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놀애
지금, 창밖 숲, 나무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마다 촘촘히 박힌 나무들은 한 방향으로 일제히 누웠다가, 이내 다시 일어난다. 시인 故 김수영이 내 옆에서 이 나무들을 보았다면, 아마도 그의 역작인 시 「풀」의 제목을 ‘나무’라고 바꾸고, 첫 줄의 “풀은 눕는다”를 “나무는 눕는다”로 단번에 고쳐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낮 햇빛 아래, 바람이 줄지어 밀려가듯 숲을 휘감아 지나가는 사이사이, 풀 같은 저 나무들은 운치 넘치는 소리로 노래한다.
여기, 창밖 나무바다는 다시 소리 없이 고요하다. 조금 전 요란하던 소리는 바람에 쓸려 사라졌다. 바람이 멎고, 무엇 하나 지나가는 일이 없으면, 나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음처럼 꼿꼿이 서 있다. 나무는 자기 몸을 멈춰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그 적막한 틈으로 햇살이 노래하듯 빛을 쏟아낸다.
‘놀애’에 담긴 나의 삶
다시 바람이 불면 새로운 노래가 흐른다. 이 노래들은 지나간 시간을 농축해 놓은 듯하다. 생각보다 운율은 단조롭지만, 그 무게는 묵직하다. 노래는 글과 곡조로 만들어진다. 바람이 불 듯 시대의 이야기가 열매처럼 달린 가사를 징검다리 삼아, 마음속 어디선가 흘러나온 곡조가 그 가사를 스치고 지나갈 때 비로소 노래가 된다. 그 노래와 사람이 다시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노래’의 근원인 ‘놀애’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여기 나의 창밖에는 옛 놀애가 되살아나 나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이어가며 잔잔히 흐르고 있다. 어제 읽은 바카라, 오늘 쓴 글이 어우러져 바람을 따라 내일 이맘때쯤에는 나의 시로 되돌아올 것이다.
바카라의 숲에서 만난 어느 시인의 별빛
노래가 흐르는 동안 서재에 늘어선 바카라들을 한 번씩 바라본다. 마치 바카라개울 옆으로 한 움큼의 바카라들이 한적하게 나무처럼 서 있는 듯하다. 저 숲처럼 빽빽하게, 빈틈 하나 없이 서 있는 그 바카라들은 하루 종일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 줄 기억의 방문을 기다린다. 손길 한 번 닿지 않아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내일도 다시 기다린다.
가만히 서 있으니 노래 하나가 바카라들 사이를 휘돌아 지나간다. 바카라들은 창밖의 나무들처럼 함께 눕거나 일어서지 않았다. 다만 자기 삶을 어루만지는 자유로운 바람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 것을 가볍게 느낄 뿐이다. 그렇게 바람이 지나간 바카라 틈에서 은은한 빛이 흐른다. 그 바카라빛 가운데 하나가 내 눈에 들어오면, 나는 그 바카라에 악수하고 서재에서 꺼낸다.
오늘 그 바카라은 시인 故 천상병 님의 유고 에세이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서울: 영언문화사, 1994)이다. 오래된 바카라이라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선명하게 눈에 띈 것이 새롭다. 아무 곳이나 훌쩍 펼쳐 본다.
한낮의 별빛을 찾아다닌 소풍 같은 삶
시인이 아내 목순옥 님과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장면(57쪽) 곁으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앞뒤 문맥과 상관없어도 좋은 구절이다. 옮겨 보자면,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걸 알아주시오.”라는 글귀가 오롯하다. 이 구절을 눈에 담은 뒤 가만히 눈감아 보니, 그의 시 「귀천」 마지막 단락의 저 유명한 구절이 겹쳐진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두 바카라을 나란히 두고 보니, 이 구절이 단지 시적 미사여구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진정 행복한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 시에 머물러 있는 사이 창밖 숲에 다시 바람이 불다 잠들고, 노래도 흐르다 멈췄다. 시간은 공간을 맴돌아 느릿하게 소용돌이치다 사라진다. 나른한 오후가 가볍게 지나간다. 나의 소풍도 끝나간다.
나의 한낮의 별빛
소풍을 즐기는 사이, 그 틈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람처럼 스며든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흔적들이다. 순조로운 이는 거의 없다. 갈등과 경쟁, 휴식과 일이 무한 반복되는 치열한 삶의 틈에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안식시킬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의 안식을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나의 바카라임이기도 하다. 사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이 한적한 숲 아래로 빠져나와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하여 그들을 생각하면 문득 어떤 채무처럼 이런 물음을 떠올린다.
‘혹시 나도 한낮의 별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한낮에 부는 바람도 보고 있고, 쏟아지는 햇빛도 보고 있으며, 가지런한 소리와 도톰한 글도 보았는데, 정작 그 ‘별빛’을 찾았는지 궁금해진다. 별빛이라면 밤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내심 시인처럼 한낮에 쏟아지는 별빛이라면 꼭 찾아보고 싶어진다. 기다리면 될까. 얼마나 기다리면 다시 바람이 불고, 소리가 들리고, 글이 노래가 되어 흐를까.
질문은 굳은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서재 밖으로 나가본다. 서재 바로 앞 정원에 오월의 장미 한 송이가 오롯이 피어 있다. 별빛 같다. 나는 만났다. 마침내 알았다. 노래한다.
“너야말로 한낮의 붉은 별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