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섞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온다.
상대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의 사실이나 진짜 맥락은 가만히 둔 채,
내 안에서 이미 하고 싶은 마음이나 감정이 앞서 그 말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그러다 보면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보고 무슨 말을 했는지 그 ‘팩트’를 통째로 건너뛴다.
종종 그렇다.
상대의 말이 내 귀에 닿기도 전에,
이미 내 머릿속에는 내가 쏟아내고 싶은 생각과 감정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건넨 문장의 진짜 결이나 상황은 다 지워버린 채,
오직 내 마음을 증명하기 위한 방패나 무기로 그 말을 아무렇게나 가져다 써버린다.
상대의 언어로 건네진 진심은 보지 못하고,
오직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메아리만 방 안을 채우는 셈이다.
대화란 결국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내 감정과 욕심이 앞서는 순간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대사를 읊는 독백에 불과해진다.
상대가 무엇을 말했는지,
그 말의 맥락에 진짜 귀 기울이는 일. 내 마음을 뱉어내기 전에,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당연하지만 어려운 태도를 문득 돌아보게 되는 밤이다.
감정에 눈이 멀어 사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말을 뱉기 전, 잠시 멈춰 서서 물어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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