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N-정신의 변천 -한 사람의 기억과 흔적-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故 노무현(1946–2009)님 추모

by푸른킴

이 글은 2009, 2012, 2017, 2024, 그리고 2026년의 기록을 축적한 개인적인 추도문입니다.

개요

이 글은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장례식을 지켜본 뒤 처음 쓴 글에서 비롯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2년 5월, 나는 처음 쓴 글을 다시 꺼내 문장을 조금 다듬었다. 다시 5년이 흐른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새롭게 선출된 해에 이 글은 한 번 더 크게 수정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당시, 내 추도문의 가장 큰 변화는 2009년 당시 ‘노무현 Spirit’이라는 이름 아래 적어두었던 열 개의 항목 중 일곱 개를 지워낸 일이었다. 그것들은 적어도 그 시기 우리 정치슬롯 안에서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는 가치가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가지는 끝내 남겨 두어야만 했다.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그 후로 다시 시간은 흘렀다. 2024년에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를 다시 내려놓았다.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특정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예외적 감정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보편적 인식이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치 슬롯가 그만큼 핍진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이제 2026년 5월, 나는 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17년 전의 죽음은 지나간 사건이 되었지만, 그 죽음이 내 안에 남긴 정신은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으로 살아 있다. 이제 나는 그 두 항목 위에 하나를 더 보탠다.

하나,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자.


이 글은 그러므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그 죽음 이후 내 삶 안에서 변해온 정신의 기록이다. 애도는 지나갔으나 질문은 더 살아나기 때문이다. 기억은 흐려졌으나 삶의 변혁을 향한 나의 다짐은 아직 더 견고해져야 하고,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 2009년 5월 23일 — 그 죽음 앞에서

5월 29일, 점심을 대충 먹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장례식은 계속되고 있었다.

예식은 정해진 시간대로 흘러갈 수 없었다.

속절없이 지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장례식 현장에 가지 않았다.

조문도 애써 머뭇거렸다.

이유라면,

‘스스로 하늘로 던져버린 죽음’을 너무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또는 너무 쉽게 폄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기에 더욱 그랬다.


장례식은 느릿했고, 감상은 생각보다 무뎠다. 마음의 정과 삶에 대한 동질감은 하루아침에 생겨날 수 없다. 삶의 동선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히려 내 눈에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애꿎은 땅을 치며, 하늘을 향해 눈물을 토해내는 나와 같은 암하아레츠, 곧 땅의 사람들의 고통이 더 오롯이 들렸다. 그들 위로 펄럭이는 만장은 지난한 삶의 질곡을 짊어지고 가는 그들의 지친 어깨 같았다. 그 깃발 위에서 흘러내리는 형형색색의 천들은 그들의 흐느낌 같았다. 나는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텁텁한 조사로는 다가갈 수 없었던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장례식과 추모제에는 다시 옛 노래가 흘렀다.

‘상록수’의 운율이 계곡을 타듯 흐르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골짜기로 떨어지듯 스며들었다.

지나치기 아쉬운 ‘아침이슬’은 어둠 속 빛처럼 사람들 사이를 넘실댔고,

‘님을 위한 행진곡’ 속의 “산 자여 따르라”는 외마디는 한이 되어 군중 속으로 흘러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장례식의 노래들은 되돌아가는 역사의 서곡처럼 들렸다. 묻어두었던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기를 간절히 고대하던 노래가 흐르던 그 현장 어딘가를, 우리는 다시 찾아 어슬렁거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죽음은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아픈 기억의 출발선으로 나를 다시 데려갔다. 이유를 다시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이 스러져 간 자리, 그 딱딱하고 소름 끼치는 공포의 바위 아래 이 땅의 소중한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잠시 주춤거리며 묻혔다는 사실만이 애틋했다.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 죽은 사람은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일을 알 리 없다. 그러나 죽은 자는 남은 이들의 마음속에 한 줌 흙으로 묻힌다. 그리고 죽음은 삶의 흔적을 오롯이 끄집어낸다. 그 흔적으로 우리는 죽음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여전히 걸어가야 할 다음 길 앞에 다시 설 용기를 얻는다.

