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센 사람이 통역을 하는 건가, 통역을 하다 보면 드세지는 건가
입시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강남역 학원가에서 주 6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다. 학원 친구와 점심을 먹고 음료수를 사서 복귀하려는데, 커피숍 앞에서 5분만 시간을 내주면 커피 쿠폰을 주겠다는 중년 남성을 만났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차림새의 회사원이었다. 멈춰 서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건 눈빛이 너무 절실했기 때문이다. 실적을 채우기 위해 길거리로 나온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분은 자기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신한은행 사원증과 명함을 함께 보여주었다. 새로 출시된 은행 앱을 깔아달라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나와 친구 모두 신한은행 카드를 쓰고 있었기에 흔쾌히 앱을 깔았다. 부탁을 들어준 학생들에게 고마웠는지 그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무슨 공부 하시는 거예요?"
"통번역대학원 가려고요."
"아... 그럼 통역사?"
"네."
그분의 표정이 살짝 미묘해졌다.
"저도 본사에 있을 때 통번역사들이랑 일해봤는데, 아우... 성격이... 흠... 하... 정말 힘들었어요."
주변에 아는 통번역사가 한 명도 없던 내게 그 말은 꽤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업계 문화가 어떤지, 인하우스나 프리랜서로 일하면 어떤 상황을 겪는지, 성수기와 비수기가 언제인지조차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현업 은행원이 털어놓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는 한탄은 아주 생생한 정보로 뇌리에 남았다. 나름대로 말을 돌렸겠지만, 결국 "통번역사들, 겪어보니 참 드세더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현장에 나와 연차가 쌓인 지금,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로 이 바닥에는 드센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초년생으로 일할 때까지만 해도 왜 통역사가 그렇게 날을 세워야 하는지, 왜 현업 직원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통역사는 왜 드세질 수밖에 없을까.
첫째, 소통의 룰을 강제해야 하는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1대 1 직접 소통에 익숙하다. 중간에 언어를 매개하는 사람이 끼어드는 상황을 다루는 데는 서툴다. 모국어로 편하게 말해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 쉼 없이 말을 쏟아내는 연사들이 있다. 순차통역에서는 이런 연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가야 한다. 제지하지 않으면 10분이 넘도록 혼자 떠들고, 청중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멍하니 바라보며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동시통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석자들에게 통역 환경에 맞는 소통 방식을 주지시키고 흐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통역사는 필연적으로 깐깐하고 단호한 사람이 된다.
둘째, 일이 틀어졌을 때 가장 손쉬운 '욕받이'가 되기 때문이다.
회의가 잘 풀리면 본인들의 공이지만, 협상이 꼬이거나 분위기가 틀어지면 화살은 가장 먼저 통역사에게 향한다. "통역이 뉘앙스를 제대로 못 살린 것 같다"며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핑계를 돌리기 딱 좋은 포지션이다.
현장은 늘 불친절하다. 발표자가 단상에서 읽어 내려갈 원고나 데이터 수치는 사전에 공유되지 않기 일쑤다. 어떤 이는 "그럼, 이제는, 2번 데이터를, 보겠습니다"처럼 어절마다 쉼표를 찍듯 띄엄띄엄 말해 문장의 어순을 맞추기 어렵게 만들고, 어떤 이는 "어제 A님이랑 얘기한 거, 아 맞다 그전에 확인한 게 있는데 컨펌이 안 나서 대기 중이고..."라며 주술 호응이 다 깨진 비문을 끝없이 쏟아낸다. 배경지식도, 맥락도 없이 던져진 상태에서 밀물처럼 쏟아지는 말을 통역사다가 보면 머리가 터진 둑 같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면 사전에 자료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진행 방식을 꼼꼼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셋째, 돈 받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그저 서로 다른 언어를 바꿔주는 단순 작업처럼 보여 종종 그 통역이라는 일은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LLM의 등장으로 번역은 이제 누구나 딸깍 하면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통역은 도배나 목공 같은 기술 노동에 가깝다. 누구나 어설프게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완성도를 내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필요한 사전 협조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프로의 기본자세다. 그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는 태도가 누군가의 눈에는 유별나거나 드세 보일 뿐이다.
오늘 들어간 통역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사들이 단상에 올라 준비된 발표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데, 주관사 측에서는 사전 취합이 덜 되었다는 이유로 자료를 공유해주지 않았다. 부스 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던 파트너는 충분히 미리 전달할 수 있었던 자료이지 않냐며 운영 측에 메시지를 보내는 등 강경하게 항의했다.
답답해하는 파트너의 사정은 나도 충분히 공감되었지만, 문득 입시생 시절 강남역에서 만났던 은행원의 말이 떠올랐다. '대하기 참 힘들었다'던 한마디.
드세고 모난 사람들만 통역사가 되는 건 아니다. 맥락도 자료도 주어지지 않는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고, 모든 결과의 바카라임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통역사들이다. 결국 밥값을 하고 돈을 버는 일 앞에선 누구나 때로는 드세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