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3월 4일, 충청도 서천
"동래부에서 온 왜학통사 안동준이오. 이곳에 억류했다는 왜인 표류민의 거처로 당장 안내하시오."
서천 포구 관아의 당직 탁자 위로 관용 한지 첩이 내려앉았다. 호서 서해안을 따라 나흘 밤낮을 쉬지 않고 말을 몰아 내려온 길이었다. 도포 자락을 걷어붙인 채 들이닥친 동준의 기세에, 창대를 짚고 졸던 포졸들이 질려 길을 텄다.
아전이 열쇠 꾸러미를 챙겨 드는 사이, 동준은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별채 행랑 문지방을 넘었다. 뒤따르는 만석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마른 쇳소리와 함께 낡은 장지문이 열렸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짚풀이 깔린 차가운 흙바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그림자 하나가 놀라며 몸을 사렸다. 해풍에 찢겨 누더기가 된 옷자락, 소금기 어린 모래범벅이 된 머리채.
인기척에 질려 떨며 고개를 든 여인의 파리한 뺨이 어둠 속에서 드러난 순간, 동준의 숨이 일순간 턱 끝까지 멎었다.
‘……치즈루?’
초췌하게 마른 턱선, 파리하게 질린 뺨. 그 흐릿한 윤곽 위로 지난가을 운문사 산길을 함께 걷던 여인의 모습이 겹쳐 들었다. 동준의 심장이 내려앉으며 소맷자락을 쥔 손끝이 떨렸다.
그러나 여인이 공포에 질려 두 손을 모아 빌며 뱉어낸 왜어는, 치즈루의 단정하고 맑은 교토·아이즈 억양이 아니었다. 거칠고 투박한 규슈 북단 어촌의 사투리였다.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깨져 떠밀려왔을 뿐입니다……."
동준은 숨을 길게 토해냈다.
치즈루가 아니었다. 험한 서해 바다의 풍랑에 휩쓸려 뭍으로 올라온, 열일곱이나 되었을까 싶은 가련한 어촌 처녀였다.
긴장이 빠져나간 어깨 위로 밤바람의 한기가 뒤늦게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아직 이 거친 들판 어딘가에 홀로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동준은 차가운 흙바닥으로 내려앉아 여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온기가 담긴 정갈한 왜어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두려워 마시오. 나는 사역원의 통사(通詞)요. 귀하가 무고한 조난민임을 관아에 밝히고, 동래 왜관으로 안전하게 호송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터이니 안심하시오."
여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흙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동준은 서안(書案)도 없는 차가운 봉당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휴대용 지통에서 백지 한 장을 펼쳤다. 만석이 품에서 꺼내 건넨 먹물을 묻힌 필통을 받아 든 동준은 차분하게 붓을 놀렸다. 여인의 고향은 규슈 지쿠젠(筑前)의 어촌이라 했다. 부친과 함께 조업을 나갔다가 돌풍을 만나 돛대가 꺾였고, 부친은 물에 빠져 실종된 후, 엿새를 표류하다 이 서천 갯가로 밀려왔다는 진술이었다.
성명, 연령, 거주지, 배에 실려 있던 어구와 가재도구의 품목, 그리고 조난 당시의 풍향까지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사역원의 규례에 따른 표준 문정기(問情記)였다.
먹물이 닥종이에 잦아드는 동안 봉당 밖 댓돌 위로 인기척이 웅성거렸다.
"통사 나으리, 대충 적고 나오시지요. 꼴을 보아하니 비렁뱅이 왜년 하나일 뿐인데, 경차관(京差官) 행차라도 맞은 듯 이리 법석을 떱니까."
비인현에서 겸임으로 나와 있던 서천포 주진의 공사원(公事員) 아전이 탕건을 비스듬히 고쳐 매며 문간을 기웃거렸다. 손에는 장죽을 든 채였다.
동준은 붓끝을 멈추지 않은 채 마지막 획을 긋고 종이를 가볍게 털어 말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서늘한 눈길이 아전의 미간에 멎었다.
"이보시오. 이자는 단순한 유랑 걸인이 아니오. 『대전통편(大典通編)』 예전(禮典)의 표류민 조목과 우리 조일 간의 수교(受敎)에 따라, 국가가 구휼과 쇄환을 바카라임져야 하는 정식 표류민이오."
"아, 글쎄 나으리. 호서 연해 고을마다 흉년이 들어 군향미(軍餉米)도 바닥이 났습니다. 이런 떠돌이 오랑캐 하나에 쌀을 대주고 호송 마필을 내어줄 관아 여력이 어디 있답니까. 며칠 가둬두다 제풀에 뒈지면 가마니에 말아 개펄에 묻는 게 이곳 전례였습니다요."
"……전례라 하였소?"
동준의 목소리가 찌를 듯 낮게 가라앉았다. 품속에서 꺼낸 동래부사의 관인 첩을 아전의 가슴팍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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