그것이 사라진 육체 뒤에 남는 ‘정신’이다.


그해, 나도 덧없어 보이는 죽음과 그 행렬을 조금 멀리서 눈짓으로 뒤따르며, 그 죽음의 끝에 새겨진 정신을 나 자신에게 새겨두었다. 다시는 역사를 퇴행시키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나, 자신이 태어난 자리를 비관하지 말라.
하나, 삶이 성장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라.
하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라고 여겨라.
하나, 확신과 소명을 간직하라.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하나,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넓이와 높이에 더 가치를 두라.
하나,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

<2009년 쓰다>


2. 2012년 5월 24일 — 흔적은 정신이 된다

2009년 5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 즈음에 나는 이 글을 썼다. 3주년이 되어 다시 꺼내 읽으며 문장을 다듬었다.


그날의 장례식은 정해진 시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속절없이 지체되고 있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시간은 영원의 일부이기에,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크게 아쉬워할 일도 아니었다.

끝내 장례식 현장에 가지 않았던 것은 예의가 없어서도,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그 죽음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반대로 너무 쉽게 폄하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기에 더욱 그랬다. 마음 한편에는 수만 근의 한이 턱 막혀 있었다.

그날 아침, 라디오를 통해 장례식 절차를 들었다. 조사 하나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슬프고 가슴 아린 순간에 듣는 슬픔의 말치고는, 그것이 풀 먹인 삼베 옷감처럼 빳빳하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마지막 길을 애절한 심정으로 훑어 건져 올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의 정과 삶의 동질감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오히려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던 사람들, 만장 아래에서 흐느끼던 땅의 사람들의 소리가 내 마음을 더 깊이 어루만졌다. 그들의 울음은 조사보다 더 진실했고, 그들의 침묵은 어떤 언어보다 더 오래 남았다.

그 시절 나는 두 개의 버거운 짐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하나는 1980년대의 역사를 훈장처럼 내세우지 못하고, 그 역사의 음지에서 고민과 한숨과 갈등과 개혁의 의지만 품은 채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하나는 교회 안에 흐르는 풍요와 빈곤, 성장과 퇴보의 두물머리에 서서, 그 어떤 열매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채 여전히 오래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최빈민층 교회 안에서 살면서도, 성경 속에 흐르는 정의의 땅을 꿈꾸며 살아온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상과 현실이 천양지차라는 말을 오래 들었고, 그 이상의 바다에서 빨리 헤어 나오라는 재촉도 받았다. 그러나 그런 바닥의 삶에서 내가 얻은 것이 하나 있었다. 슬롯적 변두리의 사람들에게도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이 드러나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비록 그것이 가능성에 불과하고 지극히 이상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자신감을 얻었다.

텔레비전으로 장례식과 추모제를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상록수’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역사를 거슬러 다시 오래된 출발선 위에 서 있는 듯했다. 그 딛고 일어섰다고 믿었던 기억의 자리로 왜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누가 우리를 다시 그 숨 막히던 자리로 데려가는가. 한 사람이 스러져 간 그 자리에서, 나는 이 땅의 자유와 해방의 역사도 함께 주춤거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은 더 많은 의미와 감추어졌던 삶의 흔적을 끄집어낸다. 이제 남은 자들은 그것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 성공과 풍요, 이익과 효율이 삶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한 사람의 죽음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이 남긴 깊은 여운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삶의 방식이 정치적으로 논쟁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미숙하거나 거칠게 보일 수 있다 해도, 그것이 한없는 생의 의미를 솟구치게 하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 인간이 지닌 흠은, 그것을 억지로 들춰내고 꼬리를 붙잡고 흔드는 손에 의해 결국 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이 자신의 흠 앞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성찰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이 악으로 후퇴하지 않게 붙드는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

