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30. <빈 기억> 해설]
망각의 역설

by푸른킴


디카시 30. 빈 기억.jpg


초록 의자

물방울


사이


떨 어

지

는


1. 배경

늦봄에 내리는 비에는 이름이 많다. 모종비는 모를 낼 무렵에 때맞춰 내리는 비를 말하고, 일비는 모내기 즈음 바쁜 손길 위로 내리는 비를 일컫는다. 이 이름들에는 비가 그치면 어느 사이 계절이 훌쩍 여름으로 건너가 사라질 것만 같은 아쉬움이 묻어난다.


어느 해, 경기도 이천의 한적한 농로 옆에 서재를 들인 적이 있다. 아침저녁으로 논둑길을 따라 산바카라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날은 모내기가 한창이던 때였고, 이른 아침부터 가는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비 내리는 길을 한참 걷다 보니 마음이 상큼해졌다.


돌아오는 길, 서재 근처 오래된 시골집 앞에 철제로 만든 초록색 긴 의자가 하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침에 내린 빗물방울이 등받이 사이사이에 초롱초롱 매달려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물방울이 모두 떨어지기 전, 사진 한 장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저장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날 아침 산바카라길에서 만난 초록 물방울 의자가, 오늘 아침 다시 선명하게 떠올라 내 삶을 가볍게 찌른다.


2. 사진 — 표면 위에 맺힌 시간의 물방울

나는 물방울을 최대한 클로즈업했다. 온전한 동그라미, 찰랑이는 듯한 반원,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린 타원, 이미 떨어져 흔적만 남긴 물방울이 의자 등받이 사이사이에 걸려 있다. 의자 뒤의 풍경은 어슴푸레 흐려지고, 시선은 오롯이 초록 의자와 물방울에 머문다.


사진 속 등받이는 가는 철제 막대기가 초록색 수평선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그 수평 구조물 사이에 물방울은 잠시 매달려 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수평으로 붙잡는 힘과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것 같다. 중력과 표면장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불안정한 찰나가 초록색 사이를 채우고 있다.


물방울은 멈춰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뭔가 간당간당하다. 이미 떨어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고, 물방울이 맺히고, 끝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진다. 떨어진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서로 다른 모양의 물방울들은 그 시간차를 보여줄 뿐 같은 운명으로 흘러간다. 어느 물방울도 영원하지 않다. 다만 자기 차례를 기다리듯, 그 자리에 잠시 머물 뿐이다.

돌아와 다시 보니, 이 사진은 정지된 장면이면서도 움직임을 품고 있다. 맺힘과 낙하, 머무름과 소멸이 한 화

면 안에서 겹쳐진다. 초록 의자의 차가운 표면 위에, 물방울의 운명이 잠시 형상을 얻은 것이다.


3. 시어 — 최소 단위의 낙하, 망각

이 디카시의 시어는 제목을 포함해 여섯 개의 단어로 구성되었다. 우선 주목할 것이 있다. 「빈 기억」이라는 제목이다. 여기서 ‘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비어 있다’는 뜻이다. 이때 ‘빈 기억’은 망각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 먼 의미이지만, 히브리어 bin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분별력, 상황 판단, 슬기로운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이 제목은 일종의 말놀이로서, 망각이라는 삶의 태도가 오히려 슬기로운 지혜일 수 있다는 역설을 품는다.


이어지는 시어들은 이 망각의 순간을 언어로 배열한다.


‘초록 의자’와 ‘물방울’은 본래 이질적이다. 이 말들은 사진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지만,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이 두 시어는 서로 다른 물성을 통해 하나의 긴장 구조를 형성한다. 초록 의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로, 단단하고 견고하며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존재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물방울은 자연이 만들어낸 가장 유동적인 형태로, 여리고 부드러우며 곧 사라질 운명을 지닌 존재다. 잠시 맺혔다가 결국 떨어지고 흩어지는, 지속되지 못하는 형상이다.


