나선형 구조의 글은 그 사이에서 움직일 때 제대로 기능한다. 장면을 놓아주되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고, 주제를 붙들되 장면을 짓누르지 않는다. 그 균형이 생길 때, 글은 단상의 모음도 논리의 압박도 아닌, 살아 있는 사유의 움직임이 된다.


8-5. 퇴고는 나선형 구조의 필수 조건이다

나선형 구조가 효과적인 글쓰기가 되려면 우선 각 문단의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문단은 장면을 맡고, 어떤 문단은 해석을 맡고, 어떤 문단은 전환을 맡아야 한다. 모든 문단이 비슷한 온도와 표현 방식으로 사적인 감상만 늘어놓으면 글은 역동하지 않는다. 나선형 글의 핵심은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까이 보는 문단과 멀리 보는 문단, 사물을 보여주는 문단과 의미를 짚는 문단, 짧게 멈추는 문장과 길게 이어지는 문장이 서로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원근법과 명암을 만드는 일과도 같다. 가까운 장면만 계속되면 글은 답답해지고, 먼 사유만 계속되면 글은 공중에 뜬다. 밝은 문장만 이어지면 깊이가 사라지고, 어두운 문장만 이어지면 감각이 무뎌진다. 그러므로 나선형 구조의 글은 퇴고를 통해 문단의 거리와 밝기, 속도와 밀도를 조절해야 한다.


퇴고할 때는 각 문단 앞에 짧은 역할명을 붙여볼 수 있다. ‘중심 문장 제시’, ‘첫 장면’, ‘감정의 변주’, ‘거리의 확장’, ‘질문의 심화’, ‘귀환’처럼 문단의 기능을 적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단이 지나치게 많다면 덜어내야 한다. 반대로 꼭 필요한 역할이 비어 있다면 새 문단을 보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은 감상에서 구조로, 문장의 모음에서 사유의 궤도로 옮겨간다.


결국 나선형 구조에서 퇴고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처음 쓴 글은 대개 흩어진 나선에 가깝다. 장면은 많지만, 중심이 흐리거나, 중심은 분명하지만, 장면이 빈약하거나, 해석은 넘치지만, 독자가 머물 공간이 부족할 수 있다. 퇴고는 그 흐트러지거나 느슨해진 선을 다시 중심 주위로 감아올리는 일이다. 필요 없는 장면을 덜어내고, 약한 연결을 보강하고, 너무 빠른 해석을 뒤로 물리며, 글이 자기중심을 향해 다시 돌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선형 구조의 글을 쓴다는 것은 한 번에 완성된 곡선을 그리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번의 수정과 되돌아봄 속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일이다. 처음에는 흩어져 있던 문장들이 퇴고를 거치며 서로의 빛을 비추고, 멀리 떨어져 있던 장면들이 하나의 질문을 향해 기울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글은 비로소 나선의 형태를 얻는다. 반복은 산만함이 아니라 리듬이 되고, 느림은 지연이 아니라 깊이가 된다.


9. 나선형 구조의 퇴고법-중심 확인, 장면 선별, 반복 조율

나선형 구조의 퇴고는 문장을 다듬는 일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글의 중심 문장, 곧 논지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초고를 쓸 때 글쓴이는 대개 많은 것을 데려온다. 오래된 기억, 최근의 감정, 바카라에서 읽은 문장, 길에서 본 장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까지 한꺼번에 글 안으로 밀려든다. 초고는 본래 조금 어수선하다. 문제는 그 어수선함을 문장의 아름다움으로 덮으려 할 때 생긴다. 나선형 글의 퇴고는 흩어진 것들을 더 화려하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이 정말 같은 중심을 돌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이를 위해 글을 고칠 때는 세 가지 표시를 해보면 좋다. 예를 들어, 중심과 닿는 문단에는 동그라미를 치고, 아름답지만, 역할이 모호한 문단에는 물음표를 붙이며, 해석이 장면보다 앞서 나간 문장에는 밑줄을 긋는 것이다. 동그라미가 적다면 글의 중심이 약한 것이고, 물음표가 많다면 단상 나열이나 주제 이탈이 의심된다. 밑줄이 많다면 독자가 느끼기도 전에 글쓴이가 너무 빨리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치는 일은 문장을 더 멋지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글의 중력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9-1. 중심 확인

첫 번째 단계는 중심 확인이다. 초고를 다 쓴 뒤에는 글 전체를 한 문장으로 줄여보아야 한다. 이때의 한 문장은 제목이나 소재가 아니라, 글이 끝내 도착한 인식에 가까워야 한다. 예를 들어 ‘상실’에 대해 쓴 글이라면 중심 문장은 “상실은 슬프다”가 아니라 “상실은 사라진 것을 잊는 과정이 아니라, 사라진 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다”처럼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기다림’에 대해 쓴 글이라면 “나는 오래 기다렸다”보다 “기다림은 오지 않는 것을 향한 시간이 아니라,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견디는 시간이다”가 중심 문장에 더 가깝다.


