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잘 쉬었는데도 몸이 무거웠던 일요일 밤이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켜보니 알림이 난리가 나 있었다.
“엄마! 긴급!!”
딸의 떨리는 목소리로 들은 이야기는 황당했다.
인스타그램 디엠(DM)으로 온 이벤트,
5만 원을 입금하면 뽑기를 통해 두 배로 불려주고, 져도 원금은 보존해 준다는 솔깃한 제안.
평소 똑 부러지던 아이가 왜 그런 유혹에 넘어갔을까 싶었지만,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짜인 그들의 수법에 그저 화가 났다.
입금하자마자 계정은 사라졌고,
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내가 그때 미쳤었나 봐”라며 울먹였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
큰돈이라면 당장 경찰서로 달려갔겠지만,
나는 딸이 스스로 이 과정을 매듭짓길 원했다.
어른인 나도 살면서 사람을 맹신하다가,
혹은 공짜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쓰라린 대가를 치러본 적이 있다.
주변에서 백번 말해도 들리지 않던 교훈이,
내 돈을 잃어본 뒤에야 비로소 가슴 깊이 박히곤 했다.
딸은 스스로 신고 절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이버범죄 신고 시스템(eCRM)을 찾아보고,
증거가 될 만한 대화 내용과 입금 내역을 캡처하며 차분히 대응했다.
비록 5만 원을 되찾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끝내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지금 그 5만 원보다 훨씬 값진 것을 배우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몸소 겪으며 깨닫는 수업료.
"엄마, 내가 다 처리할게. 신고하고 나면 마음이 좀 풀릴 것 같아."
"엄마가 도와줄 건?"
"엄마가 사기당한 게 아닌데, 빨리 처리하고 잊어버릴래."
아이의 말에서 묘한 성숙함이 느껴졌다.
'그래, 겪어봐야 안다. 타인의 조언보다 더 무서운 게 내 몸으로 직접 겪는 고통이지.'
나 역시 그랬다.
사람을 믿고 싶어 기꺼이 돈을 빌려주고,
세상의 달콤한 공짜 유혹에 홀려 마음을 내주었다가
결국 혼자 남겨진 밤들을 견뎌내며 어른이 되었다.
이제 우리 딸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순수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어둠도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문장은 바카라 속의 글귀가 아니라,
오늘 고등학생으로서는 아주 큰돈인 5만 원으로 뼈저리게 새긴 삶의 지혜가 되었다.
인생은 가끔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그 수업료를 치르고 난 뒤,
아이의 눈빛은 이전보다 조금 더 깊고 또렷해질 것임을 나는 믿는다.
오늘 밤은, 딸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자바카라의 가시들을 사랑으로 닦아주어야겠다.
사기를 친 그들은 돈을 가져갔을지 모르지만,
우리 아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얻었으니,
결국 우리가 이긴 셈이다.