이처럼 초록 의자와 물방울은 단단함과 유연함, 고정과 이동, 지속과 소멸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한 자리에 놓인다. 하나는 머무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떠나는 존재다. 그러나 이 이질적인 두 물체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공존한다. 오히려 그 차이가 선명할수록 장면은 더 또렷해진다. 초록 의자의 견고함은 물방울의 연약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물방울의 덧없음은 의자의 지속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이 두 시어의 결합은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이 만들어내는 관계 형성을 함의한다. 서로 다른 두 물성이 맞물리면서 오히려 하나의 장면 안에서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 속에서 미묘한 긴장이 다시 발생하는 역설이다. 그 긴장은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물방울이 의자 위에 머무는 순간, 바로 그 긴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초록 의자’와 ‘물방울’은 각각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려 하나의 의미를 드러내는 변증관계적 존재이다.


“사이”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시어다. 사실 없어도 이 디카시의 의미는 잘 연결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의미 이전에 먼저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나는 글자 크기를 조금 키웠다. 이를 통해 처음과 마지막 시어가 떨어져 있음을 드러냈다. 또한 수평선처럼 이어진 의자 등받이의 공간 위에 배치하여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너머로 이동하도록 했다. 따라서 “사이”는 단순히 읽히는 말이 아니라, 시선을 움직이고 사진과 시를 접합하는 하나의 구조적 축으로 기능한다.


알려진 대로, 사이는 시간의 간격이면서도 동시에 밀접한 공간의 감각, 즉 거리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붙어 있는 상태, 멀어짐과 가까움이 동시에 작용하는 관계의 긴장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에서 “사이”는 단순히 시간이나 위치를 가리키는 말에 머물지 않는다. 물방울이 실제로 맺혀 있는 물리적 자리이면서, 동시에 붙잡힘과 떨어짐 사이, 존재와 소멸 사이에 흐르는 찰나를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이”가 두 대상을 연결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둘이 갈라지기 직전의 긴장 상태를 함께 붙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이”는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이자 사건이다. 물방울은 그곳에서 잠시 붙잡혀 있지만, 이미 떨어짐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그 균형은 안정이 아니라 곧 무너질 긴장이다. 이 긴장은 “사이”라는 시어 안에서 물방울이 머무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떨어질 시간이 뒤섞여 있음을 상징한다. 사진을 보면, 이 시어가 그대로 살아날 것이다. 의자 등받이의 물리적 틈이라는 공간과, 떨어지기 직전의 찰나라는 시간이 한 점에서 겹쳐지는 시공간이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정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는 순간, 공간이 시간으로 전환되는 지점,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이다. 헤테로토피아이다.


결국 이 시에서 “사이”는 존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경계다. 그것은 단순한 간극이 아니라, 붙잡힘이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이며, 존재가 소멸로 기울어지는 순간을 드러내는 자리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떨어짐이라는 사건을 감각하게 된다.


“떨어지는”은 서술어가 없는 불완전한 문구로 시간과 운동을 동시에 드러내는 시어다. 이 말은 이미 끝난 상태인 ‘떨어진’도 아니고, 아직 오지 않은 상태인 ‘떨어질’도 아니다. 오직 지금, 진행 중인 찰나를 붙잡는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결과로 환원되기 직전의 과정 자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어는 시간의 중심을 ‘지금’으로 고정한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한 단어로 묶지 않고, ‘떨 / 어 / 지 / 는’으로 해체했다. 언어철학에서 해체란 분해와 결합을 함의한다. 분해는 단순한 시각적 떨어짐이 아니라 의미의 갈라짐이다. 동시에 결합은 새로운 의미의 발현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개념이었던 ‘떨어지는’이 네 개의 단위로 나뉘면서, 사건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감각되도록 변환되었다. 무엇인가 떨어지는 순간을 초고속 카메라로 포착한 것이다. ‘떨’에서 시작된 미세한 흔들림이 ‘어’를 지나 ‘지’로 기울고, ‘는’에서 결국 낙하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때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라, 실제로 떨어지는 운동을 수행하는 형식이 된다.


