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문과 ‘그 사랑’에 대하여

- 월간 모빌 6월호 <요한 1서> 기도문과 ‘야훼는 사랑이다.’ 번역

by푸른킴

빛이신 하나님,

세상은 어둠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앙공동체도 어둠 없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당신을 따라가려고 애쓰는 삶이야말로

어둠에 끌려가지 않는 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어둠을 지배하는 빛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사랑은 당신이 보여주는 삶의 원리입니다.

사랑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행동 그 자체입니다.

막연한 희생감이 아니라

구체적인 희생함입니다.

눈앞의 형제자매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경험과 지식이 가로막지 못할 사랑의 상대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당신 안에 있다고 증언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미움과 부정적인 비판을 숨기고,

진리를 말한다고 하면서도

관계를 세우기보다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있는 하나님!

보혜사이신 예수가 당신을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 있게 허락하신 것을 압니다.

요한 1서의 말씀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으니

그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받아들여 살아가겠으니

보혜사로서 예수가 우리를 인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인도를 따라

우리의 앎과 믿음이 내뱉은 말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허공에 흩어지는 물방울처럼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형제를 향한 손길로 이어지게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이

공동체 안에서 바카라임 있는 사랑으로 드러나게 하겠습니다.


세상의 질서는

강한 자가 자신을 증명하고

약한 자가 밀려나는 길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공동체는 그 질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겠습니다.

공동체성을 따라 경쟁과 배제의 언어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용서와 나눔과 환대와 돌봄으로

하나님 나라가 본래 걸어가는 사랑의 길을 보이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화해의 영을 따라

교회가 세상과 단절된 섬이 되지 않겠습니다.

세상과 같아지는 무뎌진 공동체도 되지 않겠습니다.

세상 한가운데 서 있지만

세상과 다른 사랑의 질서를 살아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작은 대조슬롯가 되게 하겠습니다.

그안에 공동체가

사랑을 생각하는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사랑이 실제 관계가 일어나는 시작점이 되게 하겠습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교회가 아니라

밥상과 노동과 돌봄과 갈등 해결의 자리에서도

사랑이신 당신의 정의를 몸으로 드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겠습니다.


빛이신 하나님,

상처 입은 사람을 주변으로 밀어내지 않겠습니다.

빛을 가로막는 주체가 되지 않겠습니다.

약한 사람을 불편한 짐으로 여기지 않겠습니다.

그들을 당신의 사랑을 일깨우는 전령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약함이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

함께 짊어져야 할 진실임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을 남용하여 진실을 덮지 않게 하겠습니다.

사랑을 너무 아껴 공동체 안에 침묵을 방조하지 않겠습니다.

용서라는 말로 피해자의 고통을 지우지 않겠습니다.

권력의 어둠을 밝히는 빛,

약자의 안전을 지키는 사랑,

서로를 포용하고 환대하는 투명하고 정직한 사랑의 공동체성을

굳게 세우겠습니다.


화해의 하나님,

이 땅에 당신의 사랑이 감정에만 머물지 않게 애쓰겠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겠습니다.

다른 지체의 필요를 보는 눈을 크게 뜨겠습니다.

마음을 여는 용기,

내 것을 나누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겠습니다.

분열과 상처가 있는 곳에

다시 사랑의 길을 열어 가고,

서로를 이기려는 마음보다

함께 그리스도 안에 머물려는 마음을 새롭게 하겠습니다.


진리를 붙들되 차가워지지 않으며,

사랑을 말하되 흐려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온전한 사랑이며 빛이신 하나님,

이 교회가 당신의 사랑으로

이 세계에서 당당히 살아가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 속에 보이게 하는

관계의 연결이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를

빛으로, 사랑으로, 화해로 다시 빚어

당신을 이 세계에서 증언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당신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이 세상 속에서

작고도 깊은 하나님 나라의 표지가 되게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빛이며, 사랑이며, 화해의 영이신 당신의 사랑 덕분입니다.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자기를 비워, 한 알의 씨앗이 되어주신 사랑 때문입니다.


권능의 오른손이 아니라

낮고 감추어진 생명의 왼손을 내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끝내 우리를 당신의 ‘아이’로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마치다.


덧붙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에 대한 번역

사랑은 약한 자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시혜가 아닙니다.
사랑은 이미 가치 있는 존재가 무가치하게 취급되는 세계에 맞서,
그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공동체적 프락시스입니다.
요한 1서에서 “사랑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추상적 고백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말은 사랑이신 하나님처럼,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존재 곁에 머무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하는 신앙의 실천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일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깃들 수 있는
우상을 멀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한 1서가 경계하는 우상은 단지 외부의 형상이나 다른 신만이 아닙니다.
배제하는 교리, 희생 없는 공동체, 약자를 품지 않는 경건 역시 우상입니다.
결국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세계에서 공동체성으로 몸을 얻으신 사건에 대한 교회의 프락시스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함께 거하신 예수의 성육신적 삶을 모방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자기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설명하려는 이,
그의 말과 행동은 곧 우상이 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야훼의 말끝을 흐리고,
사랑의 힘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사랑의 언어로 약자의 고통을 지우며,
사랑의 고백으로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모든 자,
그의 삶의 방식이 곧 우상입니다.

요한 1서는 단순히 “우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훼의 방식을 비틀어 버린 너의 사랑함,
그 왜곡된 사랑이 너의 우상이라고 권면하는 듯합니다.

야훼는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 1서에서 야훼는 우리 사랑의 추상적 대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야훼는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모본입니다.

사랑이신 야훼를 따른다는 것은
모든 존재를 차별 없이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해체입니다.
자기 경계 너머의 세계로, 어둠의 계곡으로 걸어가는 순례입니다.
보이지 않는 야훼의 길을 보는 것처럼 뒤따라가는 제자의 도입니다.
그 길 위에서 사랑은 감정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성의 실현이 됩니다.
사랑은 야훼를 따라가는 인간의 미메시스입니다.

그 사랑을 따라 살아내는 일이야말로,
우상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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