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저울 위의 환상

by밤톨


"약소국이 강대국을 향해 감히 재판소로 가라고 훈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숨은 덫과 약소국의 공포

‘의무 중재’ 조항을 포기한다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겨우 타결의 실마리가 잡혀가던 무렵, 회의장에는 마지막 파도가 밀려왔다. 이번에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숨을 쉬던 소국들의 생존 본능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불씨를 지핀 것은 프랑스 대표 데스투르넬 남작이 내놓은 조약 제27조였다. 국가 간에 심각한 분쟁이 터질 조짐이 보이면, "상설중재재판소의 문이 열려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주변 국가들의 의무라는 조항이었다.


조약에 서명한 국가들은 분쟁 당사국들에게 상설중재재판소가 열려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한다.
...the Signatory Powers consider it their duty... to remind these latter that the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is open to them.


강대국 평화주의자들의 눈에 이 문장은 분쟁을 겪는 이웃에게 재판을 권유하는, 아름답고 도덕적인 연대의 손길처럼 보였다. 하지만 발칸반도의 신생 독립국들에게 이 '의무(duty)'라는 단어는 서늘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군사력과 외교력 모두에서 절대적 약자인 이들에게, 강대국이 평화를 구실로 분쟁에 끼어들어 재판정 앞에 서라고 '권유'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약소국들은 이 '의무'가 머지않아 합법적인 내정 간섭의 칼이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루마니아 대표 벨디만은 이 조항이 강대국에 합법적인 간섭의 칼자루를 쥐여주는 꼴이라며 격렬히 맞섰다. 세르비아 대표 역시 제3국의 조언은 순수한 우정에 기반할 때만 의미가 있다며, "어떤 형태로든 우리 주권을 침해하는 간섭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특히 거꾸로 힘없는 루마니아가 영국이나 독일을 향해 "약속대로 재판소에 가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장면은 당시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약소국들의 저항은 강대국들 눈에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었다. 회의장 대부분의 대표단들에게 룰을 정하는 당사자는 서유럽과 러시아, 미국 정도라는 암묵적인 고정관념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프랑스는 제27조를 단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고 버텼고, 발칸 국가들은 이 조항이 남는다면 조약 자체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미국 대표 앤드루 화이트 대사는 일기에 강대국과 약소국들간의 신경전을 이렇게 적었다.


지난 며칠 동안, 저 저주스러운 제27조라는 암초에 부딪혀 프로젝트 전체가 난파될 것만 같았다.


Precept_and_Practice_-_JM_Staniforth.png영국의 이중성을 그린 만평. (좌) 좋소, 좋아! 평화가 위대한 축복이라는 데 완전히 동의하오! (우) 사소한 핑계 하나만 더 대봐라, 당장 네놈 머리통을 날려버릴 테니!



# 인류 공동의 의무

파국 직전의 순간, 제3위원회를 이끌던 프랑스의 레옹 부르주아가 다시 의장석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간 법리 논쟁을 숭고한 인류애와 철학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 탁월했던 그가, 이번에도 본인의 장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제27조의 '의무'가 결코 힘센 나라의 횡포를 감싸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그는 흔들리는 대표들을 바라보며 역설했다.

여러분이 말하는 이 '의무'는 국가들이 마침내 인류 평화를 유지할 '공동의 바카라임'을 함께 짊어지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역사적 징표입니다.


이어 그는 상설재판소야말로 힘없는 나라들이 스스로를 지킬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라 설득해 나갔다. 물리적 힘이 전부인 전쟁터에서는 강자와 약자의 격차가 잔인할 만큼 뚜렷하지만, 법과 권리의 세계에서는 그 불균형이 힘을 잃는다는 논리였다.

야만적인 힘이 부딪치는 곳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손쉽게 짓밟습니다. 그러나 권리와 정의의 저울 위에서는 그 불균형이 사라집니다. 가장 작고 약한 나라의 권리도, 가장 거대한 제국의 권리와 똑같은 무게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 수사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낙관에 가까웠지만, 동시에 약소국들이 가슴속 깊이 갈망하던 희망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만약 법과 제도가 강대국의 탐욕을 방어해 낼 수 만 있다면 그들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의장의 변하는 분위기를 파악한 부르주아는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무력과 국가의 이기심이 지배하던 시대를 끝내고, 인류가 법과 제도의 시대로 도약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힘의 강약과 관계없이 모든 대표들은 앞장서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최고의 웅변가다운 이 뜨거운 연설은 약소국 외교관들의 의구심과 불안을 상당히 희석시켰다. 연설이 끝나자 장내에는 폭풍 같은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발칸의 대표들은 내놓았던 반대 안건을 조용히 거두어들였다.


정치인의 언어가 예술의 경지에 닿은 순간이었을까. '법과 제도', '인류의 양심' 같은 수사들은 확실히 모든 이들이 마음속으로 옳다고 바라 마지않던 가치였다는 방증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날 모두가 간절히 믿고 싶었던 '우아한 환상'에 불과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눈앞의 진실을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알면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1899년의 여름, 헤이그 평화회의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image.png마법사이자 마술사로 묘사된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전쟁의 환영을 퇴치하고, 중재의 정령들을 불러내고 있다는 정치 만평




커버이미지: By PetrusSilesius, CC BY-SA 3.0 헤이그 평화의 궁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