이러한 분해는 낙하의 속도를 ‘보여준다.’ 한 글자씩 아래로, 옆으로 쓸려가는 (“는”의 자리) 배열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길게 늘여 보여준다. 그 결과 나는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떨어짐의 과정’을 나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세밀하게 상상할 수 있다. 물방울은 단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흔들리며, 버티다가 결국 중력에 순응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다른 면에서, “떨어지는”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선다. 보이지 않는 중력이라는 힘이, 물방울이라는 구체적 형상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을 보여준다. 중력은 감각되지 않지만, 물방울은 그 힘이 지금-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이로써 이 시어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가시화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이 말은 형용적 동사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그 뒤에 따라올 명사를 의도적으로 비워둔다. ‘무엇이 떨어지는가’는 끝내 명시되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독자의 상상에 남겨진 것이다. 물방울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으며, 기억일 수도 있다. 이처럼 ‘떨어지는’은 하나의 사건을 지시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결국 “떨어지는”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설명이 아니라 일어나는 수행이다. 언어가 사건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건을 다시 한번 새로운 사건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자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사라짐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필연적 운동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감각하게 된다.

이처럼, 이 디카시의 시어는 사진을 설명하기보다 사진을 글로 다시 보여주려 했다. 시어는 상태이면서 운동이고, 존재이면서 행위다. 능동적인 듯 피동적이며, 과거이면서 현재이다. 나는 여기서 에크프라시스의 방식으로, 글이 다시 그림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4. 의도 — 망각의 물리학

나는 이 시어에서 물방울이라는 실체를 토대로 망각의 가치를 생각해 보려 했다. 제목 「빈 기억」은 ‘잊어버림’을 문학적으로 번역한 말이다. 망각은 저 물방울처럼 떨어져 버린 무수한 기억의 죽음이며, 거대한 힘에 잡아당겨져 스러진 기억의 흔적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기억은 망각 위에 잠시 맺힌 물방울 같다. 수많은 빗물이 사라진 뒤에도 잠시 남아 있는 물방울, 그러나 그 물방울마저 결국 중력에 의해 떨어진다. 그러니 이 시에서 기억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망각 속에서 다시 드러났다 또 언젠가는 사라지는 사건이다.


비가 내리는 날, 물방울은 맺히고 버티고 떨어진다. 같은 시간에 태어난 물방울도 서로 다른 찰나에 낙하한다. 어느 물방울도 영원하지 않다. 순간을 붙잡고 머물다가, 자신을 부르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다. 물방울에게는 무의지만이 의지인 셈이다.


시어에서 말한 대로, 나는 ‘초록 의자 물방울’과 ‘떨어지는’ 사이에 ‘사이’라는 말을 넣었다. 없어도 되는 단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단어를 통해 디카시가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완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이’는 시간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순간, 지금-여기를 포착한 그림 언어다. 물방울이 아직 붙어 있으나 이미 떨어지고 있는 미래의 사건을 내다보게 한다. 찰나는 과거이면서 미래이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현재를 가리킨다.


故 김민기 님의 노래 「그 사이」에는 이런 사이의 감각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가 노래한 대로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라는 구절에서 그것을 느낀다. 그 노래에서 사이란 단순한 간극이 아니다. 시간과 동작이 동시에 만들어내는, 그러나 간발의 차이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나의 ‘사이’도 그런 뉘앙스다. 물방울이 의자에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곧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 미세한 순간을 줌인하여 확대해 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저 물방울은 자신의 운명을 가를 중력이 가까워질수록 표면장력의 긴장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야 다시 하늘로 오르고, 그래야 새로운 빗물로 태어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이다. 떨어짐은 끝이면서도 순환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망각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기억을 위한 질서이며,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잠시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일이다. 나의 검은 안식은 여기서도 발견된다.


나는 이런 우주의 질서를 인간의 기억에 투사해 보려 했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망각은 가장 무서운 질병이라는 의식도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달리 보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어쩌면 ‘망각의 은총’ 일 수 있다. 잊히지 않는 괴로움 너머, 잊음으로써 찾아드는 행복한 순간, 그것이 망각의 은총이다.

