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콘텐츠를 대신 만드는데, 왜 팬덤은 늘지 않을까
모더레이터가 청중을 향해 던진 질문 하나가 장내의 정적을 깨뜨렸다. "작년에 여러분이 만든 콘텐츠 중에서, 지금도 독자가 스스로 찾아보는 영상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AI의 등장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속도와 도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콘텐츠의 절대적인 양이 폭발했다고 해서, 우리 브랜드를 진심으로 기억하고 찾아주는 팬덤이 함께 늘어났는가에 대한 답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
이 질문은 광고와 브랜드 콘텐츠의 명확한 차이를 짚어낸다. 광고가 사람들의 시선 앞에 메시지를 강제로 밀어 넣고 한 번 노출된 뒤 사라지는 휘발재라면, 브랜드 콘텐츠는 시간이 흘러도 소비자가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게 만드는 지속적인 자산이다. 단발성 노출과 몇 년 뒤에도 다시 꺼내지는 브랜드 자산의 차이는, 결국 영상을 제작하기 전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정의하는 첫 단계에서 결정된다.
그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세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서사를 쌓아온 실무자들이다. 돌고래유괴단의 이주형 감독, 토스 머니그라피의 배채민 PD, 그리고 7년 차 IT 테크 채널의 김주연 크리에이터가 그 주인공이다. 영역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들이 내놓은 답은 하나의 공통된 원칙으로 수렴했다.
브랜드 콘텐츠를 기획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장단점의 불균형이다. 이주형 감독이 맡았던 SKT 에이닷 캠페인은 당시 완성도를 높여가던 단계였다. 장점만 부각하자니 가식적으로 보여 시청자의 이탈을 부르고, 그렇다고 브랜드의 단점을 직접 내세울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었다. 그가 찾은 돌파구는 'AI 역시 인간처럼 오답 노트를 쓰며 틀리면서 배운다'는 관찰이었다. 메시지의 축을 단순 스펙에서 '사람을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AI'로 옮기자, 기술적 미완성이라는 단점은 오히려 '인공지능 학교'라는 세계관을 받쳐주는 가장 인간적인 재료로 뒤바뀌었다.
이러한 전환은 강점을 전달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브랜드가 자랑하고 싶은 메시지를 모두 나열할수록 독자는 지루함을 느끼고 도중에 나가버린다. 이주형 감독은 강점 중 가장 파괴력 있는 단 하나만을 골라 끝까지 밀어붙이는 전략을 취한다.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핵심 하나만 분명히 하고 나머지는 궁금해진 독자가 직접 찾아보도록 남겨둘 때, 스스로 검색해 들어온 사람의 기억 속에 브랜드가 훨씬 더 깊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토스 머니그라피의 배채민 PD는 브랜드를 뒤로 물리고 콘텐츠 자체의 팬덤을 먼저 쌓은 뒤, 이를 브랜드 팬덤으로 이식하는 역발상을 택했다. '금융을 쉽게'라는 토스의 지향점을 채널의 목표로 삼되, 브랜드 이름을 앞세워 설명하는 대신 일상 속에서 소비자가 이미 좋아하는 취향과 주제를 통해 경제를 발견하도록 설계를 뒤집었다. 대중성이 필요한 시점에는 예능 형식을 빌려 오고, 그 안에 금융과 산업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었다.
타깃을 설정하는 방식 역시 거꾸로 갔다. 전 국민이 쓰는 토스라는 서비스와 달리, 머니그라피는 특정 취향을 가진 매우 좁은 타깃을 겨냥했다. 모더레이터 선우의성이 짚었듯,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브랜드 이름을 건 종합 채널을 만들려는 시도가 가장 흔한 실패 패턴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금융 회사가 전달하는 돈 이야기라는 본질적인 신뢰가 작용하면서, 브랜드를 숨기기보다 적절히 드러내는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기술력이 복잡하고 난해한 B2B 기업의 이야기라도,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설계하면 몰입을 끌어낼 수 있다. 김주연 크리에이터가 다룬 ASML 영상이 대표적이다. 일반인에게 낯선 2,000억 원짜리 반도체 노광장비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바카라상 앞에서의 진부한 진행 대신 방진복을 입고 먼지를 털어내는 압도적인 첫 화면과 가격 숫자를 전면에 배치했다. 지구에서 달에 놓인 100원짜리 동전을 맞히는 수준이라는 비유를 거쳐, 결국 그 장비로 만든 반도체가 우리가 매일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 들어간다는 일상으로 착지시켰다. 호기심에서 경이로움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순서를 설계한 결과였다.
성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제품에서는 극단적인 상황 연출을 통해 직관적 시각화를 이끌어냈다. 공기청정기 협업 당시 그는 사무실 벽을 비닐로 감싸고 홍어와 취두부, 삭힌 정어리 통조림을 동원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리뷰를 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저게 뭐지?" 하고 끌려들어 오게 만드는 장치였다.
또한 앵커 보조배터리 협업에서는 전 제품을 소개해 달라는 브랜드의 요청을 거절하고 '보조배터리 구매 시 후회하지 않는 체크리스트'라는 시청자 중심의 기준을 만든 뒤, 그 안에 브랜드의 강점을 배치함으로써 광고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신뢰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날 가장 논쟁적인 화두는 이주형 감독이 던진 '참고자료(레퍼런스)에 대한 경계'였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뛰어난 기존 작업물들을 조합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방식이 실력을 쌓고 성과를 내는 표준으로 통했다. 그러나 AI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결과물을 통째로 학습한 거대한 참고자료 덩어리로 등장한 이상, 기존의 조합 방식으로는 기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남의 잘된 작업을 뒤지는 순간, 기계가 훨씬 잘하는 일을 사람이 스스로 답습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남의 작업을 보고 배우는 것이 창작의 기본 경로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반론의 여지가 크며, 참고자료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겨누는 지점은 명확하다. 기존 결과물을 조합해서 갈 수 있는 영역은 이미 기계가 훨씬 빠르게 훑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한 번 소비되고 사라지는 콘텐츠가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남는 서사를 만드는 힘은, 기계적 조합을 넘어 시청자의 대화에 끼고 싶게 만드는 정서적 몰입과 인간 고유의 깊은 관찰에서 나온다.
물론 이러한 전략들을 모든 조건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김주연 크리에이터처럼 실패 위험을 무릅쓴 파격적인 실험 기획은 이미 확실한 시청자층이 존재하는 구독자 80만 명 규모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선우의성이 짚었듯 구독자가 1,000명일 때라면 쉽게 던지기 어려운 수다. 또한 브랜드를 뒤로 감추고 콘텐츠 팬덤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조직적 시간표를 확보하는 것 역시 현실적인 난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증명해 낸 명확한 사실은, 한 번 노출되고 잊히는 콘텐츠와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자산의 차이가 결국 '수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AI가 제작의 속도와 수량을 폭발적으로 올려주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무슨 말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메시지를 좁히는 뼈대를 건너뛰고 단순히 제작 효율만 높이는 것은 팬덤 없는 파편만 양산할 뿐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상의 빈틈을 포착하고, 시청자의 감정 흐름을 세심하게 고려하며, 오래 살아남는 서사의 구조를 짜는 것. 그것이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가 독자의 기억에 단단히 뿌리내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