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길을 찾던 나와 가장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치우던 그
일과를 마치고 지하철의 피로를 가득 실은 채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느새 긴 열차는 도심의 소음을 뒤로하고, 사방이 누런 논밭으로 둘러싸인 채 지평선 위에 덩그러니 놓인 지하철역에 멈춰 섰다. 이 역이 왜 이토록 생뚱맞은 황무지 한가운데 박히게 되었는지 반추해 본다. 인근 두 지자체가 서로 제 집 앞마당에 역을 유치하려 혈안이 되어 싸우다, 결국 '정중앙'이라는 기계적 합의점에 도달한 결과다. 효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결정이, 도리어 인간의 유치하고도 고집스러운 속성을 그대로 닮아 있어 묘한 인간미마저 느껴지곤 한다.
역사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은 좁다란 논두렁을 가로질러야 한다. 지난여름 장마 때 배수로가 역류해 세워둔 차들의 바퀴 절반을 집어삼켰던 흙탕물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의 길은 그저 적막할 정도로 평화롭다. 좌측으로는 거대한 시멘트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고가차로가 위압감을 주고, 정면으로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들이 병풍처럼 서 있으며, 우측으로는 지평선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논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끔 코끝을 찌르는 진한 거름 냄새와 인적이 끊긴 스산함이 마치 범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안감을 자극하지만, 나는 꾸역꾸역 이 길을 걷는다. 불편함과 공포보다는 당장의 귀가 시간이 단축된다는 '효율'의 가치가 내게는 더 컸기 때문이다.
논두렁을 지나 아파트 단지 사이의 4차선 도로 앞에 섰을 때, 신호를 기다리는 내 곁으로 두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한 남성은 정장 차림에 연신 고개를 숙이며 "오늘 말씀 정말 감사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라며 깍듯하게 예우를 갖추고 있었다. 반면 상대방은 집 앞 분리수거장에서나 마주칠 법한 무릎 나온 면바지에 낡은 점퍼를 걸친, 아주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차림새였다. 그는 정중한 인사에 그저 "허허"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궁금했다. 저 남루한 행색 뒤에 어떤 거대한 권위가 숨겨져 있기에 저토록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일까. 하지만 내 눈길을 더 강렬하게 붙든 것은 그의 옷차림보다 오른손에 들린 길쭉한 알루미늄 집게였다. 산바카라길에 어울리지 않는 그 생경한 물건을 보며 나는 '호신용일까, 아니면 허리가 불편해 지팡이 대신 쓰는 것일까'라며 나만의 얄팍한 잣대로 그의 행동을 유추하려 애썼다.
그때 그의 왼손에 들린, 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눅눅해진 종이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시선만은 부지런히 보도블록 틈새와 화단 구석을 훑고 있었다. 횡단보도 옆 가로수 밑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발견하자, 그는 대화의 흐름을 단 한순간도 깨뜨리지 않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집게발을 뻗어 꽁초를 낚아채 종이컵에 담았다. 그의 손발은 마치 수만 번 반복된 수행을 마친 사람처럼 오차 없이 움직였고, 발을 내딛는 곳마다 흩어져 있던 세상의 얼룩들이 그 작은 종이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호가 바뀌고 그들은 길을 건넜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멀찍이 지켜보았다. 대화를 마친 뒤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더니, 종이컵을 비우고는 누가 어질러놓은 스티로폼 박스들까지 묵묵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음이 묘하게 복잡해졌다. 한눈에 봐도 단지를 관리하는 직원분은 아니었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괜히 모양새만 엉성해 보일 수 있는 일을 그는 왜 사서 고생하며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매일 이 길을 지나다녔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며 '왜 이렇게 지저분하지' 하고 눈살만 찌푸렸을 뿐,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치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당장 내일부터 집게를 들고 동네를 누비라고 한다면, 남들 눈치도 보이고 손에 때 묻는 것도 싫어 금세 도망쳤을 게 분명했다.
그의 손에 들린 집게는 단순한 쓰레기집게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이 매일 걷고 머무는 동네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다정한 애정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겠다고 지름길만 찾느라 주변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는데, 그는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동네의 더러운 곳을 말없이 닦아내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를 기꺼이 허리 굽히게 만드는 걸까. 정장 차림의 남성에게 깍듯한 인사를 받을 만큼 격식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길바닥의 담배꽁초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마음의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 걸까.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온갖 오물이 담긴 그의 눅눅한 종이컵과 아무것도 들지 않은 내 빈손이 자꾸 비교되어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빠른 길만 좇느라 정작 내 주변은 전혀 돌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마음이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행동하게 만드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