누군들 부인할까. 새로운 기억이 스며들기 위해서는 오래된 기억은 떨어져야 한다. 내가 물방울을 보며 자신을 비워 떨어뜨림으로써 슬기로운 행동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기억하지 못한 죄바카라에서 벗어나 남겨진 기억을 더 소중히 다룰 수 있으니 말이다.


시인 마종기 님의 시 「가을」에는 아예 떨어짐을 가벼워짐으로 노래한 대목이 있다.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 인지 사라져간다.


이 시를 읽고 나면 기억해야 할 것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기 직전, 그 스쳐가는 사이에 새로운 삶이 스며든다는 잔상이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나의 디카시에 기록된 시어는 늘 그 자리에 있을 초록 의자의 항구성과 어느 순간 사라질 물방울의 유한성을 이어 보려 한 것이다. 망각은 슬픈 일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위한 하늘의 질서라는 역설이다.

5. 정리

디카시는 시어가 사진의 여러 요소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진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의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어마저도 빈자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마지막 시어 ‘떨어지는’ 뒤에 종결어를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이 디카시는 세 개의 장면이 겹쳐진다.


제1층 사진: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들
제2층 시어: 떨어지는 것이 물방울인가
제3층 상상: 물방울 너머 사라진 기억, 다시 살아나는 새로운 기억

따라서 「빈 기억」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기억이 아니다. 떨어져 나가 사라진 듯 보이는 기억, 곧 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자는 말이다. 물방울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을 함의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만이 알 수 있다.


이 시가 공유하려 했던 핵심은 분명하다. 보이는 것은 물방울이지만, 실제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남겨진 사건의 시간이다. 물방울은 일종의 사건의 지평선이다. 떨어지기 직전, 그리고 떨어지는 순간, 세계는 새롭게 변환된다.


망각을 두려워하거나 연연하지 말고, 망각의 끝에 남겨진 기억을 삶의 활력으로 삼아보자. 비워져야 채워지는 그 슬기로운 ‘빈(bin)’의 가치를, 초록 의자 위의 물방울에게 배워본다.


결국 “빈”은 비어 있음과 판별이며, “사이”는 시공간의 경계이자 분별의 간극이고, “떨어지는”은 해체의 순간이다. 기억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사라짐, 곧 망각을 감각하는 사유의 구조다.


어제 내린 비, 모두 사라진 오늘 아침. 나는 물방울 같은 나의 존재가 다시 땅을 거쳐 하늘로 오르는 장면을 조용히 상상한다. 망각은 비워짐이 아니라, 맺혔다가 중력에 의해 사라지기 직전까지 잠시 형상을 드러내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사라짐을 ‘사이’에서 감각하고 구별한다.


이 디카시를 쓰면서 나는 그날 물방울을 보고 있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의 시간과 기억이 떨어지는 장면을 함께 목격하게 되었다. 초록 의자의 견고함과 물방울의 덧없음, 그리고 그사이에 머무는 찰나는 결국 내가 놓여 있는 삶의 자리, 그 불안한 시공간과 닮아있다.


마무리하고 나니, 이 시는 무엇을 설명하기보다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을 길게 붙잡아 보여주며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고, 무엇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기억보다 망각을 더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망각은 정말 불행한 일인가.


이제
나는 망각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라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디카시는 하나의 작은 이미지에서 시작했지만,
쓰는 나에게, 그리고 읽는 누군가에게
각자의 기억이 망각의 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남겨진 기억을 더 다듬는,
살아 있는 존재의 분별력을 남겨주었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 삶은 닫혀가는 듯하지만, 그 닫힘 뒤에는 여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려 있다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이 작은 물방울의 생이 그 관조의 힘을 보여준다. 그날 물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내가 감각했던 것을, 오늘 다시 비가 내리는 자리에서 발견한다. 과거의 한 순간이 지금 여기로 스며든다. 벤야민이 말한 ‘지금-시간’ 같은 찰나다. 그러니 저 물방울은 내가 지나온 시간의 낙하였다. 그 끝에서 나는 망각의 역설을 받아들이며, 나의 미래가 지금 여기라는 것을 내다본다. 남은 생의 길을 산바카라하듯, 기도하듯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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