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담(閑中談), 산 바카라 산바카라

by푸른킴

1.

산바카라은 목적 없이 길을 걷는 법을 배우는 일상의 교육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걷든지, 아니면 약간의 호기심으로 몇 사람이 겨우 다진 흔적이 있는 길을 조심스럽게 뒤따라 걷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무작정 걸어가 보든지. 산바카라의 참된 목적은 ‘길을 걷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산바카라에 목적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누군가, ‘그래도 목적을 딱 한 가지만 꼽아보라’ 한다면, 나는 '떨어져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함이라 말하고 싶다. 산속 오솔길을 걷는 일이라는 괜한 전제를 달아두고서라도, 나는 이 목적을 거듭 되새기고 싶다. '떨어진 것들의 관찰'. 이것이 숲 속을 산바카라하는 숨은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목적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숲길에서 만난 무수한 '떨어진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기 때문이다. 그 떨어져 누운 것들은 결코 무가치하게 스러진 존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떨어짐 자체로 새로운 자기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우연한 산바카라길에서 매번 필연적으로 목격한다.


2.

오늘의 산바카라도 그런 경험의 시간이다. 길 위에는 삶의 소멸과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먼저 대문을 나서니 어젯밤 비에 속절없이 떨어져 버린 장미꽃이 보인다. 5월의 화려한 색에 비해 보잘것없이 퇴색해 버린 6월의 ‘낙장(落薔)’이라 불리지만, 바닥을 뒹구는 잎 하나하나는 여전히 살아서 내게 말을 거는 듯하다.


조금 더 걸어 산길로 접어들면 사방에 향기가 가득하다.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겪었다는 애달픈 이야기가 향기로 변했다는 ‘찔레꽃’이 지천이다. 장미처럼 흰 꽃잎을 그대로 떨어뜨렸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뭉개뜨리지 않았다. 그 떨어짐마저도 오히려 향기롭다. 흐트러짐 없는 자태로 바닥의 풀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낙화의 은은함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5월의 아카시는 또 어떤가. 산 곳곳에 하얀 꽃송이가 가득하다. 파스텔로 그려 놓은 듯 길을 덮은 꽃과 그 사이사이를 채운 초록 잎의 화사함이 참으로 우아하다. 아카시 꽃은 어디를 가도 5월 산의 화왕(花王)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월이 오기도 전에 그들의 삶은 이내 매듭을 짓는다. 화려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바람 같은 시간의 흐름이 그들의 삶을 속절없이 잘라놓으면, 꽃과 잎은 철 이른 낙엽이 되어 떨어진다.


낙화에 무슨 향기가 남아있으랴 싶겠지만, 아카시의 여린 두 잎은 길동무처럼 서로를 보듬은 채 단명의 아픔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기후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속수무바카라이라 억울하다 변명할 법도 한데, 그들은 떨어진 그 자리에서 오히려 그림처럼 서로를 돋우며 마지막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틈타 밤꽃들이 화려하게 소생하는 중이다. 별것 아닌 듯한 길의 풍경 속에서, 낙화와 잔화 사이로 생화의 움틈이 선명하게 읽힌다.


34. 한중담, 산 바카라 산바카라.jpg

3.

길은 부름이다. 길이란 언어는 부름을 뜻한다.”

(박이문, 『길』, 미다스북스, 2003)


그렇다. 길은 길 위에서 나를 쉬지 않고 초대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부름을 신뢰하며 기꺼이 따라나서는 일이다. 그 길에 어떤 일이 있을지,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도 그저 자기를 맡긴 채 흘러가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선 ‘길의 반 토막 즈음’에서 강한 비바람에 뿌리째 뽑힌 두 그루의 나무를 만났다. 가지가 썩어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그 두 나무는 넘어지는 순간에도 서로를 지탱한 모양이었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고목(枯木)으로 썩어갈 뻔한 몸들이 오히려 운치 있는 ‘낙목(樂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나무들을 보고 있으니 내 삶의 끝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쓰러지는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 줄 다른 나무가 바로 곁에 있을 것이라는 든든한 신뢰 말이다.


