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개봉한 영화 《행복의 향기》는 얼핏 보면 흔한 요리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오래 마음에 남는 까닭은, 음식이 단지 맛있는 한 끼에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요리는 고향의 냄새를 품고, 잃어버린 시간을 불러오며, 실의에 빠진 사람의 어깨를 조용히 다독입니다. 마음을 닫고 주저앉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음식의 깊은 힘입니다.
생각해 보면 음식은 언제나 그 식탁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과 오래 남습니다. 함께 앉았던 자리는 사라지고, 그날의 대화는 희미해지고, 얼굴의 표정도 조금씩 흐려지지만, 어떤 음식의 냄새와 온도는 뜻밖의 순간에 우리를 다시 그 자리로 데려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인지 확인하려면, 함께 먹은 음식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장소나 계절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그 사람을 더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영화처럼 제 삶에도 특별한 기억을 품은 음식이 있습니다. 먼저 추어탕이 그렇습니다. 한때 어르신 몇 분을 모시고 수요일마다 점심 식사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쯤 만나 가벼운 근황을 나누고, 밥때가 가까워지면 차로 20분쯤 달려 한적한 곳에 있던 추어탕집에 들르곤 했습니다. 길은 늘 비슷했고,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 집안일은 평안하신지, 요즘은 무엇을 드시는지 묻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반복되는 길과 질문 속에 이상하게도 작은 평안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말씀이 별로 없으시던 분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추어탕을 받아 들면 조금씩 말문을 여셨습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번 저으시고, 밥을 조금 말아 넣으신 뒤, 마치 오래 닫아 두었던 문을 여는 사람처럼 옛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젊은 시절의 고생, 먼저 떠난 사람들, 지나온 동네의 풍경, 자식들 이야기, 몸이 아팠던 날들, 그래도 감사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 그 이야기들은 뜨거운 국물처럼 천천히 올라왔고, 저는 그 앞에서 조용히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분들이 모두 하늘로 돌아가셨기에, 그런 수요일의 점심시간을 다시 누릴 수는 없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그 길을 달릴 수도 없고, 추어탕 한 그릇 앞에서 불쑥 쏟아지던 옛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추어탕을 앞에 두면, 그분들과 나눴던 수요일의 식탁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뚝배기에서 올라오던 김, 구수한 국물 냄새, 밥을 말던 숟가락 소리, 반찬을 조용히 밀어주시던 손, 웃음 끝에 잠시 찾아오던 침묵까지.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추어탕은 제게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음식입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쪽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얼굴들을 불러오는 음식입니다. 그 한 그릇 앞에서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라져도 함께 나눈 식탁은 아주 사라지지 않는다고. 어떤 식사는 한 시절을 데리고 와서, 조용히 우리 곁에 앉힌다고.
또 한 가지 음식을 말하자면, 돈가스입니다. 돈가스야말로 제게 단순한 외식 메뉴가 아닙니다. 하나의 시간을 잘 마무리하고 서로를 격려하던 자리마다, 앞으로의 길을 묻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의 평안을 빌던 자리마다 돈가스가 있었습니다. 그런 날의 돈가스 만찬은 자장면만큼이나 참 적절했습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든든했고, 소박하면서도 마음을 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 함께 고민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 새로운 길을 향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자리에 머물며 묵묵히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길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길을 함께 기억해 주는 식탁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수는 없지만, 그 길의 출발점이나 쉼터에 함께 앉아 밥 한 끼를 나눌 수는 있습니다. 때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됩니다.
