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지각한 내게 따뜻한 밥을 건넨 화장품 장인과의 기적 같은 첫 만남
내비게이션 화면 속 빨간 선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착 예정 시간은 이미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성산대교 안정성 평가 여파까지 겹친 서부간선도로는 거대한 콘크리트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차선 사이에 갇힌 채 내가 할 수 있는 건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는 것뿐이었다. 평소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누구보다 일찍 나섰음에도, 1분 1초씩 속절없이 지체되는 시간 앞에서 지독한 무력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연신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며 겨우 도달한 곳은 대지면적 1만 평이 넘는, 압도적인 규모의 지식산업센터였다. 이 거대하고 낯선 미로 속에 내가 찾던 곳이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간 사무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런 내게 인자한 인상의 백발 어르신 한 분이 허허 웃으며 소매를 흔들었다. "늘 막히는 길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따뜻한 음성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겨우 녹아내렸다. 첫 고비를 넘겼다 싶을 때, 안쪽 회의실 문이 열리며 이 미팅의 진짜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우면서도 깊은 눈빛을 지닌, 어딘가 서로 닮아 있는 남성과 여성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명함을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화장품 제조 협력사가 아니라, 한 가족이 수십 년간 땀으로 일구어낸 단단하고 거대한 성채라는 것을. 아버지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30년간 화장품 R&D만을 파고든 업계의 살아있는 장인이자 대표님이었고, 그의 곁을 지키는 이사님은 안정적인 제약사 근무 경력을 뒤로하고 합류한 든든한 큰딸이었다.
지인이 나를 '마케팅 전문가'로 거창하게 소개해 준 덕에, 기회를 얻은 나는 간만에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봄에 다녀온 코스모프로프 볼로냐(Cosmoprof Bologna)의 뜨거웠던 열기부터 최근 코스모뷰티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시장의 변화, 그리고 글로벌 바이어들과 치열하게 논의하며 수집한 파편 같은 인사이트들을 쏟아냈다. 수십 년의 업력을 가진 거인들 앞에서 어쩌면 번데기 주름 잡는 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외려 업계에 오래 머문 우리보다, 초심자의 날것 그대로인 시선이 시장의 본질을 꿰뚫을 때가 있다"며 내 거친 의견들을 진중한 눈빛으로 받아 안아주었다. 가소롭게 여길 법도 한데, 오히려 흥미롭게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에 고무되어 나는 지친 줄도 모르고 말을 이어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묘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 회사가 전개하는 자체 브랜드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은, 제조 기반의 투박하고 차가운 연구실 분위기와 도무지 겹치지 않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브랜드를 보고 당연히 성수동이나 강남 어디쯤에 별도의 브랜드 기획 팀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제조 기반의 가족 회사일 줄은 몰랐는데, 이 감각적인 디자인은 대체 어떻게 조율하신 건가요?” 내 집요한 질문에 이사님이 비로소 안심했다는 듯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영국에서 디자인 석사를 마친 제 동생이 브랜드 디렉팅을 도와주고 있어요.” 역시 위기의 순간에 가장 무서운 시너지를 내는 건 핏줄인 걸까. 내 마음속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어느덧 회의실 창밖은 짙은 감청색으로 어둑해져 있었다. 수많은 비팅을 다니며 명함만 나누고 헤어지기 바빴던 요즘이었지만, 대표님은 소개자의 체면을 봐서라도, 또 멀리서 온 사람에게 밥 한 끼는 꼭 먹여 보내야 한다며 내 소매를 붙잡으셨다. "퇴근 시간이라 길도 많이 막히는데,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서로 더 알아갑시다." 그 정겨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기름과 시간을 버리느니, 식사 자리를 빌려 이 단단한 어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한결 편안해진 식사 자리, 문득 호기심이 생겨 두 분께 연세를 여쭈었다. 두 어르신은 한참 손가락을 꼽아보시더니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우리가 소띠요." 내일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평소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잊고 사시는 게 분명한 그 연세에도 현업에서 청춘처럼 아이디어를 내고 일하는 모습이 경이롭고도 부러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리를 주선해 준 내 가족의 지인과 대표님이 무려 6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낸 고등학교 친구라는 점이었다. 노년에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는 고향 친구가 있고, 일터에서 자식들과 함께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삶. 유년 시절을 미국에서 함께 보낸 친구들과 언젠가 멋진 비즈니스를 같이 일구고 싶다던 나의 막연한 꿈이, 바로 눈앞에서 완벽한 형태로 실현되어 있었다.