그 길을 지나 조금 더 깊숙이 들어서니 숲은 초록이 한층 짙어지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향을 내뿜는다. 바위를 덮은 이끼 군락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뱀딸기 하나가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앞에 놓인 바위의 이끼와 어우러져 한 쌍의 좋은 그림을 이룬다. 서로 덩그러니 홀로 남겨질 뻔했으나, 함께 있으니 고즈넉한 초여름 풍경이 완성되었다.


숲길의 거의 끝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마른 채 버려진 나무토막 하나에 새파란 싹이 돋아나 있었다. 나무 근처로 오랜 세월 흘렀을 물줄기 덕분이었다. 잘라진 나무가 흐르는 물을 만나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제 몸속에 여전히 새 생명의 씨앗이 남아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길 끝의 작은 시냇물은 그저 무심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다. 지나간 물은 돌아오지 않고 흐르는 물은 아쉬움이 없겠지만, 자신이 지나간 자리에 새 삶이 피어나고 있다는 것쯤은 은근히 자랑해도 좋을 일이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그 위로 잘 닦인 도로가 나타났다. 숲과 도로의 경계면에 붉은 빛깔이 선명하여 가만히 몸을 숙였다. 다소 위태로워 보였지만 야무지게 살아있는 산딸기였다. 버려진 듯 척박한 환경이었으나, 흙 위로 제 몸을 바짝 붙인 채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형상이 마치 산딸기로 만든 십자가 같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홀로 버려졌다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을 산딸기라도, 함께 몸을 기대고 있으니 가벼운 산바카라자의 발길을 이토록 깊이 붙든다.


이윽고 숲길을 완전히 벗어나 거칠고 삭막한 도로에 올라섰다. 하지만 풍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낮게 내려앉은 금계국의 자태가 앙증맞았고, 내버려진 듯 뻗어 있는 호박 줄기 한가운데로 노란 부리를 치켜세운 우아한 호박꽃이 당당하게 솟아있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길이 나를 불러 그저 몸을 맡기고 걸었을 뿐인데, 상상 이상의 풍경들을 선물 받았다.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홀로 있되 함께 있고, 함께 있되 서로를 지탱해 주는, 공존의 미학을 보여주는 선물들이었다.


4.

산바카라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길 위의 모든 발견은 우연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만날 수 있었던 ‘떨어진 것들’은,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도 저마다의 새로운 세계를 성실히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길을 걷는 행위가 반복될 때, 그것이 한 사람의 습관을 넘어 ‘공적인 삶’이 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산바카라 역시 그렇게 거듭될수록,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삶의 신비를 자기 삶의 경계 너머까지 이어가게 한다. 그리하여 우연히 마주친 풍경마저 정교하게 마련된 연출처럼 느끼게 하며, 살아 있는 것들의 생동함 앞에 기꺼이 머무는 즐거움을 준다.


오늘 내가 경험한 것처럼, 떨어진 존재들이 스스로 창출해 내는 소생은 아름다운 신비라 부를 만하다. 그 신비 앞에 기꺼이 몸을 굽혀 그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하는 심미적 태도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산바카라이 내게 주는 진짜 목적일지 모른다.


절기는 어느새 망종을 지나 하지로 흘러간다. 씨앗을 뿌리고 묵묵히 기다리는 계절이다. 해와 밤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는 날부터, 땅에 떨어진 모든 씨앗은 제 몸을 썩혀가며 결실로 태어날 것이다. 날씨가 흐리든 맑든, 저 숲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살아있는 바카라(산 바카라)'이다. 스스로 죽어감으로써 오히려 꿋꿋한 생명이 이어진다는 대지의 진리를 소박하게 일러준다.


나는 오늘도 그 길이 다정하게 불러주는 초대를 받아들여 길로 나선다. 그 길의 끝에서 가벼운 생의 신비 하나를 값없이 내 삶에 새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조용히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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