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스필드의 5천 원은 '생성 단가'일뿐, '완성 단가'가 아니다
2026년 8월 맥스서밋 무대에서 힉스필드(Higgsfield)의 김민성 사업총괄이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남산을 배경으로 선 AI 모델이 안경 렌즈를 소개하는 광고였다. 자외선과 블루라이트를 함께 막아준다는 설명에 이어, 가벼운 착용감과 흔치 않은 그레이 색상까지 카피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그가 입력한 것은 제품 상세페이지 링크와 이미지 몇 장이 전부였다. 제작에 걸린 시간은 5분, 쓰인 크레딧은 3달러였다.
그가 직접 짚은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배경에 남산이 등장한 것은 그가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로 프롬프트를 입력했기 때문이다. 둘째, 모델이 말한 멘트의 30%는 상세페이지가 아니라 제품 리뷰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가볍다거나 편하다는 표현은 브랜드가 만든 카피가 아니라 소비자가 남긴 말이었다. 5천 원이라는 가격표보다 이쪽이 훨씬 중요한 변화다.
회사 소개가 이어졌다. 서비스 출시 15개월, 연매출 8천억 원, 전 세계 사용자 2,700만 명. 임직원 300명 중 150명이 4대 보험을 적용받는 크리에이터이며 엔지니어는 90명이라, 엔지니어 한 사람이 60억에서 80억 원의 매출을 감당하는 구조라고 했다. 한국은 사용자 생애가치 기준 세계 2위, 기업 고객 기준 3위이고 월 성장률이 55%인 시장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외부 집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6년 6월 연환산 매출 5억 달러를 넘어섰고, 이만한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로는 드물게 현금흐름 흑자를 기록했으며, 기업가치 50억 달러로 투자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출시 15개월 된 서비스의 8천억 원은 확정된 연간 실적이 아니라 연환산 수치로 읽어야 한다.
그는 이 변화를 프로덕션 택스, 곧 제작세의 해체라고 표현했다. 콘텐츠를 만들 때 반드시 붙는 세금 같은 비용을 최소화해서 결국 더 좋은 이야기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이기게 만드는 것이 회사의 미션이라고 했다. 창업자의 말을 옮긴 대목이었고, 이 발표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기도 했다.
미션을 그대로 받아 읽으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영상 한 편이 팔리기까지는 생성, 선별, 서사의 세 단계를 거친다. 제작세가 걷히던 이 세 단계 가운데 값이 내려간 것은 첫 단계뿐이다. 나머지 두 단계의 값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올랐다.
발표에서 소개된 95분짜리 장편 <헬 그라인드>가 좋은 사례다. 무대에서는 3주에 7억 달러가 들었다고 했지만, 회사가 공개한 자료의 수치는 2주에 50만 달러 미만, 우리 돈으로 7억 원 남짓이다. 원화를 달러로 옮기는 과정의 착오인 듯 하다. 오히려 실제 수치가 더 인상적이다. 같은 규모의 실사 영화라면 5천만 달러가 든다는 것이 알렉스 마슈라보프 CEO의 비교이니, 100분의 1인 셈이다.
그런데 같은 회사가 공개한 제작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25분 분량을 완성하는 데 1만 6,181번의 영상 생성이 필요했고, 최종 편집에 살아남은 컷은 253개였다. 예순네 번을 버려야 한 컷을 건지는 작업이었다는 뜻이다. 제작비 50만 달러 중 40만 달러가 연산 비용이었고, 전통적인 영화 현장을 거친 감독과 촬영감독, 편집자 15명이 투입됐다. 프롬프트 한 줄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순네 번을 버릴 각오를 한 전문가 집단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산업의 구조가 여기서 드러난다. 생성 단가는 0에 가까워지지만, 쓸 만한 한 컷을 건지는 단가는 그만큼 내려가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하는 선별과 편집은 여전히 사람의 시간이고, 사람의 시간에는 할인이 없기 때문이다. 5천 원은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값이지 완성작 한 편의 값이 아니다.
발표자도 이 차이를 뭉뚱그리지는 않았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영화는 1억 원, 걸그룹은 일주일에 수백만 원, 개인이 콘텐츠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 데는 100만 원. 광고 한 편과 장편 한 편 사이에 벌어진 이 간격이 곧 선별과 완성에 붙는 값이다.
김민성 사업총괄이 발표 중간에 지나가듯 말한 대목이 있다. 처음에는 개인 크리에이터가 쓰는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기업이 전사적으로 활용해 효율을 끌어올리는 서비스로 목표 고객을 옮겼다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스쳐 갔지만 이 회사의 손익은 여기서 갈린다. 창업자가 다른 자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매출의 약 70%가 개인 창작자가 아니라 광고·마케팅 에이전시에서 나오며, 초기부터 그랬다.
