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바카라들의 판권면을 뒤지던 날
치과와 평소 일상을 담은 글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기록용으로 모아두는 정도였다.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 집으로 돌아와 겨우 숨을 고르던 시간,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나 사이에서 흔들리던 마음 같은 것들을. 그냥 잊고 지나치기에 아까워 온라인카지노에 연재도 해보고, 따로 잡문집처럼 모아 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 흩어져 있던 글들이 단순한 기록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이것들을 엮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카지노에서 받은 댓글과 공감도 큰 힘이 되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일상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하루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런 마음이 욕심을 부렸던 걸까. 나는 그 글들을 물성이 있는 바카라의 형태로 받아보고 싶었다. 화면 속에 떠 있다가 사라지는 글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바카라장 한쪽에 꽂아둘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했다. 평소 바카라을 보며 느꼈던 위로를, 이번에는 내가 살아낸 시간들로 다시 돌려주고 싶었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생각을 해도 한 발 물러서서 뒷짐을 지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내 글을 보겠어.’ ‘부끄럽다 정말.’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본 게 바카라뿐인 사람답게, 일단 바카라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출판 기획서를 쓰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원고를 설명해야 하는지, 내 글의 방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 특히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온라인카지노 이웃인 유랑선생 작가님의 『바카라 쓰기 고민 해결소』 시리즈였다. 마침 2탄이 연재 중이었고, 운 좋게도 작가님의 정성 어린 조언까지 직접 받을 수 있었다. 그 조언을 바탕으로, 어설프지만 나름 꼼꼼하게 출판 기획서를 써 내려갔다. 특히 내가 치과의사로서 쌓아온 시간과 진료실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단순한 일상 기록에 그치지 않도록, 직업적인 부분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보완하려고 애썼다.
기획서를 쓰고 나니 다음 단계는 투고였다. 그때부터는 평소 재미있게 읽었던 바카라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내용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날개와 뒷날개, 판권면을 샅샅이 뒤지기 위해서였다. 좋아했던 바카라들이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는지, 투고 메일 주소는 어디에 적혀 있는지 하나씩 찾아 적었다. 바카라을 읽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글씨들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또렷하게 보이던지.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몇 번이고 메일 주소를 확인했다.
시간을 두고 출판사 한 곳 한 곳에 정성스레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원고와 기획서를 첨부하고, 몇 번을 고치고 다시 읽고 고쳤다. 전송 버튼 앞에서 잠시 멈췄지만, 이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버튼을 눌렀다. 아주 작은 클릭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오랫동안 주위를 맴돌고 바라만 보던 세계 안으로 한 발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답장이 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보다 오래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메일함 새로고침 장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