마가복음 1장에는 세례요한이 등장한다. 세례요한이 잡히던 날, 헤롯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아쉬움과 절망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그 사건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세례요한은 복음 자체가 아니었고, 그의 사로잡힘 뒤에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믿으라”는 외침으로 광야에서 등장한 또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 육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은 살아 있는 듯한 정신으로 남을 수 있다. 그 정신을 토대로, 길바닥에 쓰러져 하늘을 향해 눈물을 쏟던 사람들은 이제 역사를 과거로 돌려보내지 않고 다시 이어가야 한다. 죽음에만 붙잡혀 있는 것은 온전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5월, 그날은 내게 시간을 뒤로 돌리는 아쉬움이 아니라, 진일보한 자유와 평화의 역사를 죽음이라는 토대 위에서 다시 쌓아가야 할 바카라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날 하루, 영구차의 더딘 행렬만큼이나 느린 역사의 물줄기가 잔잔하게 흐르다 ‘텅’ 하고 내 삶에 부딪혔다. 그리고 작은 여울을 만들며 강둑 저 뒤로 휘감아 돌아갔다.

<2012년 쓰다>

3. 2017년 5월 23일 — 남겨둘 것과 묻어둘 것

2012년 이후 다시 5년이 흘렀다.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읽고, 작은 흔적만 남긴 채 묻어두려 했다. 애증 속의 나의 노무현 시절도 그렇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새롭게 걸어가야 할 길이 눈앞에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날로부터 8년이 지났다. 사라진 줄 알았던 정신은 여전히 내 안에 불씨로 남아 있었다. 시대의 혼란은 그 불씨를 다시 건드렸다. 그러나 나는 이제 열 개의 N-Spirit 중 세 개만 남기려 한다.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도 위로가 필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묻어두는 일곱 개의 정신은 더 이상 꿈꾸어야만 하는 먼 가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언젠가는 충분히 성취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2017년 오늘, 나는 옛 시대로부터 나와 새 시대로 들어선다. 역사는 저무는 것 같아도, 잊지 않는다면 다시 떠오르는 기다림에 대한 축복이 된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 노선에 대한 전면적 동의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보고, 그것을 오늘의 나에게 적용해 보려는 하나의 시도다. 추모는 숭배가 아니며, 기억은 판단의 정지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은 나를 더 정직하게 심문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2017년 쓰다>

4. 2024년 5월 23일 — 남은 두 가지

오늘 봉인해 두었던 그날의 글을 다시 꺼내 읽고 덧붙인다. 2009년 이래, 시대의 물질은 발전했으나 인간의 아름다움은 퇴행하고 있는 듯하다. 법은 자의적으로 깊어지고, 인간의 자유로움은 뒤로 물러서는 듯하다. 진중한 역사의 흐름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 역사로부터 남겨진 올곧은 유산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때로는 억누르고, 때로는 뒤틀리게 하며, 심지어 자연스럽게 왜곡하며 자기 역사를 개조해 가는 모습도 보인다.


길은 있어도 가는 이가 없고, 길은 보여도 둘러가려는 선택이 많다. 막다른 골목이 나오기 전까지는 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길 아닌 것이 길처럼 보이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는 없다. 나는 여전히 정의와 공의의 실현에 미흡하고, 자연스러움을 상실할 때가 많다. 그렇다 해도 인간의 삶으로 녹여낸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 길은 끝내 나를 그 목적지에 오롯이 데려가 줄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아직 갈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애증 속에 나의 노무현 시절은 새로운 결을 맞이하고 있다. 그를 딛고 새롭게 걸어가야 할 길이 다시 눈앞에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때 나는 어떤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흐물 해지고 사라지는 중이다. 그런데도 오늘 다시 힘을 내어 이 글을 꺼내 읽는다. 두 번째 수정을 마친 뒤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흐릿한 미래가 다시 어둠으로 들어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모든 이들이 위로받아야 하는 시대에 세 개 중 하나를 더 내려놓고, 두 항목만 다시 꺼내둔다. 이 둘은 여전히 내 삶에서 미진하기 때문이다.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5. 2026년 5월 23일 —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정다운 5월’의 끝에서 여름은 소만을 지나며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이 계절은 한 사람의 부재를 지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숙성한다. 내게 5월은 여전히 그렇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오래전 불행한 사건으로 남았지만, 그날 이후 남겨진 질문은 아직 내 안에서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

