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억의 바카라장, 아카시아 꽃잎 앞에서
나를 나되게 한 나의 부모와 선생님(학생들), 000, 그리고 모든 분들에게
2026년 5월 15일 맑은 아침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 계신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신실하신 나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좋은 날, 삶의 기억을 꺼내 새로운 마음을 글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2024년 5월 15일
제가 사는 집 앞에 오르기 좋은 동산이 있습니다. 노래 한 곡이 끝날 정도의 길을 걸으면, 낮고 홀쭉한 그 동산으로 오를 수 있는 나무 계단이 나옵니다. 겨울에는 거의 스산한 길이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진달래와 산수유가 흐드러집니다. 그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숲은 분홍, 노랑, 하얀 꽃으로 난만해집니다.
오늘처럼 5월 중순이 되면 이 길과 숲에는 아카시아꽃과 찔레꽃만 살아남아,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어느새 하얀 산이 되어 버립니다. 땅과 하늘로 향기를 뿜어내는 그 달콤한 내음은 5월이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꽃 사이를 벌과 나비가 분주하게 드나듭니다. 꽃잎과 꽃잎 사이를 이어주는 이 작은 전령들이 아니라면 세상 누구도 꽃의 향기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무한한 바지런함으로 유한한 인생에게는 생존의 양식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미미한 힘들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입니다.
사실 요즘은 이 길을 자주 걷지 않습니다. 이유라면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이라 해야겠습니다. 그 멀어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아름답고 좁은 숲 속 오솔길을 틈나는 대로 걸었습니다. 나만의 봄의 제전을 즐긴 셈입니다. 그 봄의 향기를 만끽하는 일은 어느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여려지고 삶의 시간이 촉박해지면서 그 걷기의 간극은 길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지척에 둔 이 달콤한 길을 나의 두 발로 오르내리기보다 먼발치에서 지난 추억으로만 더듬는 일에 만족하며 지냈습니다. 멀어짐은 언제나 무심하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길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기억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마도 삶에 시나브로 노을이 물들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다행히 올해 들어 몸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걷는 속도도 예전처럼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래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작은 고향을 찾듯 이 길에 들어서 봅니다. 오랜 무관심 탓에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데, 길은 변함없이 아카시아의 짙은 향과 찔레꽃의 은은한 향기로 이 무례한 나그네를 반겨 줍니다.
2016년 5월 15일
햇살이 화사하고 바람이 은은한 어느 해 5월의 한 아침, 모처럼 이 외딴 길을 다시 천천히 올랐습니다. 짧은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오솔길 중간쯤에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 든 아카시아 나무 하나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평소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 데다 워낙 큰 나무라, 누구도 쉽게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나무가 쓰러진 채 있어도 걷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이 길의 운치도 더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산바카라길에서는 밤새 떨어진 아카시아 꽃잎들이 그 쓰러진 고목과 산바카라길 주위를 눈처럼 덮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꽃잎들은 쓰러진 나무로부터 한 걸음쯤 떨어진 곳에 건장하게 서 있는, 탄탄하고 높이 솟은 젊은 아카시아 나무가 떨어뜨려 준 것이었습니다. 고목 위에 얹힌 낙화 때문에 나무도 그 길도 오히려 따뜻하고 보드랍게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다가가 휴대폰의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웬걸, 꽃잎 두 개가 바투 다가서 있었습니다. 마치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손을 잡고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기 전에, 꽃잎들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 사진을 다시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떨어진 두 잎 속에서 무슨 이유인지 여러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어찌 보니 우선 어디에선가 5월의 바람에 실려 와 나에게 내밀어 주는 부모의 손 같았습니다. 상상 속에서나마 그 손을 잡았습니다. 잊혀 사라져 버린 기억이 따스함으로 살갑게 살아납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 내 손 안으로 스며들던 그 느낌과도 닮았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내 곁을 스쳐 간 속 깊은 나의 선생님들이 투박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주는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그 꽃잎들 뒤로, 나야말로 부모와 여러 선생님들이 내밀어 준 그 따스하고 정감 어린 손에 이끌려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이 다시 생생해집니다. 그들의 힘은 더는 내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오히려 더 생생한 기억 속에서 빛나는 것 같습니다. 내 삶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들의 가치가 더욱 도드라지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 만났던 나의 학생들 역시 부모와 선생 못지않습니다. 그 존재는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무력無力인 듯하면서도 더없이 강한 강력剛力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날, 부모와 선생이라는 두 엄숙한 존재들과 함께 걸어온 길은, 그것이 어떤 길이었든 달콤하고 보드라웠으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갈등과 거친 기억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부족한 나를 이끌어 준 그들의 수고가 어찌 더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언젠가 나의 삶이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돌아볼 날이 온다면, 이 존재들과 나눈 숱한 기억과 추억은 갈등과 균열보다 감미로운 사랑과 배려와 헌신 쪽으로 삶의 추가 더 기울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해 보니, 고대 히브리인들은 ‘부모’를 하나의 이름으로만 묶어 부르기보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독립된 존재로 나누어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선생’을 단지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누군가를 배움의 자리로 이끄는 사람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어머니에게서 오는 삶의 향기와 아버지에게서 불어오는 삶의 내음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찍부터 알아차렸던 것일까요.