어느 날, 그들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한 점 집어 올렸습니다. 젓가락 끝에 닿은 튀김옷은 가볍게 부서졌고, 소스는 달고 짭조름한 향으로 고기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한입 베어 물자 바삭한 소리 뒤로 따뜻한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그 사이로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려는 이유, 각자가 걸어가려는 길, 그리고 감당해야 할 삶의 자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마치 돈가스 소스처럼 대화에 풍미를 더했습니다. 달콤함만 있지도, 짭조름함만 있지도 않았습니다. 기대와 두려움, 감사와 부담이 함께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대화는 더 깊고 진했습니다. 평범한 식사는 점점 깊어졌고, 익숙한 음식은 어느새 서로를 축복하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온 이야기, 지금까지 견디어 온 시간, 학교생활의 여러 감상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과 사역에 대한 생각들이 식탁 위에 차례로 놓였습니다. 저는 잘 익은 돈가스 한 조각을 입에 넣듯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바삭한 튀김옷 사이로 고기의 온기가 전해지듯, 그들의 말속에서도 삶의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작은 돈가스 한 점에 소스를 듬뿍 묻혀 입에 넣는 즐거움은 그날의 대화와 어우러져 오래 남을 맛이 되었습니다. 톡 쏘는 단무지 하나가 입안을 환기하듯, 웃음과 농담도 우리의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점을 더 나누어 먹었고, 그만큼 기억도 조금 더 두터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돈가스라는 음식은 참 흥미로운 여정을 지나왔습니다. 서양식 요리에 일본식 모방과 창조가 더해졌고, 다시 한국의 식탁 위에서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때 레스토랑의 특별한 메뉴였던 돈가스는 이제 동네 분식집, 번화가의 경양식집, 학교 앞 작은 식당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도 ‘경희분식’이라는 동네 맛집, 《겨울 나그네》라는 번화가의 경양식집, 학교 앞 작은 ‘미리내’ 일식당 같은 이름들이 돈가스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낯선 문화가 다른 땅에 들어와 우리의 입맛과 생활에 맞게 변하고, 마침내 익숙한 기억이 된 것입니다.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한 슬롯가 무엇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바꾸며, 어떤 방식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많은 이들의 추억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돈가스처럼, 음식은 이동하고 변형되며 사람들의 일상 안에 뿌리내립니다. 사람들은 돈가스를 소비했지만, 실은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기억, 관계의 기호도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식탁에서 돈가스를 나누는 일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작은 의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돈가스의 ‘가스’가 ‘승리하다’라는 뜻의 ‘카츠(勝つ)’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시험을 앞둔 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비는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날 우리가 먹은 돈가스도 조금은 승리의 음식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우리가 바란 승리는 누군가를 이기는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낯선 하루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승리였습니다. 부르심 앞에서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붙드는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승리였습니다.
음식은 몸으로 먼저 경험됩니다. 추어탕은 냄새가 먼저 다가오고, 돈가스는 소리가 먼저 마음을 건드립니다. 따뜻한 국물의 김은 얼굴에 닿고, 바삭한 튀김옷은 귀에 남습니다. 손끝의 온기, 혀끝의 맛, 코끝의 향이 모여 한 순간을 이룹니다. 그러나 감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입의 감각은 기억을 깨우고, 기억은 마음속 깊은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몸으로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한 메를로-퐁티의 생각처럼, 우리는 음식을 눈과 코, 손끝과 혀끝으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을 온몸으로 살아냅니다. 추어탕의 구수한 국물과 돈가스의 바삭한 튀김옷은 입안에서 사라지지만, 그 감각은 마음속에 남아 하나의 살아 있는 기억이 됩니다. 앙리 베르그송이 기억을 단순한 과거의 저장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움직이는 힘으로 보았듯, 함께 먹은 음식의 기억은 지나간 일이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앞으로 걷게 합니다.
사람은 기억으로만 사는 존재는 아니지만, 기억 없이 살 수도 없습니다. 어떤 기억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두지만, 어떤 기억은 앞으로 걸어갈 힘을 줍니다. 함께 먹은 음식, 함께 나눈 대화, 함께 드린 기도는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낯선 날에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조용히 위로를 건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너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라고.
식탁은 작은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며, 공동체의 온도를 느낍니다. 추어탕을 앞에 두고 어르신들의 시간을 들었던 날도, 돈가스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길을 축복하던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었지만, 실은 서로의 시간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끼의 식사는 허기를 채우는 일을 넘어, 관계를 만들고 기억을 보존하며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상의 의례가 되었습니다.
추어탕 한 그릇과 돈가스 한 접시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음식은 한 시절을 품습니다. 어떤 식탁은 한 사람의 길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합니다. 추어탕은 하늘로 돌아가신 분들의 목소리를 불러오고, 돈가스는 지금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지나간 시간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걸어갈 길에 작은 힘을 보태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음식들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을 함께 떠올립니다. 수요일마다 추어탕을 함께 먹던 어르신들, 돈가스를 나누며 삶과 사역을 이야기하던 사람들,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보내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잠시 가만히 앉아 그들을 떠올리며 기도합니다.
“있는 그곳에서 모두 평안하기를.”
그리고 어느 날, 다시 한 식탁에 마주 앉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와는 뜨거운 추어탕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또 누군가와는 바삭한 돈가스 한 점을 나누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묻고 싶어 집니다.
오늘, 당신의 점심 메뉴는 어떻게 기억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