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글로벌 IB 미팅에서의 참사: 말을 잘하는 것만큼 안하는 것도 중요하다

by캐롤

오랫동안 온라인카지노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그동안 너무 바빴다. 안온하게 흘러가던 일상 가운데 갑자기 일이 들어왔고, IB 관계자들과 우리나라 기업 간 미팅 통역을 갈 일이 생겼다. 늘 놀러만 가본 동네에 일하러 가보는 느낌은 생경했다. 출입증을 받고 안내받은 곳은 여느 호텔보다도 더욱 세련된 위엄이 느껴지는 회의실과 응접실이었다. 8시 30분이었지만 이미 그곳엔 먼저 도착해 있는 관계자들이 자리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업무를 보는 분위기였다.


"Hi, I am ___, nice to meet you."


파트너 선생님은 나보다 한 발짝 성큼 앞서 나가 먼저 와 있던 외국인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살짝 파트너의 태도에 당황했다. 보통 통역사들은 언어를 보조하는 역할인 만큼, 눈에 띄는 것을 극도로 삼간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묘하게 비즈니스를 하러 온 것 같은 당당하고 파워풀한 태도가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이틀간 조율 회의와 실제 미팅이 진행됐고, 다행히 미팅 자체는 특별히 껄끄러운 상황 없이, 순탄하게 끝났다. 다소 긴장될 법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미팅 자리에서 아직 "구체적으로 모르는 내용"에 대해 민감한 질문을 벌써부터 던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팅도 무탈히 끝났겠다, 다들 한숨을 돌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잠깐 회의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와중, 갑자기 파트너가 또 불쑥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을 만난 만큼, 뭐라도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섞고 싶은 눈치였다.


"So, I did some digging of you guys..." (그래서 내가 당신들 뒷조사를 좀 했는데 말이에요...)


적잖이 당황해 나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떴다. ?? digging?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상대방 역시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그 상황을 유머로 무마하려고 "Digging...? Wow that is kind... of creepy!" 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트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Well, you know as an interpreter, we have to do our homework (아시잖아요. 통역사라면 마땅히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와야죠)."라고 말하며 더욱 충격적인 말을 시작했다. 링크드인에서 찾아봤더니, 성에 한국 방식으로 생각하면 "복권"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며, "당신 이름 읽어보면 '복권'이라는 뜻이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이걸 모두 목격한 나는 그만 충격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복권"이라는 이름의 당사자는 하하-라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마찬가지로 할 말이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혹시 이탈리아계시냐'고 물었고, 그분은 먼 조상이 이탈리아계 맞는 것 같다고 형식적 대답을 해준 후, 곧바로 자기 핸드폰으로 시선을 고정해 버렸다.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가치가 없다는 무언의 제스처였다.


황당한 촌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고 IB 측 관계자가 와서 우리에게 이런저런 스몰톡을 걸어왔다. 상대측은 한국과 한국인의 문화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고, 특히 특유의 공손하고 절제된 의전문화, 손윗사람을 공경하는 태도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말하며 동시에 여러 슬롯적 기준과 압박이 심한 탓에 자기 검열과 완벽주의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데 옆에서 파트너가 갑자기 "What is your MBTI?" 라고 뜬금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What is that? MBTI?" 상대방은 약간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Umm...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it's like a personality test (음... 마이어스 브릭스 성격유형지표라는 건데 성격검사 같은 거예요)." 왠지 모르게 머쓱함까지 내가 짊어지고 대신 답했다(나는 대학교 때 심리학 수업을 몇 개 들어 MBTI의 명칭을 알고 있었다).


모르겠다고 하면 바로 넘어가야 하는데, 파트너는 갑자기 여기서 멈추지 않고 I와 E의 차이, T와 F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자 아무래도 뭐라도 해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파트너의 강박이 이렇게 안타까운 형태로 발현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그 상황이 자꾸 복기가 됐다. 솔직히 나는 너무 창피했다. 통역사라는 사람이, 외국인에게 몇 없는 한국인의 표본을 망쳐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일까?


1. 통역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통역사는 다소 모순적인 양면이 있는 직업이다. 연사와 함께 서서 연사의 말을 다른 언어로 옮겨 주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연사만이 받아야 한다. 같이 있고 같이 말하지만 통역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오히려 말은 하지만 최대한 보이지 않는 그늘에 서 있거나, 최대한 안 보이는 쪽에 숨어있는 게 센스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본분인 통역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그날 나와 같이 갔던 파트너의 행동은 안타깝게도 통역사의 역할을 "비즈니스의 진행자"로 착각한 결과였다.


전에 통대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일화가 있다. 이 얘기를 들은 것도 10년 전이니, 최소 15년이나 20년 전 이야기일 것이다. 어느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 통역사를 불렀는데, 미팅 당일 통역사가 올화이트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잔머리 하나 없이 빗어 올린 포니테일 헤어에 풀메이크업을 받고 왔다. 의뢰처는 통역사의 착장에 큰 부담을 느끼고 고민하다 결국 통역사를 돌려보내고, 현업 직원이 통역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시사점은 뭘까요?" 교수님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학생들에게 물었다. 나는 당시 올화이트 투피스 정장과 올백머리가 무슨 문제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뒤이어 말씀하셨다. "통역사는 행사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통역사는 통역만 하고 오는 거예요. 자기 자리를 모르고 그렇게 오버하면 욕 먹습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10년 동안 그렇게 오버하는 통역사를 나는 보지 못했었다. 지난주 IB 미팅에서 MBTI좌를 만나기 전까지는.


2. 미국식 캐주얼함과 비즈니스 격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언어 감각 부재


이름을 가지고 하는 언어유희적 농담은 친한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초면에 상대방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연소한 사람에게 하는 친근함의 표현이라면 모를까, 비즈니스로 처음 만난 상황에서 이름에 복권이 들어가서 웃기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비즈니스 현장은 일종의 외교 무대와 같다.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 생각해야 하고, 비즈니스 관계에서 지켜야 할 언어적 격식을 갖추고 있어야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 간혹 미드나 영화에서 접한 캐주얼한 표현이나 쿨해 보이는 슬랭을 격식 있는 자리에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면서, 스스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현실 비즈니스는 영화 속 술자리가 아니다. 겉멋 든 미국식 캐주얼함과 정제된 비즈니스 에티켓을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상대방에게는 전문성이 아니라 가벼움과 무례함으로 비칠 뿐이다.


비즈니스 상황에서 통역사의 가치는 얼마나 투명한 공기처럼 존재하면서 양측의 의사소통을 매끄럽게 서포트하는지에 달려 있다. 통역사는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결코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센스, 즉 끼어들 때와 물러설 때를 정확히 아는 감각이 통역사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여기서 통역을 나만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기세를 갖는 건 좋다. 다만 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사담과 무리한 농담은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린다. 진짜 실력은 회의의 주역들이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에서 템포를 조절하는 노련함에서 나온다.


IB의 회의실은 친목을 다지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리수 농담을 들은 상대방이 지어 보인 헛웃음과 곧바로 핸드폰으로 내리꽂힌 시선은 명확한 시그널이었다. 어설프게 던진 사담이 성가신 소음으로 전락하는 광경을 복기하며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나도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내 이야기만 쏟아냈거나, 분위기를 띄워보겠다고 남을 희화화하는 무리수를 둔 적은 없었을까.


결국 사람 사는 일이나 소통의 기본은 비즈니스나 사적 관계나 다를 게 없다. 나는 낮추고 상대는 높이는 말을 쓸 것. 웃길 때는 나를 소재로 삼고, 칭찬은 남에게만 돌릴 것. 이 정도만 기억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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