이 중심 문장을 찾는 일은 초고의 숨은 심장을 찾는 일과 같다. 처음부터 의도한 문장과 실제로 글이 향해간 문장이 다를 수도 있다. 글쓴이는 외로움에 대해 쓰려했지만, 다 쓰고 보니 글은 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있을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실제 중심은 돌봄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했다는 죄바카라감일 수 있다. 퇴고에서는 이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초고가 처음 계획과 다른 곳에 도착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발견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발견된 중심을 기준으로 글을 다시 읽는 일이다.


9-2. 장면 선별

중심이 확인되면 두 번째 단계는 장면 선별이다. 나선형 구조에서 모든 장면이 같은 무게를 가져서는 안 된다. 어떤 장면은 중심을 직접 비추고, 어떤 장면은 중심의 가장자리를 넓히며, 어떤 장면은 단지 글쓴이가 버리기 아까워 붙잡고 있는 기억일 뿐이다. 퇴고할 때는 각 장면에게 물어야 한다. “너는 이 글에서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장면은 문장이 아름다워도 덜어내야 한다. 좋은 장면이 언제나 좋은 문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장면도 잘못된 글 안에 놓이면 길을 잃는다.


장면을 선별할 때는 세 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중심 장면이다. 글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대개 글의 초반이나 후반, 혹은 전환부에 놓인다. 둘째는 변주 장면이다. 중심 장면과 다른 시간, 다른 관계,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감정을 울리는 장면이다. 나선형 구조의 깊이는 이 변주 장면에서 생긴다. 셋째는 장식 장면이다. 분위기는 좋지만, 중심을 밀어주지 못하는 장면이다. 퇴고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이 장식 장면을 알아보고 포기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아끼는 문장에 자주 속는다.


장면을 덜어낼 때는 완전히 버린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어떤 장면은 지금 글에서 빠져야 할 뿐, 다른 글에서는 중심이 될 수 있다. 퇴고는 삭제가 아니라 이주에 가깝다. 지금 이 글의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문장을 다른 노트로 옮겨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쓴이는 조금 덜 아프게 잘라낼 수 있다. 나선형 글은 많은 장면을 품을 수 있지만, 모든 장면을 품을 수는 없다. 중심을 향해 돌지 않는 장면까지 붙잡으면 글 전체의 궤도가 흐려진다.


9-3. 반복 조율

세 번째 단계는 반복 조율이다. 나선형 구조는 반복이 필요하다. 같은 이미지, 같은 질문, 같은 감정이 여러 번 돌아와야 독자는 글의 중심을 감지한다. 그러나 반복이 너무 노골적이면 글은 제자리에서 맴돈다. 반대로 반복이 너무 희미하면 글은 흩어진다. 퇴고의 핵심은 반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반복이 변주로 느껴지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같은 말을 다시 하는 문장은 줄이고, 같은 감정을 다른 장면으로 보여주는 문장은 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글 안에 “나는 그때 외로웠다”라는 문장이 여러 번 등장한다고 해보자. 초고에서는 그 문장들이 모두 필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퇴고에서는 반복되는 직접 진술을 줄이고, 외로움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서로 다르게 배치해야 한다. 첫 번째 외로움은 비어 있는 식탁으로, 두 번째 외로움은 읽지 않은 메시지로, 세 번째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말문이 닫히는 순간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면 독자는 같은 감정이 되풀이된다고 느끼기보다, 하나의 감정이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반복 조율에서 이미지의 귀환은 특히 중요하다. 나선형 글은 처음에 놓인 이미지가 후반부에 다시 나타날 때 강한 힘을 얻는다. 첫 문단에서 닫힌 창문을 보았다면, 마지막 문단에서는 그 창문이 조금 열려 있거나, 혹은 여전히 닫혀 있지만 글쓴이가 더 이상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서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 자체가 변했느냐보다, 글쓴이의 인식이 변했느냐다. 같은 컵, 같은 골목, 같은 이름, 같은 계절이 다시 등장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면 글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나선형 구조에서 전진은 사건의 변화가 아니라 시선의 변화로 이루어진다.


9-4. 문단 배열 점검

퇴고할 때는 문단의 배열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초고의 순서는 대개 기억이 떠오른 순서에 가깝다. 그러나 완성된 글의 순서는 독자가 주제를 따라 깊어지는 순서여야 한다. 어떤 장면을 앞에 놓아야 독자가 글의 정서에 들어올 수 있는지, 어떤 문단이 중간에서 방향을 바꾸어주는지, 어떤 장면이 결말 가까이 놓일 때 처음의 질문을 다시 울릴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문단을 옮기는 일은 단순한 배치 변경이 아니라 글의 호흡을 다시 짜는 일이다.


