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0여 년 전 통대를 처음 들어갔을 때 어느 교수님은 수업에 들어온 열두 명의 학생에게 각자 어떤 이유로 통대에 왔냐는 질문을 하셨다. 그때의 나는 자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통역사로 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통대를 다니고 통역사로 일한 경험이 나중에 제가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자양분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때의 나는 교육 사업이 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가 사업을 잘할 수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번아웃이 온 건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 '계속 도전해야지, 하기 싫은 것도 해야지 발전하고 성장하지. 살면서 너한테 맞는 것만 하면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 피아노를 열심히 치다 권태기가 왔을 때, 중학생 때 혼자 미국 가서 외로움과 싸우고, 영어와 싸울 때, 처음 통역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할 때... 항상 편안하고 느긋한 본성을 매번 거슬러 가며 계속 나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하기 싫지만 해야 했던 것들이 쌓여 이룬 성취도 많지만, 뭔가 내가 정말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 놓고 몰입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그놈의 환금성, 경제력이 문제였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다니셨고,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자식을 해외 유학까지 시키며 뒷바라지를 하셨다. 당연히 부모가 기대하는 ROI는 높았다. 슬프게도 나는 공부를 엄청 잘한 것도 아니었고, 취업이 잘되는 이과 전공을 하지도 못했다. 자연스레 기대는 동생에게 쏠렸고, 동생은 그런 부모님의 맹목적인 관심과 개입에 메말라 갔다. 나는 아직도 어릴 때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 다음 엄마의 얼굴에 스쳤던 당혹감 섞인 냉소를 잊지 못한다. 왜 하필, 너도 그러니-라는 글씨가 얼굴에 배어 나오는 듯했다. 오래전 등단했지만 현실 때문에 전업 문인으로 살지는 못하고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다니신 아빠는 명퇴하자마자 시집을 내셨다. 그런 아빠를 나는 최근까지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마 내가 통역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평생 몰랐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남의 말 듣고 충실히 옮겨 주는 것은 분명 보람 있었다. 그러나 보람을 못 느낄 때도 그만큼 많았다. 어설프게 아는 영어로 오히려 통역사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도하는 일이 아닌 지원하는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멸시도 있었다. 모르는 게 나올까 봐 미친 듯이 조사하고 공부하느라 은근 머릿속 잡지식은 늘어나지만 기록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기도 했다.
지금 이미 여러 인지/지식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미 우리는 계획, 번역, 글쓰기, 디자인, 컴퓨터 그래픽, 작곡 등 예술의 영역까지도 AI에 의존하거나, 의뢰한다. 글쓰기라고 뭐가 다르겠냐고? 내 일이 아니라서 상관없는 것 같다. 이게 일이라면 AI로 딸깍을 하든 짜내어 쓰든 하겠지만, 적어도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내 얘기를 한다는 것, 아니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숨은 갈망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생기고 회사에서 나와 나를 돌아보게 되며 처음 인정했다. 돈 안 벌어도 된다면,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나의 답은 주저 없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창동 감독이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그는 배낭여행을 하다 외국인들이 한국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영화가 가진 보편성에 놀란 것이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글보다 훨씬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이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씨네 21의 2004년 이창동 감독 인터뷰를 읽어 보길 권한다. (https://cine21.com/news/view/?mag_id=27468)
언젠가 나도 영화를 만들 날이 오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행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옛날만큼 아날로그적인 노동을 집약할 필요가 없어졌고, 훨씬 적은 자원으로도 만드는 게 더욱 쉬워졌다. 그렇게 이제라도 표현의 욕구를 해소해보려 한다. 매일 느낀다. 내가 안 좋아하는 본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Jimmy Yang은 자기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선언했을 때, 아버지가 해준 말을 개그로 써먹었다.
Everyone does what they hate for money and then use that money to do what they love. (다들 싫은 거 하면서 돈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다) - Jimmy O Yang
그럼에도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매일 아침 약간의 불안감에 잠깐 침울해지고, 어려운 일이 들어오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대신 나에겐 카페에서 글 쓸 시간과 거기서 마실 커피를 살 돈이 있다. 앞으로 내가 통역을 하든, 영어를 쓰는 어떤 일을 하든, 사업을 하든, 글만 쓰든,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건 변함없을 것 같다. 어쨌든 영어를 못하는 동시통역사라는 정체성은 나의 일부로 함께하겠지만, 더 이상 그것이 나의 본캐가 아니라는 선언을 하며, 영어를 못하는 동시통역사 온라인카지노북을 이 에필로그로 맺는다. 부족한 변두리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