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위원회
# 제1위원회: 군비축소의 허상
회의의 심장부는 하위스 덴 보스(Huis ten Bosch) 궁전의 정중앙에 위치한 거대하고 화려한 대연회장, 오라녜잘(Oranjezaal)이었다. '군비 축소'라는 가장 무겁고 예민한 의제를 다루는 제1위원회가 이 상징적인 공간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러시아의 젊은 황제가 전 세계에 평화의 칙서를 던지며 의도했던 본래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1위원회 위원장인 벨기에의 노련한 정치가 오귀스트 베르나르트(Auguste Beernaert)는 회의의 시작을 알리며 벅찬 어조로 선언했다.
"이번 회의에서 우리 제1위원회야말로 가장 신성한 바카라무를 맡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의 장엄한 선언이 울려 퍼지는 회의장의 풍경은 지독한 역설 그 자체였다. 평화와 군축을 논의하는 둥근 탁자를 둘러싸고 앉은 이들의 대다수는, 각국 정부가 파견한 뼛속 깊은 직업 군인들과 해군 전략가들이었다. 평생 조국의 무력을 벼려온 이들에게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족쇄를 차라는 요구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라는 말과 같았다. 회의장 밖 이상주의자들의 장밋빛 꿈은, 숲 속 궁전의 굳게 닫힌 밀실 안에서 '국가 이성'이라는 차가운 현실의 벽과 충돌할 운명이었다.
논의의 포문은 제안국인 러시아가 열었다. 러시아 육군 대표 질린스키(Gilinsky) 대령은 5년간 병력 수를 동결하는 국제 협정을, 해군 대표 셰인(Scheine) 대령은 3년간 해군 예산 규모를 동결하는 원칙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평화를 향한 열정도 신념도 없었다. 회의장에 앉은 외교관과 군사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의 제안은 인류애의 발로가 아니었다. 바닥난 국고,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신형 야포 도입에 겁을 먹은 러시아 수뇌부의 얄팍한 재정적 꼼수임을 이미 모두가 간파하고 있었다. 오직 태국, 페르시아, 불가리아 같은 몇몇 약소국만이 순진하게 손뼉을 치며 찬성했을 뿐, 강대국들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했다.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독일 제국의 육군 대표, 그로스 폰 슈바르츠호프(Gross von Schwarzhoff) 대령이었다. 그는 정중하면서도 오만함이 뚝뚝 묻어나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자국의 군비증강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고 기꺼이 인정할 사람이 여기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그가 품은 독일 제국에 대한 자부심은 맹렬했다. 신흥 공업 강국으로 떠오르며 넘쳐나는 부를 과시하던 독일에게 군비는 국가를 갉아먹는 짐이 아니었다. 그는 독일의 국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차가운 진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누가 주장한대로, 우리 독일 국민은 세금의 무게에 짓눌려 있지 않습니다. 모든 독일 국민들은 군비증강을 무거운 짐이 아닌 신성한 애국적 의무로 여깁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각국의 지리적 조건, 교육 수준, 철도망의 상태가 모두 다른데 단순히 병력의 머릿수만으로 군사력을 제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지몽매하다며 일축했다. 빠르게 산업화되던 독일의 인프라 수준은 이미 주변국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슈바르츠호프의 냉혹한 논리는 회의장을 단숨에 얼려버렸다.
회의장 밖에서 이 참담한 패배를 지켜보던 영국 언론인 윌리엄 T. 스테드(William T. Stead)는 탄식하며 기록을 남겼다. '슈바르츠호프 대령의 연설은 냉혹한 현실을 드러냈다. 그 직설적인 화법은 카이저(독일 황제 빌힐름 2세)가 회의 직전 전 세계를 향해 남발했던 위선적인 평화 연설의 이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고, 러시아 제안서의 근본적인 토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사실 독일 황제 역시 속으로는 군축을 '사기극'이라 비웃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화려한 립서비스를 늘어놓던 중이었다. 특히 회의 직전인 1898년 가을, 황제는 오스만 제국과 중동 지역을 대대적으로 순방하며 기독교 성지 순례를 청하고 동방과의 우호와 평화를 소리 높여 외쳐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성지 순례 뒤에는 바그다드 철도 부설권을 따내어 독일의 세력을 확장하고, 오스만 제국에 독일제 신형 무기를 수출하려는 군사·경제적 야욕이 숨어있었다.
# 마한 대령
유럽의 구체제 국가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동안, 대서양 너머에서 온 신흥 제국주의 국가 미국의 대표단 역시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갓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해외 식민지를 차지한 미국에 현재의 상황은 무기를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팽창시켜야 할 시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대표들은 자국의 국익 앞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 육군 대표 윌리엄 크로지어(William R. Crozier) 대위의 논리는 아전인수의 전형이었다. 신형 화기와 폭약 개발을 금지하자는 제안에 대해, 그는 "새로운 방어 수단을 고안해 내려는 우리 국민의 발명적 천재성을 조약으로 억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한술 더 떠 그는 무기가 파괴적으로 진화할수록 역설적으로 평화가 길어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들먹였다.
