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담(閑中談),
다시 월서각(越書閣), 숲 바카라을 읽다

by푸른킴


“대부분의 길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아요. 당신을 찾기 위해서라면 어느 길이라도 가겠다는 뜻이죠.”— 윌리엄 폴 영, 《오두막》 중


예측 불허의 날씨에 몸을 맡기다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맑고 환했다. 모처럼 혼자 차를 운전하는 날이다. 봄의 끝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늦은 오후에도 꼬리를 물고 있다. 어제 느닷없이 동네 골목길을 등산하듯 걸어야 해서 오늘은 집에서 잠시 여유를 부려볼 생각이었다. 그사이 하늘에서는 햇살이 쏟아지더니, 이내 꽃샘 같은 바람이 뒤따른다. 봄이 저물고 있다는 신호일까. 아침에 내린 늦봄비 덕에 공기는 한결 시원하다. 지난겨울 가지치기로 말끔해졌던 가로수들에는 초록 잎 사이사이, 눈이라도 내린 듯 희끗한 꽃들이 무성하다. 예측 불허의 날씨라 해도, 이 봄에는 내 몸에 와닿는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이 봄을 대하는 인간다운 태도가 아닐까.


날씨에 어울리는 노래를 꺼내다

이른 저녁으로 토마토와 토스트 두 조각과 루이보스차를 곁들였다. 참외 두 조각과 쿠키 두 개를 미리 챙겨둔 뒤, 오래전 김민기가 부른 노래 〈그사이〉를 다시 듣는다. 그사이에 빨래를 돌리고, 프로야구 중계를 본다. 문득 빨래를 널다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본다. 비는 모두 말랐고, 이팝나무 가로수는 하얀 꽃송이를 온 길 위에 흩뿌린다. 마치 가늘던 빗줄기가 다시 거세지다가, 순식간에 눈으로 뒤바뀐 풍경 같다. 이런 날씨에는 그의 목소리가 적격이다. 익숙한 가사와 곡조임에도 그가 부르면 매번 진중하다. 비장함도, 슬픔도, 관조하는 음색도 가득 들어차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저 노래가 생각날 때가 있다.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노래 가사 중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라는 말이 늘 낯설다. 비굴한 자조가 아닌데도 무슨 이유인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된다. 누구든 자신의 노래를 스스로 지어 불러 시대의 한 획을 지은 이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당당한 결핍이 옹골차게 들어있다. 문득 그 가난의 깊이가 궁금해진다.


어쨌든 이런 노래는 어디에서 어디로 흘러가든 뭇인간의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화석처럼 굳은 옛 노래라 해도, 들을 때마다 나의 여렸던 최초의 감성이 나이 든 후에도 여전히 발화한다는 것이 좋다. 가볍게 지나가도 될 만한 노래 앞에서, 나를 붙드는 낯선 감성이 오늘따라 더 새롭다. 알 수 없는 날씨, 계절의 흔들림에 스며든 그 여유에 나는 다시 나의 늙어가는 몸을 맡긴다.


바카라 너머로 사람의 샬롬을 조용히 탄원하다

차를 서너 번 번갈아 우려내고, 바카라상 위에 흩어진 바카라 중 아무거나 다시 집어 들었다. 이야기 틈새에 저자들이 신앙고백처럼 박아 둔 문장들을 하나씩 꺼내 내 안에서 추스른다. 내가 보기에 이 문장들은 모두 자기 주제를 향해 놓인 단단한 징검다리들이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그 바카라의 본질에 조금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바카라 끝을 향할 무렵, 여전히 맑고 화사한 날씨가 마음을 풀어준다. 어떤 날은 한낮인데도 사방이 어둑해지고, 산그림자가 검게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렇게 흔들리는 날씨에는 마음마저 분주해져 바카라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날씨 하나가 삶을 뒤흔드는 일이 한두 번인가.


창밖으로는 이제 저녁노을 햇살이 떨어진다. 어느 산골 밭에 갓 돋아난 감자 싹을 떠올리고 어느 봄날 아침 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산자고 꽃의 안부를 지금 와서야 다시 묻는다. 오늘 병상의 부모와 내일 일터로 나갈 이들, 치유와 회복을 구하며 조심스럽게 자기 삶을 매만지는 이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 철거에 직면한 땅의 사람들, 무모한 전쟁에 내몰려 하루하루 생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의 일상의 평화를 소망한다. 인간의 예측이 닿지 않는 곳. 예측조차 불가능한 그곳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안전한 경계가 든든히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저 간절한 마음을 하늘에 맡기며 나의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지식은 몸을 지나 실천의 숲에 이른다

이 혼란의 시대에, 나는 바카라과 글을 통해 몸을 일깨운다. 지식은 성찰에 머물지 않고, 몸을 움직여 현실에 내려앉을 때 비로소 살아난다. 내 삶을 살아나게 하는 작은 토대가 된다. 그러니 서재에 머무는 시간은 세계의 숲을 두 발로 걷는 시간과 닮아 있다. 바카라이 살아 숨 쉰다면, 그것은 필시 숲의 형상일 것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비가 내린 뒤 다음날 숲은 언제나 온갖 향기로 울창했다.
아침의 숲은 바람과 새의 소리로 가득 찼다.
바람의 결에 따라 소리를 바꾸는 나뭇잎들의 종알거림은
그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싱그럽다.


숲에는 어느 때인가 몰아닥친 거센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여태 그 자리에 누워있다. 살아있는 나무 곁에 머물러 있는 죽은 나무들은 햇살 가득한 날에도 끝내 몸을 펴지 못한다. 뿌리가 뽑히거나 가지가 꺾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종말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고사목 위로 버섯이 돋고, 풍광의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이 솟아날 것이다. 늙은 전나무 아래 한 뼘 거리에서 자라나는 어린 나무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비바람 속에서도 새순은 돋고, 꽃은 지고 피기를 멈추지 않는다. 약수터의 물줄기는 어제와 다른 음률로 흐르고, 바위 밑 물길은 살아 있는 소리로 쉼 없이 웅얼거리리라.


정상에서 하향선의 시작을 마주하다

숲의 초대와 안내를 따라 근처 산에 오르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 다행히 길 걷기를 마치고 되돌아온 뒤에도 몸은 가뿐하다. 고목 위에 누워 녹두빛으로 춤추는 여린 잎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것들을 잊어버린 뒤 떠오르는 이 기억은 그 자체로 선물 같다. 그 잎을 따라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어느 산이든 정상 표지석이 있다. 그곳은 당신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음을 일러주는 정직한 안내자다. 그때 모든 이들은 올라왔던 그 길을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는 누구나 내려갈 시간을 결정해야 한다. 정상은 곧 하향선의 시작인 셈이다.

오르던 길을 돌아 내려가는 길에 만세동방 약수터가 있다. 자주 들르는 곳이다. 산의 심장에서 솟구쳤을 물길은 아쉽게도 어느 날부터 말라 있다. 어느 시대에는 한 나그네가 이 물 앞에 앉아 마른 입술을 적셨을 것이다. 그리고 산 아래 풍경을 조용히 감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마름과 고요함만 가득하다.


길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하늘은 더욱 명징하다. 숲을 지우려는 불확정성의 난무 속에서도 숲은 여전히 ‘숲답게’ 존재한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은 땅바닥에 겨우 뿌리내린 관목들과 함께 시나브로 진초록 여름 안으로 흘러간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느릿하게 다시 어느 봄날 같은 숲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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