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위로받은 어느 소심한 통역사 이야기
야구는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다. 규칙이 많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알아야 이해되는 것이 너무 많다. 축구와 비교해 보자. 축구는 경기를 보는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상세규정이 많지 않다. (물론 전술적으로 들어가면 모르겠지만) 일단 상대편 골에 가서 골을 넣는다, 골인하면 득점이다. 끝. 아주 간단하다.
그런 점에서 축구를 보다가 야구를 보면 처음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일단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을 몰고 다니다 패스를 하고 슈팅을 하는 다이내믹이 존재하는 축구와는 달리, 야구를 보면 배트에 공을 맞히는 것부터가 안 되는 타자들이 있다. 헛스윙을 하거나 들어오는 공을 치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을 거다. 이건 한 번이라도 타석에 서서 날아오는 공을 맞히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바로 타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시속 140km 이상으로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맞힌다는 것이 얼마나 찰나의 순간이며, 그 찰나에 배트를 휘두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과, 설령 배트에 공을 맞혔어도, 그 타구가 인플레이 타구가 되어 수비수가 한 번에 잡지 못하는 안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즉, 안 해본 사람은 안타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과 능력이 요구되는 스킬인지 모른다는 거다.
우리는 얼마나 축구나 야구선수들에게 비난을 쉽게 했던가. 오죽하면 오래전 축구선수 기성용은 SNS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라는 말을 남겼던가.
통번역도 비슷하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 정도면 나 영어 잘하지 않나? 스스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위축되는 것보다 100배는 낫다. 그렇지만 보기보다는 쉽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타석에서 공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만큼, 타이밍 맞게 공을 치는 것만큼.
만약 오늘 하루 나는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고 오직 영어만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아침에 눈을 떴더니 나는 미국 아이다호의 어느 시골집에 있다. 나에게 아침에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파란 눈의 미국 아줌마다. 밖을 나갔더니 다들 노란 피부에 검은 머리 동양인을 실물로 처음 본 동네 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
내 생각에 화장실은 어딨냐, 소금 좀 달라, 나는 저녁에 햄버거를 먹겠다-같은 말 말고, 나의 생각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영어로 전달하고, 나의 상황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누군가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통번역을 도전해 볼 만하다.
그럼 내 의사표현을 영어로 하는 데 부족함을 못 느끼면 통역도 잘하는 건가? 분명한 건, 내 생각을 100% 영어로 말하는 것과, 남의 생각을 100% 번역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리그다. 여기서부터 진짜 프로의 야구가 시작된다. 이 참에 통역사가 겪는 직업적 고충 몇 가지를 털어놓고자 한다.
1. 연사의 화법
일단 통역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전달해 주는 일이기 때문에, 원리가 조금 다르다. 일단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말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언변이 좋은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말주변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개념도 누구는 아주 쉽게 말하는 반면, 누구는 아주 어렵게 설명한다. 그래서 연사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가 통역의 아웃풋을 결정한다.
2. B언어(외국어) 실력의 한계
연사의 말을 듣고 이해는 완벽하게 했으나 '도착어'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에는, 아무리 내가 이해를 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른 언어로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하도록 말하는 것이 어렵다. 예를 들어 "그는 비겁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치자. 만일 내가 "비겁하다(cowardly)는 형용사를 영어로 모른다면, 그에 최대한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로밖에 전달할 수 없다. 비겁하다는 형용사를 모르기 때문에 "He is scared (그는 겁이 났어요)."라고 전달한다면, 전혀 맞는 통역이 아니다.
3. 문외한인 분야에 대한 지식의 한계
전문적인 분야일수록 통역사가 배경지식이 있어야 연사의 말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통역사는 통역을 받게 되면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하곤 한다.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나오면 아예 뇌가 정지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통역 사전 준비를 위한 이 공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분들도 있지만, 보안을 이유로 협조에 제약이 생기기도 한다. 또는 준비를 위해 자료를 요청하는 통역사를 귀찮게 여기거나 유난스럽다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는데, 통역의 품질을 위해 자료가 필요함을 설득해야 하는 것도 통역사의 몫이 될 때가 많다. 자료가 통역 직전까지도 미비 상태 거나 없는 경우에는, 최대한 있는 정보 없는 정보를 총동원하여 브레인스토밍을 해야 한다.
4. 기상천외한 다양한 악센트
영어는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다. 즉,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소통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통가능한 제3의 언어를 쓰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 언어가 영어다. 세계 절대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영 통역사들만이 겪는 애로사항이 있는데, 바로 영미권의 사람들 외의 다양한 나라 사람들의 영어를 통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어의 성조가 그대로 영어에도 묻어나는 경우, 아무리 들어 봐도 러시아어처럼 들리는데 인상을 팍 쓰고 초집중해 들어야지만 몇 단어를 통해 그게 영어인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 머리에 갑자기 과부하가 걸린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갑자기 팬이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를 왜앵~내며 세차게 돌아가고 무지무지 뜨거워지며 살려달라는 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이런 연사를 만날 때마다 내 머리도 살려 달라고 절규하며 셧다운 직전까지 가곤 한다.
나는 흔히 오랜 야구팬들이 조롱하는 몬줌마다.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야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안타와 범타의 차이, 병살, 땅볼 등의 차이, 출루해서 홈으로 돌아오면 득점 등) 하지만 공을 맞히려는 타자와 공을 못 맞히게 해야 하는 투수의 수싸움, 누상에서 주자들이 어떻게든 한 베이스 더 진루하기 위해 하는 노력들, 자꾸 안타를 맞고 출루를 허용해 점점 깨져가는 투수의 멘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또 평생을 야구를 했지만 끝내 프로에 지명되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하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사실 스포츠 자체의 재미를 깨달았다기보다도, 선수의 입장에 깊이 공감해서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의 답답함과, 아무리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인정받았다 할지라도 프로의 벽은 높다는 것을 절감할 때의 심정이 공감되더라.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차분하게 듣기 좋은 통역을 하는 선배들이 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통역이 돼?라고 생각할 때도, 그분들은 그런 것쯤은 큰 문제 아니라는 듯이 태연하게 완벽한 통역을 해내는 것 같다. 그러니 프로는 하나라도 빠짐없이 그 모든 것을 태연하게, 아무런 불평이나 잔말 없이 자기 일을 해내는 모든 사람들인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야구의 마운드와 타석 위에서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에 눈을 떼지 못했던 건, 매번 통역 부스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서늘함과 닮아있어서였던 것 같다. 10년 동안 통역을 했지만 기상천외한 악센트를 가진 연사를 만나면 여전히 머릿속 컴퓨터 팬은 으왜애앵 하는 괴성을 지른다. 마치 타자가 기상천외한 폼으로 치기 힘든 코스에 공을 뿌리는 투수를 만나면 머리가 하얘지듯이. 배경지식이 부족한 분야의 통역을 하게 될 때면 안타는커녕 루킹 삼진 아웃을 당할 것 같은 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야구선수가 삼진이 두렵다고 타석을 피할 수 없듯, 통역사 역시 마이크가 켜지는 순간 숨을 곳이 없다. 날아오는 공이 직구일지 변화구일지 미리 알 수 없어도, 내가 할 일은 그저 들어오는 공을 온 신경을 다해 끝까지 응시하는 것뿐이다. 오늘도 뇌를 풀가동해야 하는 낯선 전장으로, 내 몫의 안타를 하나라도 더 쳐내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가는 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