"전쟁을 덜 파괴적으로 만든다고 해서 전쟁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파괴력이 증가할수록 평화가 더 길어졌다는 것이 명백한 역사적 교훈 아닙니까?" 파괴력이 극대화되어야 전쟁이 짧아지고 희생이 줄어든다는 지극히 군인다운 발상이었다.
새로운 기술을 향한 거부감은 해군 무기 논의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잠수 어뢰정 사용을 금지하자는 러시아의 제안이 나오자, 약소국들은 반발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강대국의 거대 함대를 방어할 수 있는 이 매력적인 무기를 포기할 리 없었다. 미 해군의 전설적인 전략가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 대령 역시 미국은 잠수함을 사용할 완전한 자유를 원한다고 선언하며 논의를 무산시켰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충각(배 앞머리의 뿔)을 장착한 전함을 금지하자는 논의조차 각국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금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뢰 사용금지는 참가국들에게 너무 큰 양보였다.
가장 기괴한 장면은 '질식 가스(독가스)' 탑재 포탄의 사용 금지 안을 두고 벌어졌다. 아직 전장에서 제대로 쓰인 적도 없는 이 신무기의 싹을 미리 자르자는 데 대다수 국가가 동의했으나, 마한 대령은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질식 가스는 인체를 찢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포탄보다 오히려 더 인도적일 수 있다"는 궤변을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스의 잔혹성이 아니었다. 장차 전장에서 결정적인 무기가 될지도 모르는 신기술을 국제 조약으로 묶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오직 조국의 이익뿐이었다.
결국 미국은 이 독가스 금지 조항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되었다. 마한은 한술 더 떠 "미국의 육군과 해군 군비는 현재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어서, 애초에 군축 논의나 타협의 대상조차 될 수 없다"라며 유럽 주도의 판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
# 최소한의 합의
결국 제1위원회는 완전히 좌초했다. 평화를 발명하러 모인 자들이 역설적으로 최신 무기의 필요성만을 완벽하게 증명해 낸 꼴이었다. 아무런 결과물 없이 위원회가 해산된다면, 헤이그에 모여든 전 세계 언론과 대중은 이 회의를 거대한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맹비난을 퍼부을 것이 뻔했다.
이 참담한 파국을 막아선 이는 프랑스의 수석 대표 레옹 부르주아(Léon Bourgeois)였다. 그는 군사적 합의가 불가능해진 잿더미 위에서, 특유의 수사학적 마술을 부려 도덕적 명분만을 간신히 구출해 냈다. 그는 “군비에 쏟아붓고 있는 막대한 자원을 평화롭고 생산적인 활동에 돌릴 수만 있다면, 각국의 번영은 훨씬 더 빨라질 것"이라며 호소했다. 그리고 모호한 타협안으로 회의장의 차가운 공기를 녹여냈다.
"우리에게 문명의 목적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생존 투쟁을 점진적으로 종식하고, 그 대신 물질의 냉혹한 힘에 맞서기 위해 인간 사이의 조화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Le but de la civilisation nous paraît être d'abolir de plus en plus la lutte pour la vie entre les hommes, et d'y substituer l'accord entre eux pour la lutte contre les forces implacables de la matière.
각국 대표단의 부드러워진 공기를 읽은 그는 구속력은 전혀 없지만 대중의 분노를 달래줄 ("greatly to be desired...") 우아한 최종 의사록 결의안을 상정했다.
"위원회는 현재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군사비 부담을 제한하는 것이 인류의 물질적, 도덕적 복지를 위해 강력히 요망된다고 간주한다."
The committee considers that a limitation of the military charges which now weigh upon the world is greatly to be desired in the interests of the material and moral welfare of humanity.
알맹이 없는 결의안은 안도감 속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강대국들은 단 한 정의 대포도 줄이지 않고, 단 한 명의 병사도 해산하지 않은 채, 그저 '평화를 강력히 요망한다'는 문장 하나로 세계의 눈을 속이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평화는 무기를 버리겠다는 막연한 선서만으로 도래하지 않았다. 훗날 부르주아 스스로가 통찰했듯, "군비 축소는 결과물이지 준비 단계에 행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국가에게 있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법적 울타리와 신뢰가 세워지기 전까지, 무장해제는 불가능한 환상에 불과했다.
제1위원회의 실패는 국가 간의 약육강식과 불신이라는 뿌리 깊은 병폐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결국 총구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팽팽하게 장전된 무기를 '어떻게 덜 야만적으로 사용할 것인가'라는 기계적인 살육의 규칙을 정하는 일뿐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타협이었다.
사진: Unsplash의 Taton Moïse
사진: By Victor Gilbert - Private collection.Les bals au XIXème siècle, sur le site : Wordpress.Vintage dance, on the website : Moments in time dance., Public Domain
사진: Édouard Brissy.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Source: Médiathèque de l’architecture et du patrimo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