이때 유용한 방법은 문단 제목 붙이기다. 완성된 제목이 아니라 임시 표지처럼, 각 문단 옆에 한두 단어를 적어보는 것이다. “첫 외로움”, “어머니의 손”, “병원 복도”, “기다림의 피로”, “다시 창문” 같은 식이다. 이렇게 적다 보면 같은 역할을 하는 문단이 너무 많이 몰려 있는지, 중심과 무관한 문단이 끼어 있는지, 결말이 처음과 제대로 호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나선형 글은 문단 제목들만 읽어도 하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장면들이 흩어져 있어도 그 아래에 흐르는 물길이 보이는 것이다.


9-5. 해석의 위치 조정

마지막으로 해석의 자리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초고에서는 글쓴이가 자신의 경험을 너무 빨리 설명하려는 경우가 많다. 아직 독자가 장면을 충분히 보지 못했는데 의미가 먼저 도착하는 것이다. 퇴고에서는 해석을 가급적 뒤로 물려야 한다. 먼저 장면을 보여주고, 그다음에 짧게 흔들림을 적고, 마지막에 조심스럽게 의미를 얹는 편이 좋다. 해석은 독자의 손을 잡는 정도면 충분하다. 독자를 목적지까지 끌고 가서 간판을 읽어줄 필요는 없다.


9-6. 퇴고의 의의

이처럼 나선형 구조의 퇴고는 결국 세 가지 질문으로 압축된다. 이 글의 중심은 무엇인가. 이 장면은 그 중심을 어떻게 비추는가. 이 반복은 제자리걸음인가, 변주인가. 이 질문들을 통과한 문장만 남기면 글은 조금 마르고, 조금 단단해진다. 초고의 풍성함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은 중심의 빛이 더 잘 보이게 되는 것이다. 나무가 가지치기를 거쳐야 줄기의 방향을 드러내듯, 글도 덜어냄을 통해 자신의 모양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퇴고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다만 좋은 퇴고는 글을 차갑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감정이 더 풍요롭게 흐르도록 물길을 내는 일이다. 중심을 확인하고, 장면을 선별하고, 반복을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글은 처음보다 조용해질 수 있다. 그 조용함은 약해진 것이 아니라 깊어진 것이다. 나선형 글의 완성은 더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고, 같은 중심을 향해 필요한 만큼만 돌아가는 데 있다. 끝내 남은 문장들이 서로의 주위를 돌며 하나의 낮은 중력을 만들 때, 글은 비로소 흩어진 경험의 무늬를 넘어 하나의 구조가 된다.


이 퇴고를 통해 내가 얻으려는 것은 한 가지다. 글의 중심 문장이 결말에서 어떤 자리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선형 구조의 퇴고는 결말에 제대로 이르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글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장면들을 거쳤는지, 무엇을 반복했고 무엇을 덜어냈는지를 살핀 뒤에야 우리는 마지막 문장이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사유의 도착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 나선형 구조의 결말-해소가 아니라 인식의 이동

앞서 말한 대로, 나선형 구조의 결말은 사건의 해소를 목표로 두지 않는다. 서사적 글에서 결말은 대개 어떤 일에 대한 명쾌한 주장이나 대안적 실천으로 끝맺는다. 갈등이 풀리고, 인물이 선택하며, 처음에 제기된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종결된다. 읽는 이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글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답을 얻는다. 나선형 구조의 글은 사건의 결과보다 사유의 움직임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결말 역시 “무슨 일이 해결되었는가”보다 “글쓴이는 처음과 어떻게 다르게 보게 되었는가”에 가까워야 한다.

삶의 많은 경험은 깔끔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된 부끄러움은 완전히 씻기지 않으며,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은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불안도, 사랑도, 미움도, 후회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글의 마지막 문장에 도착했다고 해서 갑자기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에세이가 정직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사실을 인정할 때다. 해결되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해결된 것처럼 꾸미지 않고,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나선형 구조의 결말이다.


