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 대한 고찰
늙크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스레드에서 종종 이런 글을 본다. 상대는 대개 예비(혹은 현재) 시어머니인데, 자꾸만 내 엄마를 칭할 때 "니네 엄마, 니네 집"이라고 하는데, 자기가 기분 나쁜 게 맞냐고 묻는 글이다.
기분이 상하는 이유는 아마도 "니"라는 단어 자체보다는 그 어감 때문일 거다. 우리말은 참 묘해서, 말하는 사람의 억양이나 조에 따라서 같은 말도 다정하게 들리거나 아주 불쾌하게 들린다.
"너는 무슨 커피 좋아해?" 라고 물어보는 것과 "캐롤이는 무슨 커피 좋아해?"라고 묻는 것은 느낌이 꽤 다르다. "너"라고 불러도 다정한 어조라면 문제 없다. 하지만 대개 "너"라는 말이 기분 나빠질 때는 비꼬거나 하대하는 태도가 본능적으로 감지될 때다.
이 글을 동종업계 사람이 읽는다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지만, 통역사라는 직업의 마이너한 특징 중 하나는 '확실히 정해진 호칭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인정한 면허를 따야만 통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통역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통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직업 코드에서는 우리를 '통역가'라고도 한다. 다만 업계를 들여다보면 이 통역시장에도 이른바 티어라는 게 존재해서, 어느 영역의 통역 일을 하느냐에 따라 페이 수준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페이를 많이 받는 사람은 통역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람은 '어이', '저기', '통역' 으로 불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통역을 제공받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다. 통역 환경에 매우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처음인 사람도 있다. 통역사는 외국어를 써야 할 일이 많거나, 외국인과 함께하는 상황에 함께 하기 때문에, 통역사와 함께하는 미팅은 일반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상황은 아니다. 참석자들은 회의나 행사에 집중하느라 통역사의 존재 여부나 호칭까지 세심히 고려할 여력은 없다. 통역사가 있다고 하면 반기면서도,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급한 대로 부르곤 한다. "어이!" "저기요," "여기 통역." 비즈니스 미팅에서 통역사가 소개될 때도 마찬가지다. "통역 여기 있습니다." 마치 "핸드폰 여기 있습니다" 처럼 무생물 객체가 된 느낌을 받곤 한다.
비단 비즈니스 현장뿐만이 아니다.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외국인 선수의 수훈 선수 인터뷰를 유심히 보게 되는데, 중계진이나 선수들조차 옆에 선 통역사를 "통역사"나 "통역사님"이라 부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선수들은 대개 "통역" 아니면 "통역 형"이라고 부른다. 전문 직함보다는 단순한 역할명이나 친근함을 빙자한 가벼운 대명사로 취급받는 씁쓸한 장면이다. (물론 구단에서 선수를 전담하는 통역사들은 통역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고 회의나 공식적인 자리 외에도 선수의 삶 전반에 동행하는 직원들이라 친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호칭에 대한 고찰을 처음 시작한 건 첫 온라인 게임이었던 로펌에서였다. 나는 막 입사한 패러리걸(Paralegal)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패러리걸의 역할이 단순 법률번역에 한정된 경우가 일반적이다. 내가 다니던 로펌에서는 비법조인이지만 로펌에서 필요한 전문분야에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스페셜리스트들을 패러리걸로 채용했다. 이들은 디지털 포렌식이나 지식재산권 등 특정 분야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사람들이었다. 패러리걸들은 서로 XXX 패러리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한 부서를 전담하는 번역사였던 나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업무를 지시하는 이메일 서두를 보고 나는 조금 당황했다.
"캐롤씨, 안녕하세요,
XXX에 보낼 의견서 초안을 첨부하였으니 토요일까지 번역 부탁합니다."
캐롤씨? 나는 분명 패러리걸이라는 직함이 있는데.
약간 의아하고 기분이 묘했지만 일단 넘어갔다.
지내다 보니 그 부서만의 관성적인 문화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임자는 대학을 갓 졸업하자마자 알바처럼 단기계약직으로 들어왔다가 오래 다니고 퇴사한 분이었다. 부서 사람 모두가 그분을 "XX 씨"라고 불렀다고 했다. 나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관성대로 쓰는 호칭일 뿐이었다. 파트너 변호사부터 1-2년차 어쏘 변호사들, 내 또래인 비서들 모두 나를 XX씨 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느 날, 나와 동갑인 2년차 어쏘 변호사에게 "XX씨, 첨부의 의견서를 언제까지 번역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비로소 마음속 깊은 곳에 잔존하던 묘한 불쾌함의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상대방을 항상 "변호사님"이라고 존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경험한 변호사 집단은 호칭에 극도로 철저한 사람들이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김 변, 이 변"이라고 줄여 부르는 변호사는 적어도 내가 다닌 로펌에서는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대표변호사도, 어쏘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성과 이름 뒤에는 언제나 "변호사님"이 붙었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누락되어서는 안되는,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번역 결과물을 보내면서 이메일 말미에 조심스럽게 문장을 덧붙였다.
"변호사님, 다음부터는 패러리걸이라는 직함을 붙여 불러 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드립니다."
그 이메일을 보낸 후,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던 그 어쏘 변호사는 나를 어색하게 피하거나 못 본 척 지나치기 시작했다.
고작 호칭 때문에 뭘 그렇게 유난스럽냐, 예민하게 구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체계가 있는 조직이라면 아무리 친해져서 사적으로는 서로를 이름으로 부른다 해도, 업무상 제3자에게 그 사람을 칭할 때는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야 한다. 그것이 슬롯생활이자 인간관계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호칭을 어떻게 할 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높여 부르면 된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영어권에서도 이름과 호칭을 모르는 사람을 칭할 일이 있으면, Sir, Ma'am으로 부른다.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선생님" 정도다. 물론 우리도 아저씨! 아줌마! 라고 부르는 방법이 있다. 영어에도 Hey! 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소통만 된다면 까짓거 어떻게 말하든 상관 없는 게 아니다. 조금만 신경써서 격식을 차려 상대방을 부르면, 상대방도 존중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응대가 부드러워진다.
결국 나는 그 로펌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퇴사했다. 그 때 나에게 정말 건강 때문에 퇴사하는 게 맞냐고 물어보신 파트너 변호사의 직감은 맞았다. 그때쯤 나는 로펌에서 하는 일에 꽤 적응한 상태였다. 그러나 업무 강도보다도, 포괄임금제라는 미명 하의 열악한 처우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어이없게도 "XX씨"라고 불리는 호칭, 그리고 그 호칭에 스며 있는 나의 가치 수준이었다.
감사하게도 환승 이직에 성공해 새 온라인 게임으로 출근한 첫날, 나를 자리로 안내하는 직원이의 말에 나는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통역사님, 이 자리를 쓰시면 됩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회사가 바뀌고, 주변의 호칭이 바뀌자 비로소 한 직업인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타인의 호칭에 진심으로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어디를 갈 때마다, 식당이나 매장에 가면 근무자의 명찰을 살피고, 나이가 있으신 분에게는 사장님이나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이메일을 쓸 때는 항상 "XXX 대표님, XXX 연구원님," 이라고 직함을 기재한다.
요즘은 기업에서도 엄격한 위계 대신 수평적인 문화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문화가 대세가 되었다. "캐롤님." 상호 존중이 담긴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호칭은 중요하다. 호칭은 단순한 대명사가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정의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내가 존귀한 존재로 대우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이름과 타이틀 역시 정성껏 불러주어야 한다고 아직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