촬영팀과 장비, 로케이션이 있어야 했던 광고 소재를 하루 만에 완성하고, 배우와 조명을 바꿔 열 가지 버전을 뽑아내는 일. 무대에서 본 5분짜리 렌즈 광고가 정확히 그 사례였다. 이 영역에서 힉스필드는 이미 논쟁의 여지없이 이겼다.
반대편 사례도 분명하다. 오픈AI는 2026년 4월 소비자용 소라(Sora) 앱을 접었다. 누적 매출은 200만 달러 남짓이었던 반면 하루 운영비는 1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생성 영상을 관객에게 콘텐츠로 파는 모델과 기업에 제작 도구로 파는 모델의 손익이 이 대비에서 선명하게 갈린다.
흥미롭게도 발표자 스스로 이 구분을 인정했다. 그는 크리에이터 150명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사업에 활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영화를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지만 이것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으며, AI로 이만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헬 그라인드>는 칸 필름마켓에서 상영됐고 회사는 프롬프트와 에셋을 모두 공개했다. 흥행 상품이 아니라 잘 만든 데모이자 영업 자료이며, 그 용도를 회사가 먼저 밝힌 셈이다.
그러니 이 회사에 히트작이 없다고 따지는 것은 핵심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매주 내놓는다는 걸그룹과 보이그룹, 그리고 장편 한 편은 상품이 아니라 시연이다. 정작 따져야 할 것은 이 시연을 본 사람들이 무엇을 배워 가느냐다. 5천 원으로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영상에 관객이 돈을 낸다는 사실은 별개인데, 시연이 증명하는 것은 앞의 사실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화면의 정밀도가 아니다. 픽셀 단위로 구현된 배경은 거죽에 가깝다. 관객을 붙드는 것은 인물이 품은 고독과 모순된 욕망, 그리고 예측을 벗어나는 선택이 만들어내는 완결성이다. 발표에서 제시된 사례들은 기술의 목록이었을 뿐 사람에 대한 관찰은 아니었다.
역사도 비슷한 순서를 밟았다.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 회화의 종말이 예고됐지만 미술은 추상으로 자리를 옮겼고, CGI가 보편화된 뒤에도 관객은 실제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 더 높은 값을 매겼다. 도구가 바뀌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가 바뀔 뿐,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
AI가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서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기술은 해마다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지금의 어색한 질감 또한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완벽해진 후에도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인물은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하는가. 아직 그 어떤 AI 모델도 이 서사적 개연성이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있다.
김민성 사업총괄은 기업 환경에서 AI가 바꾸는 첫 번째가 협업이라고 했다. 어도비 프리미어나 클로드 MCP를 연결해 기획과 디자인, 영상 제작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고, 개인 계정에 흩어져 있던 결과물을 공용 자산으로 남긴다는 구상이다. 실무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그림이다. 파일을 주고받다 버전이 어긋나던 소모만 사라져도 조직은 한결 가벼워진다.
이 회사가 자체 생성 모델을 갖지 않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최고의 모델은 없고 목적마다 이기는 모델이 다르니 최적의 조합이 이긴다는 것이 그의 표현이었다. 모델을 만드는 대신 모델을 고르는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고, 매출 곡선을 보면 그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이것은 도구의 통합이지 판단의 통합은 아니다. 담당자 전원이 같은 에셋과 프리셋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 조직만의 관점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같은 프리셋을 쓰는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결과물은 서로 닮아간다. 소셜 미디어 피드에서 광고주 이름을 가리면 구분되지 않는 영상이 늘어나는 이유다.
효율화로 확보한 시간이 어디로 가는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현장에서 그 시간은 대개 디테일을 손보고 어색한 컷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되돌아온다. 총량이 줄었다기보다 촬영에 쓰이던 시간이 검수로 이동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기술 회사가 감추는 부분이라기보다, 도구를 파는 쪽이 굳이 먼저 말할 이유가 없는 부분이다.
제작 도구가 평등해진 시대는 기획자에게 결코 관대한 시대가 아니다. 예전에는 과도한 제작비와 좁은 배급망을 핑계 삼아 기획의 빈곤함을 숨길 수 있었다. 그러나 단돈 몇 천 원으로 누구나 영상을 만드는 지금, 그 핑계는 효력을 잃었다. 이제 남는 것은 명확하다. 무엇을 찍을지 결정하는 기획력과, 찍어낸 것 중 무엇을 버릴지 아는 안목뿐이다.
제작의 문턱을 낮춰 더 좋은 이야기가 승리하게 만들겠다는 미션으로 돌아가 보자. 앞의 절반은 기술이 이미 해결했다. 하지만 뒤의 절반은 그 어떤 AI 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제작 비용이 줄어든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붓과 물감이 저렴해졌다고 해서 거장이 늘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번 발표를 보고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AI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도구는 이미 우리 손에 있고, 제작의 장벽은 허물어졌다. 질문은 오직 이것이다. 기술적 허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당신에게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 단 한 줄의 서사가 있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