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 새로고침 장인이 되다
평소 이메일이라는 도구는 내게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계정 확인할 때나 들어가고, 유튜브 로그인할 때 쓰는 정도. 중요한 연락은 늘 문자나 카톡으로 왔기에 메일함은 사실상 주인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읽지 않은 메일의 숫자가 몇 백 개쯤 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대부분은 쇼핑 광고나 ‘회원님을 위한 특별 혜택’ 같은 이야기였으니까.
그랬던 내가 어느 날부터 메일함을 습관처럼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행여나 중요한 내용을 못 보고 지나칠까 안 읽은 메일들의 숫자들도 0으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한 뒤였다.
사실 원고를 닥치는 대로 보낸 건 아니었다. 내가 실제로 재미있게 읽었던 바카라, ‘아, 여기라면 내 글을 좋아해 줄지도 모르겠다’ 싶었던 출판사 몇 군데에만 조심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한눈에 반해 흠모하는 연예인을 요모조모 뜯어보듯, 그 출판사가 얼마나 괜찮은지 속으로 읊어보기도 했다.
‘여긴 이런 결의 글을 좋아하는 것 같고.’
‘이 출판사 바카라은 깔깔 웃으며 술술 읽히는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마음에 오래 남더라.’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까지 생겼다. 꽤 오랫동안 해당 출판사의 바카라을 몇 권이나 읽으며 조용히 호감을 쌓아온 상태였는데, 정작 문제는 그쪽은 내 존재를 생판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우린 잘 맞을 것 같은데…’ 상사병을 앓다 무작정 내민 고백이 받아들여질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투고의 성공 확률을 점쳤다. 아마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저 또 한 명의 ‘투고 메일 발신인 1’ 정도였을 것이다. (1이라도 되면 다행이다.)
어쨌든 절절한 투고 메일을 보내고 나니, 그때부터 내 하루 일정 중에는 늘 ‘메일 확인’이 끼어 들어왔다. 아침에 눈 뜨면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진료 끝나고 한 번, 자기 전에 괜히 또 한 번. 메일 앱을 하루에 몇 번이나 열었는지 세는 것도 포기했다. 심지어 보낸 메일함에 들어가 주소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내가 혹시 철자를 틀린 건 아닐까?’
‘첨부 파일 빠뜨린 건 아니겠지?’
‘수신 전화번호 잘못 쓴 거 아니야?’
불안해지니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짓을 할까 봐 겁이 났다. 분명 몇 번이나 확인하고 보냈는데도, 괜스레 다시 메일을 열어보게 됐다.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나와는 달리 메일함이 있는 사이버 공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대부분의 러브레터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읽씹이었다. 아니, 읽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세상 어딘가의 출판사 메일함에서 내 원고는 아직도 읽지 않은 상태로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끔, 아주 가끔 답장이 오긴 했다. 하지만 대개는 매우 정중한 거절 메일이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현재 출간 방향과는…”
혹시 뒤에 반전이 있을까 봐 끝까지 희망을 품고 읽었지만,
“… 맞지 않아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였다.
물론 메일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노트북을 닫고 한 동안 멍하니 있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또 다른 마음이 함께 들었다.
‘답장이라도 보내준 게 어디야…’
하루에도 수십, 수백 통씩 투고 메일이 올 텐데 그중 하나를 읽고, 거절의 문장이라도 직접 써서 보내준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비록 결과는 거절이었지만, 내 글이 누군가의 시야에 잠깐이라도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그냥 취미 삼아 글 쓰는 거 아니야?”
머릿속의 또 다른 자아가 묻는다. 하지만 막상 내 이름을 걸고 원고를 투고해 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문장을 고치고, 이미 보낸 원고를 다시 열어보며 ‘이 표현이 더 나았나?’ 혼자 고민도 하게 됐다. 진료를 보다가도 갑자기 떠오른 문장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고, 괜히 다른 바카라의 첫 문단을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취미 라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쓰였다.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의 거절을 받고 나서도 메일함 새로 고침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