시대는 늘 아이러니해서 사라진 사람이 때로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는 이들의 삶 속에서 오래도록 빛나는 일이 있다. 반대로 한때 크고 선명해 보였던 말과 태도들은 시간이 흐르며 스스로 위장의 무게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흐름마저도 단순히 정의의 승리나 불의의 패배라는 구도로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인간은 유한하다. 죽음 앞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식에서도, 지혜에서도, 시대를 읽는 분별력에서도,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힘에서도 우리는 자주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것을 나의 무관한 듯 무시하거나, 나의 주장으로만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으려는 것을 더 깊이 관찰하고, 어긋났다고 느끼는 것을 더 정직하게 되묻는 일일 것이다.


양심이라는 말도 이제는 쉽게 확신할 수 없다. 양심은 저절로 선하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시대가 분화될수록 양심도 사람마다, 사안마다 결이 달라지는 것 같다. 그것이 바르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지식과 이성적 판단,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공감의 훈련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이념이나 정치적 이익, 심지어 자기 기준에 의한 양심에 앞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그 삶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26년의 5월은 지난 어느 해보다 나를 인간 이해의 길로 조용히 채근한다. 내가 N-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번역해야 할 이유도 바로 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정치 슬롯 영역에서 N-정신은 이렇게 정리된다.


원칙과 상식 위에 서는 일.
깨어 있는 시민으로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켜내는 일.
수도권과 특권에 기울어진 나라를 다시 묻는 일.
그리고 마침내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이루어가는 일.

이런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주장은 좀 더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N-정신은 결국 인간에 대한 존중에 귀결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의 정치적 변화가 어떤 역사적 계보 위에 있는지는 내 관심의 전부가 아니었다. 다만 낮아진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어긋난 세계가 다시 공적 관심의 자리로 불려 나왔다는 점은 오래 생각해보려 했다. 만일 그런 생명 가치의 회복이 통치의 행보 속에서 조금이나마 드러났다면,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실제 삶의 구조를 바꾸는 데까지 충분히 나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물음이 남는다.


17년 전, 나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앞에서 나름대로 열 개의 정신을 축약해 적어두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중 여덟 개는 내 사유의 중심에서 물러났다. 어떤 것은 이미 슬롯 안에서 조금씩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였고, 어떤 것은 더 이상 특정한 이름 아래 붙들어 둘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두 개는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 곁에 하나를 더한다.


하나, 정의와 공의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라.

하나, 자신을 위장하지 말고 가장 자연스럽게 살라.

하나,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자.


정의와 공의

정의와 공의라는 말은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이제 이 말들을 이전처럼 쉽게 절대화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정의는 자기편의 언어로 끌려갈 위험이 있고, 공의 역시 어느 순간 편향된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다. 내가 오래 공부해 온 세계는 이 가치들의 신적 절대성을 말해왔지만, 삶의 현실 앞에서 나는 그것을 더 조심스럽게 붙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의와 공의는 내게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계속 분투해야 할 정치적·윤리적·철학적 과제다. 남을 판단하기 위한 무기이기 전에, 먼저 나를 비추는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 일

자연스럽게 산다는 말도 아직 내게는 쉬운 명제가 아니다. 나는 자연스러움을 바란다. 그러나 나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 가식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슬롯는 종종 꾸며진 모습을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SNS 안에서는 자기 위장이 하나의 생활 기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안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시대가 흘러도 이 주제는 완결될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더 고민해야 하고, 더 정직해져야 하며, 더 단순해져야 한다.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올해 새롭게 더한 이 항목은 아직 내게도 확신보다 질문에 가깝다. 생명의 의미는 갈수록 세분되고 있지만, 생명의 가치는 자주 편 가르기로 구별 지어 평가된다. 우리는 나와 너를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나와 나에게 가까운 것들의 가치를 더 앞세우기 쉽다. 평화를 말하는 목소리는 많아졌지만, 전쟁과 폭력은 여전히 예고 없이 삶을 덮친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아름다운 문장이기 전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의 과제다. 그 말을 진심으로 말하려면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 곁의 생명들까지, 중심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새롭게 주목한 N-정신이라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아득하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오늘 나는 이 세 번째 정신의 핵심을 다시 다섯 가지로 번역하여 정리한다.


