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의 차가운 만조가 밀려들며 바닷물이 발목을 적셨다.
이나가키 시노루의 허리춤에서 장도와 단도가 동시에 빠져나왔다.
"미토의 잡종이…… 제법 흉내는 내는구나."
시노루가 진흙을 박차며 파고들었다. 목덜미를 가르는 장도와 가슴을 노린 단도. 물러설 틈 없는 연격(連擊).
쇠와 쇠가 맞물리며 불꽃이 튀었다. 수직으로 솟구친 겐지로의 칼날이 장도를 튕겨냈다. 손목을 타고 오른 충격에 찢긴 허벅지 근육이 잘게 떨렸다. 겐지로는 물러서는 대신 반 보 앞으로 짓쳐 들어 단도의 궤적을 코등이로 찍어 눌렀다.
두 사내의 얼굴이 맞닿을 듯 좁혀졌다.
시노루가 온몸의 하중으로 코등이를 짓이겼다. 과다출혈로 힘이 빠진 겐지로의 오른쪽 무릎이 바닷물 속으로 꺾였다. 그 찰나, 시노루의 이마가 겐지로의 미간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파열음. 콧잔등이 주저앉으며 터져 나온 피가 겐지로의 눈자위를 덮었다. 중심이 무너진 틈을 타 시노루의 장도가 허공을 휘감으며 겐지로의 어깨선을 갈랐다. 가죽 옷감이 찢기며 터져 나간 살점.
겐지로의 어금니 사이로 마른 숨이 샜다.
시노루는 틈을 주지 않고 난격으로 몰아붙였다. 위에서 찍어 누르는 장도와 뻘흙을 긁어 파고드는 단도. 겐지로는 진흙에 박힌 두 발로 버티며 칼등과 칼날로 받아냈다. 엉키는 칼날마다 울리는 뼈마디. 상처에서 배어 나온 핏물이 차오르는 바닷물에 짙게 풀려나갔다.
시야가 하얗게 꺼져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단 한 합.
시노루의 장도가 겐지로의 칼을 쳐내며 빈틈을 만들었다. 겐지로의 칼끝이 허공으로 빗겨나간 찰나.
"끝이다."
시노루의 왼손 단도가 겐지로의 빈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살점을 헤집고 들어오는 둔탁한 감촉.
허나 시노루가 단도를 비틀어 빼내려는 바로 그 순간, 겐지로가 상체를 틀며 팔과 갈비뼈 근육으로 칼날을 제 몸 안에 으스러지도록 가두어 죄었다.
단도가 뽑히지 않았다.
시노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내가 단도를 버리고 뒤로 물러서려던 찰나, 아래로 떨궈두었던 칼끝이 비스듬히 치고 올라왔다. 찰나의 반 박자. 솟구쳐 오른 서늘한 칼날이 시노루의 가슴팍을 대각선으로 갈랐다.
터져 나간 옷감 사이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시노루는 가슴을 쥐어틀며 비틀거렸다. 제 몸에 박힌 칼을 뽑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은 겐지로 역시 차오르는 갯물 위로 허물어졌다.
피를 토하며 이를 가는 시노루. 갈대숲 뒤편에서 낭인 둘이 짓쳐 나왔다. 셋의 칼날이 일제히 쓰러진 겐지로의 숨통을 겨누었다.
바로 이때, 땅바닥이 울렸다.
뻘을 짓이기며 갈대밭을 찢고 거대한 군마들이 튀어나왔다.
"동래부 별군관이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진흙을 뒤집어쓴 박무혁이 삼십여 필의 기마대를 이끌고 갯바위 앞을 덮쳤다.
겐지로의 턱밑까지 말을 몰아붙인 무혁이 안장을 박차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두 손에 쥐인 거대한 쌍수도가 묵직한 호를 그리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부상당한 시노루가 본능적으로 장도를 들어 올렸으나, 전신의 체중과 낙하 속도를 실어 찍어 누르는 조선 관군의 쌍수도를 견뎌낼 수 없었다.
금속음과 함께 검신이 두 동강으로 부러져 튀어 나갔다. 궤도를 멈추지 않은 무혁의 묵직한 칼날이 시노루의 상체를 그대로 짓눌러 베어 내렸다.
아이즈의 살수라 불리던 사내의 몸뚱이가 맥없이 진창 바닥으로 쓰러졌다.
뒤이어 들이닥친 군관들의 환도가 어둠을 갈랐다. 무기의 마찰과 진흙을 구르는 둔탁한 소리가 서너 차례 이어지더니, 갯바위를 메우던 거친 기척들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서늘한 침묵이 갯바위를 덮쳤다.
"사토 상……!"
바위틈 그늘에서 뛰어나온 치즈루가 피에 젖은 무명 장옷 자락을 끌며 겐지로의 곁으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을 짓눌렀으나, 손가락 틈새로 검붉은 피가 쉬지 않고 배어 나왔다.
"제가 도대체 뭐라고…… 저를……."
가쁜 숨을 뱉어내던 겐지로가 천천히 눈을 떴다. 피거품이 맺힌 입술 사이로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켜내고 싶었소…… 내가 알던…… 망가지기 전의 세상을……."
눈앞의 등불 하나를 꺼뜨리지 않고 싶었다. 평생 남의 명령으로만 휘두르던 비루한 칼을 부수고 마침내 제 의지로 쥔 칼이었으니, 이것으로 족했다.
겐지로의 동공이 서서히 풀려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