다시 숲길 위의 두 꽃잎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조금 더 단단한 손 같고, 다른 하나는 조금 더 부드러운 손 같습니다. 둘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해 기울어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붙들어 준 두 손이, 그 작은 흰 꽃잎의 모습으로 잠시 길 위에 내려앉은 것만 같았습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그린 「탕자의 귀환」 속 아버지의 두 손도 그러합니다. 한 손은 엄숙하고, 다른 한 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하지 않습니까. 집을 떠나 떠돌던 자식이 돌아왔을 때, 그 다른 두 손이 함께 그를 품어 주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엄숙함만으로도, 부드러움만으로도 사람은 온전히 자라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나를 돌아보면, 부모와 선생 역시 그런 두 손을 함께 지닌 존재들이었습니다. 때로는 붙들어 주고, 때로는 놓아주며, 때로는 앞에서 이끌고, 때로는 뒤에서 말없이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 손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숲길을 여기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길 위에도 언제나 누군가의 손이 먼저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손의 온기를 더듬으며 한 걸음씩 건너왔습니다.
그런 조화의 결과, 모부와 모부 같은 선생, 그리고 때로는 선생 같은 학생들은 자식과 제자를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이끄는 조용한 안내자들인지 모릅니다. 모부의 위대함이 지극히 평범한 날들의 반복 속에 있듯, 선생의 가치 또한 단순히 가르치는 능력보다 누군가를 배우게 하고, 스스로 걸어가도록 깨우는 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선생은 평범한 사물 앞에서도 속 깊은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밤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선생이 될 수 있듯, 길가의 꽃잎 하나, 쓰러진 고목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아카시아 향기 앞에서도 삶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나를 둘러선 세계 모든 것의 대명사입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 또 다른 한 사람과 세계, 한 기억과 또 다른 기억을 이어 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그는 단순히 ‘가르치는 자’라기보다, 빛을 조금 먼저 들고 길 위에 서 있는 동지이며, 어둑한 저녁길에 켜진 작은 초롱불과 같습니다.
오늘의 나는 이 부드럽고도 엄숙한 손들이 함께 빚어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손들은 아직도 내 안에서, 오래전 숲길 위에 내려앉았던 두 꽃잎처럼 희고 조용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15일
다시 이미 써 둔 이 글을 꺼내 읽고 다듬는 중에, 서재 창밖으로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살랑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 초부터 피어나 15일 즈음이면 꽃은 자연스럽게 절정을 이룹니다.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또 조바심 내지 않아도 한결같이 적절한 절기에 펼쳐지는 이 개화는 계절의 지표이자, 내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지처럼 느껴집니다.
어느새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선생 같은 나의 학생들도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습니다. 올해 내 삶의 자리도 조금 더 뒤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남은 기억마저 움푹 파여 떨어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투리 기억이 살아 있기만 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억은 온전할 것입니다. 어떤 기억이라도 파편만으로 그 기억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경험해 왔습니다. 부디 내 기억이 가물거리는 날이 오더라도, 나를 이 거친 세계에서 오늘까지 이끌어 준 그들의 환대와 따스한 손길이 조각처럼만 남아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 기억은 사라진 기억마저도 완전히 잊을 수 없게 해 줄 것이니 말입니다. 피에르 신부가 회고한 글처럼 “사랑은 결코 늙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10년 전, 아카시아 꽃잎 두 개가 조금 떨어져 나란히 있던 사진을 오늘 다시 보고 있습니다. 그날 숲에서 불던 바람이 내 몸에 다시 불고, 향기는 여전히, 아니 더욱 달콤하게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그 꽃잎 사이로 난 작은 길 위에 화사한 봄빛이 빛살처럼 뿌려졌던 풍광도 떠오릅니다. 상상 속에서 그 사이를 걷는 내 몸이 다시 가벼워집니다. 지천명을 훨씬 지나 이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이즈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입니다. 오래된 사진 옆에 며칠 전 찍어둔 토끼풀꽃 사진이 기웃거립니다.
나를 자극해 배움에 들어서게 하고, 나에게 투박함과 따뜻함,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일깨워 준 나의 모부와 선생님들, 잠깐 만났던 학생들, 평생을 함께한 교회 식구들, 가족들, 영원의 삶을 함께하는 친구들 덕분에 여기까지 다시 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닙니다. 내 곁에서 나를 이끌어 준 모든 이들이 오늘 나의 스승이며, 어머니와 아버지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나무와 숲과 산바카라길, 새들의 울음, 한적한 저녁노을, 한 잔의 커피, 뽑힌 채 표지로만 만나는 여러 바카라들까지도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로부터 삶의 오감을 향유하며, 굴곡을 겁내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을 몸에 익혀 왔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희생과 사랑과 자극의 전령들일 것입니다.
벌써 하늘로 돌아가신 모부들, 선생님들은 멀리 흩어져 계시는 선생님들, 히브리어 공부를 함께 했던 분들, 영원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식구들과 나의 가족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세계 곳곳에 머물며 나를 향한 환대와 인내로, 또한 사랑의 보호자와 자극자로 살아 주는 나의 도반들이 곁에 있음을 실감합니다. 비가 거칠게 내리던 그날에도, 오늘 맑은 햇살이 땅에 쏟아지는 이날에도 한결같은 그 사랑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마땅히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십시오.
2016년 쓰고, 2024년, 2026년 덧붙여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