첫째, 원칙과 상식의 우선이다.
둘째,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다.
셋째,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의 가치다.
넷째,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실효성이다.
다섯째, 권력주의와 결별하고 특권을 해체하는 보편성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N-정신은 시민, 공정, 원칙, 참여를 향한 통치 이념이자 삶의 윤리로 다시 읽힐 수 있다. 그것이 특정한 이름의 찬양으로만 머문다면, 이 정신은 쉽게 낡아버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 정신이 우리 삶의 습관과 제도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변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가이다.

나는 여전히 정치적 행동에 직접 참여하는 일에는 신중한 편이다. 그래서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공을 특정 세대나 집단의 전유물처럼 말하는 일에는 조심스럽다. 어떤 역사도 한 집단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어떤 정신도 특정한 이름 아래 완전히 봉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교체가 곧 공의의 완성을 뜻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힘을 스스로 내려놓는 일 앞에서 주저한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의 주인이 바뀌는 일만이 아니라, 권력의 습성 자체가 바뀌는 일이다. 낮아지는 권력, 깨어있는 시민, 살아나는 지역, 습관화된 상식의 민주주의 등이다. 그런 것들이 삶의 자리에서 자라날 때 비로소 정신은 펄럭이는 깃발을 땅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다.

지역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이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오래된 슬로건이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아직 충분히 체감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 밖의 삶은 여전히 자주 주변부로 밀려나고, 자치는 때때로 이념과 이해관계의 언어 안에 갇힌다. 그러므로 삶의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마을로 확장하자는 올해의 주제는 고무적이지만, 그것이 오래된 구호의 반복에 머물러있다는 인상은 넘어서야 할 과제다.

나는 N-정신이 거창한 중앙의 힘에서만 결실을 맺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아지는 권력, 살아나는 지역, 깨어 있는 시민, 그리고 일상 속에서 습관이 되는 상식에 이를 때 비로소 그 열매를 맺는다고 믿으려 한다.

어려운 것은 언제나 이 정신을 보편적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정신은 높지만,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시대는 자본의 경계선이 더 높고 견고해지는 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가진 사람은 더 쉽게 더 가질 수 있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잃을 위험 앞에 선다. 가지려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유혹을 받는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1세기 예수가 말한 달란트 비유를 다시 생각한다. 비유의 본래 맥락을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보면, 하나를 받은 사람이 하나를 지키는 일조차 버거울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적게 가진 사람의 두려움과 침묵을 너무 쉽게 게으름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어떤 삶은 열매 맺기 전에 이미 버티는 일만으로도 많은 힘을 소진하기 때문이다. 결국 N-정신이 제대로 계승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정신의 무조건적 찬양이 아니라, 그 정신을 말하는 이들의 삶의 변혁이어야 한다.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낙관할 수 없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 올렸던 깃발은 여전히 논밭 아래 어디쯤에서 펄럭이는 듯하지만, 그 정신의 진정한 계승은 아직도 우리 모두의 삶 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온 5월, 나는 N-정신을 되새기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그 정신이 완전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아직도 내 삶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정신이 변혁적 행동보다 언제나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르는 자들의 자기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정신도 쉽게 무력해질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예수를 따른다고 말하는 나 자신에게서 자주 경험했다. 앞으로도 경험할 것이다. 그러니 N-정신 앞에서도 나는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각설하고, 다시 돌아온 5월에 나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한 번 더 되새긴다. 그것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삶의 부족함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 정신을 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정신 앞에서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함을 그 죽음을 상기하며 조용히 다짐한다.


정의와 공의를 향해.
위장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향해.
살아있는 것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다시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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