인식의 이동이란 거창한 깨달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방향 전환에 가깝다. 처음에는 “나는 그 사람을 잃었다”라고 느꼈지만, 글의 끝에서는 “나는 그 사람을 잃은 뒤에도 여전히 그가 남긴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나는 왜 그토록 부끄러웠는가”라고 물었지만, 끝에서는 “그 부끄러움은 내가 사랑받고 싶어 했던 자리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달라진 사유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나는 기다림에 지쳤다”라고 썼지만, 끝에서는 “기다림은 나를 멈춰 세운 시간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드러낸 시간이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사건은 그대로 있어도, 그것을 둘러싼 의미의 각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나선형 글의 결말은 문제를 닫기보다 질문을 바꾸는 방식으로 새로운 문장을 열어 줄 때 제대로 드러난다. 좋은 결말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의 질문이 너무 단순했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왜 나는 떠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은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정말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로 바뀔 수 있다. “왜 나는 외로운가”라는 질문은 “외로움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설명할 언어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로 깊어질 수 있다. 질문이 더 정확해지면, 답이 완성되지 않아도 글은 결말에 안착한다.


이제 이 결말이 처음의 장면이나 이미지로 돌아가면 더욱 단단해진다. 나선형 구조는 같은 자리로 돌아오되 같은 높이에 머물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첫 문단에서 닫힌 창문을 보았다면, 마지막 문단에서도 그 창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처음에는 그 창문이 단절과 고립의 상징이었다면, 끝에서는 바깥의 소리를 조금 늦게 들여보내는 얇은 경계로 보일 수 있다. 첫 문단에서 비어 있는 의자를 보았다면, 마지막에서는 그 의자가 더 이상 부재만을 뜻하지 않고 누군가가 머물렀던 시간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미지는 같지만,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한편, 결말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성급한 긍정이다. 많은 글이 마지막에 이르러 갑자기 밝아지려 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나는 성장했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었다” 같은 문장들은 때로 글을 쉽게 닫아버린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인식에 도착했다면 쓸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장면과 사유를 거치지 않은 긍정은 결말이 아니라 봉합에 가깝다. 상처가 아직 벌어져 있는데 그 위에 너무 깨끗한 천을 덮는 것처럼, 성급한 긍정은 독자에게 위로보다 어색함을 준다. 나선형 글의 결말은 밝아질 필요가 없다. 다만 더 정확해져야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흐릿한 결말도 유의해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로만 끝나는 글은 정직할 수는 있지만, 글의 목표를 상실했다는 고백에 머물 수 있다. 모른다는 사실도 조금 더 정밀해질 필요가 있다.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모르게 된 뒤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 모름을 이전과는 어떻게 다르게 견디게 되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에서 멈추는 대신, “다만 이제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그 기억을 내 삶의 일부로 놓아둘 수 있게 되었다”라고 쓸 때, 글은 미완의 감정을 품으면서도 하나의 결을 얻는다.

그러므로 마지막 문장을 쓸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했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문제를 처음과 다르게 보고 있는가. 이 감정은 사라졌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감정과 맺는 관계를 조금 바꾸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결말은 과장되지 않아도 충분히 깊어진다. 좋은 나선형 결말은 독자에게 박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잠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기억 하나를 다른 빛 아래 놓아보게 만든다.


결국 비서사적 나선형 구조의 결말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닮아 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해결하며 살지 않는다. 많은 것은 끝나지 않은 채 남고, 어떤 말은 끝내 듣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어떤 마음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돈다. 삶이란 그저 여정일 뿐이다. 최후의 판단은 삶의 끝에 가서야 겨우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같은 자리를 맴돈다고 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우리는 같은 기억 앞에서 덜 무너지고, 같은 질문 앞에서 조금 덜 도망가며, 같은 상처를 이전보다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글의 결말은 바로 그 변화의 순간을 붙잡는 일이다. 해소가 아니라 인식의 이동. 끝이 아니라, 조금 높아진 자리에서의 귀환이다.


이처럼 나선형 구조의 결말은 닫힌 문이 아니라 돌아본 자리다. 글쓴이는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오지만, 처음과 같은 사람은 아니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질문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눈에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 작은 변화가 결말의 핵심이다. 나선형 글에서 결말은 종점이 아니라 고도다. 얼마나 멀리 갔는가 보다, 같은 풍경을 얼마나 다른 높이에서 바라보게 되었는가가 중요하다.


요컨대 나선형 구조의 결말은 대개 세 가지 방식으로 수렴할 수 있다. 첫째, 이미지의 귀환이다. 처음의 사물, 장소, 몸짓, 날씨를 다시 불러오되,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방식이다. 둘째, 질문의 변형이다. 글의 출발점이 되었던 질문을 더 깊고 정확한 질문으로 바꾸어 끝내는 방식이다. 셋째, 자신에게 더 밀착된 문장이다. 거대한 교훈이나 선언 대신, 글쓴이가 실제로 도달한 만큼의 작은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적는 방식이다. 이 세 방식은 함께 쓰일 수도 있다. 처음의 이미지로 돌아가면서, 그 이미지 앞에서 달라진 질문을 품고, 그 질문을 낮은 문장으로 남기는 것이다.(계속)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글쓰기론(24).「하학상달」 비서사적 나선형구조(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