그 오랜 세월이 준 삶의 깊이 때문이었을까. 이어진 그들의 경영 철학은 장사꾼의 계산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새로 시작하는 초보 사업가들이 종종 의욕에 넘쳐 처음부터 대량 생산을 요청해 와요. 그러면 우리는 돈을 더 벌 생각보다 오히려 그들을 진정시키고 수량을 줄이라고 권합니다. 혹시라도 재고가 쌓여 일이 잘 안 풀리면, 그 젊은 의뢰인이 곤란해지니까요." 타사보다 MOQ(최소 주문 수량)를 유연하게 가져가며 리스크를 나누는 배려가 거기에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정성껏 인큐베이팅한 브랜드가 규모가 커지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품보다 더 큰 대형 제조사를 소개해 주며 기꺼이 보내준다고 했다. 그래야 그 브랜드도 살고, 자신들도 새로운 새싹 브랜드를 맞이할 수 있어 생태계 전체에 이롭다는 것이었다. 업계의 흥망성쇠를 수십 년간 온몸으로 겪어낸 거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초연함이자 상생의 철학이었다.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이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들과 어떻게든 함께 엮이고 싶다는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차올랐다. 술 한잔하겠냐는 권유를 차 때문에 거절하며 아쉬움이 교차하던 그 타이밍에, 나는 무르익은 분위기를 타 이사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이사님, 자사 브랜드의 해외 유통과 글로벌 마케팅을 제가 직접 맡아보고 싶습니다. 현재 해외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는 빌드업을 하고 있지만, 제 궁극적인 방향성은 우리나라의 숨은 진주 같은 좋은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유통하는 것입니다."
이사님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 눈동자에 꽂혔다. "본인도 지금 준비 중인 브랜드가 있어서 두 가지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텐데요?" 정곡을 찌르는 묵직한 의문이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고 차분하게 내 논리를 풀어나갔다.
"병행이 어려울 거라 보시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유통의 메커니즘은 다릅니다. 두 브랜드는 카테고리와 타깃이 완전히 달라 상호 간섭이 전혀 없고, 오히려 해외 리테일러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넓어집니다. 제가 기획하는 브랜드든 이사님의 브랜드든, 제 최종 목표는 한국의 좋은 제품을 적절한 타이밍에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이 브랜드의 소유자만큼 브랜드를 이해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되는 일입니다."
진심이 허공을 가르고 상대의 마음에 닿았을까. 이사님은 찻잔을 만지며 잠시 깊은 침묵을 지키더니, 이내 묵직한 답변을 건넸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제조 의뢰가 폭주하면서, 정작 우리 브랜드를 돌볼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던 게 사실이에요. 마침 한 달 뒤에 자사 브랜드 리브랜딩 작업이 최종 마무리되는데, 그때 제안서를 가지고 진지하게 다시 얘기해 보시죠."
단순한 거절이 아닌, 문이 열리는 명확한 기회의 소리였다. 첫 만남에 30분이나 지각하고도 따뜻한 저녁을 얻어먹었고, 겁도 없이 그 자리에서 협업을 제안해 기회를 얻어냈다. 이 단단하고 따뜻한 어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내 비즈니스 여정에도 이토록 믿을 수 있는 거대한 파트너가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밤의 서부간선도로는 한산했다. 나에겐 뒤가 없다. 오직 전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